봄을 노래한 시 7편을 만납니다. 시인들은 어떻게 봄을 느끼며 맞이하고 있을까요? 겨우내 움츠렸던 우리를 깨워주는 봄 시를 읽으며 마음을 맑히는 독서목욕을 하십시다.
1. 윤동주 시 '봄' 읽기
윤동주 시인님(1917~1945, 북간도 명동촌)의 시 '봄'의 몇 구절입니다. 첫 발표 당시의 시 원본입니다.
'봄이 혈관(血管) 속에 시내처럼 흘러 / 돌, 돌, 시내 가차운 언덕에 / 개나리, 진달래, 노오란 배추꽃'
이 시는 윤동주 시인님의 시 가운데 가장 경쾌한 시라고 할까요? 삶의 의미와 가치, 자아 성찰이라는 진지한 분위기의 시 속에 이처럼 발걸음 가볍고 표정 밝은 시가 있었네요.
'봄이 혈관 속에 시내처럼 흘러'라는 구절은 아주 특별합니다. 이 혈관은 우리 몸속에 흐르는 혈관, 자연 속에 흐르는 혈관을 아우르고 있네요. 그래서 우리 몸과 마음도 돌돌 깨어나고 개나리 진달래 노오란 배추꽃도 깨어난다고 합니다.
봄이 오는 기미를 이처럼 예민하게 포착한 시인님의 촉수를 닮고 싶습니다.
2. 김영랑 시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 읽기
김영랑 시인님(1903~1950, 전남 강진)의 시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에 나오는 몇 구절입니다. 첫 발표 당시의 시 원본입니다.
'돌담에 소색이는 햇발가치 / 풀아래 우슴짓는 샘물가치 / 내마음 고요히 고흔봄 길우에 / 오늘하로 하날을 우러르고 싶다'
시인님 마음은 천진난만한 아이 같습니다. 이 봄날에 시인님은 혼자 돌담에게 속삭이는 말이 있는 것만 같습니다. 봄 햇발 같이요. 무어라고 속삭였을까요? 얘들아, 이제 봄이야! 그만 일어나라구!
얼음이 녹는 봄이면 샘물이 좋아서 웃음을 짓는다고 하는 시인님은 얼마나 다정한지요. 이렇게 만물이 속삭이고 웃음 짓는 고운 봄날, 시인님은 하늘을 우러르고 싶다고 하네요. 나와 저 푸르고 깊고 먼 하늘을 페어링 하고 싶다고 하네요.
우리도 어서 밖으로 나가 하늘을 우러르고 싶어 지네요. 봄 하늘과 하나 되고 싶어 지네요.
3. 김소월 '금잔디' 읽기
김소월 시인님(1902~1934)의 시 '금잔디'를 만납니다.
'잔디 / 잔디 / 금잔디 / 심심산천에 붙는 불은 / 가신 님 무덤가에 금잔디
봄이 왔네 / 봄빛이 왔네 / 버드나무 끝에도 실 가지에
봄빛이 왔네 / 봄날이 왔네 / 심심산천에도 금잔디에'
금잔디가 확 살아나 들불처럼 번져가는 봄입니다. 가신 님 무덤가에요. 이 시 속의 시인님 마음은 슬픔일까요? 그 반대의 마음이 느껴지네요. 반가움요. 왜 그럴까요?
봄이 금잔디가 무덤가에 번져간다는 말, 이는 금잔디를 매개로 가신 님이 왔다는 시인님 마음의 은유로 읽힙니다. 그러니 시인님은 반갑고 반갑네요. 버드나무 끝 실가지에, 심심산천 금잔디에 되살아 온 봄빛과 봄날은 '생명'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하나로 이어진 존재의 생명 말입니다.
그러면 가신 님도 영영 가신 것이 아니니 시인님은 얼마나 좋을까요? '봄빛이 왔네 봄날이 왔네' 이렇게 반가운 봄이네요.
4. 이장희 시 '봄은 고양이로다' 읽기
이장희 시인님(1900~1929, 경북 대구)의 시 '봄은 고양이로다'에서 몇 구절을 만납니다.
'꽃가루와 같이 부드러운 고양이의 털에 / 고운 봄의 향기(香氣)가 어리우도다
금방울과 같이 호동그란 고양이의 눈에 / 미친 봄의 불길이 흐르도다'
이 시는 봄에서 고양이를 느끼고, 고양이한테서 봄을 느끼는 시입니다. 이 시가 전달하고 싶은 것은 메시지보다는 분위기입니다. 부드럽고 조용하며 편안하면서도 정열적인 봄과 고양이입니다. 그래서 이 시를 읽고 나면 가르릉 거리는 고양이를 끌어안고 봄빛이 잘 드는 거실에서 낮잠에 빠지고 싶어 집니다.
5. 이성부 시 '봄' 읽기
이성부 시인님(1942~2012, 전남 광주)의 시 '봄'에서 몇 구절 읽습니다.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도 너는 온다
(중략)
더디게 더디게 마침내 올 것이 온다
(중략)
가까스로 두 팔을 벌려 껴안아보는 / 너, 먼 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아'
봄의 속성은 무얼까요? 반드시 온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겨울' 뒤에 온다는 것입니다. 계절의 순환이라는 자연의 법칙에 따라 필연적으로 오게 되어 있는 봄입니다. '엄동설한'에 얼어붙어 있던 생명에게 이 필연성은 얼마나 큰 위안인지요.
우리 삶에 봄은 어떤 것을 말할까요? 우리가 삶에서 겪는 고통들, 모순과 억압, 부조리 같은 '엄동설한'이 다 지나간 시간이겠지요? 시인님은 그런 모순과 억압과 부조리의 시간은 지나가게 되어 있고 필연적으로 '봄'이 온다고 합니다. '겨울'을 '먼 데서 이기고' 돌아온다고 합니다.
6. 정호승 시 '봄길' 읽기
정호승 시인님(1950~ , 경남 하동)의 시 '봄길' 중에서 몇 구절을 만납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
(중략)
사랑이 끝난 곳에서도 / 사랑으로 남아 있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사랑이 되어 / 한없이 봄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모두가 이제 더 이상 길이 없다고 외칠 때 우리 앞에 나타나 길이 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모두가 이 겨울 같은 고난이 끝날 것 같지 않다고 낙담하고 있을 때 봄처럼 나타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의 삶길을 열어준 사람들, 부모님, 사랑하는 사람, 친구들, 선지자들이 생각나는 시입니다. 그리고 이 시는 우리에게 묻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그 소중한 봄길을 잘 이어가고 있는지, 실낱 같은 길일지라도 타인을 위한 봄길을 열어주고 있는지를 말입니다.
7. 김용택 시 '봄날' 읽기
김용택 시인님(1948~ , 전북 임실)의 '봄날'을 만납니다.
'나 찾다가 / 텃밭에 흙 묻은 호미만 있거든
예쁜 여자랑 손잡고 / 섬진강 봄물을 따라 / 매화꽃 보러 간 줄 알그라'
자, 봄입니다. 우리 저마다의 '호미'를 잠시 내려놓읍시다.
봄날인데 어찌 '텃밭'만 매고 있겠는지요. 겨우내 메말라 굳어있던 마음 밭도 좀 매야지요.
밖으로 나가봅시다. 어서요. '예쁜 여자랑 손잡고'요. 봄이니까요.
글 읽고 마음 목욕하는 블로그 '독서목욕'에서 위에 소개된 봄 시 7편을 만나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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