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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고 스미기

김남조 시 그대 세월

by 빗방울이네 2024. 3.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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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조 시인님의 시 '그대 세월'을 만납니다. 사랑에 대하여, 사랑의 힘에 대하여 생각하게 되는 시입니다. 함께 읽으며 마음을 맑히는 독서목욕을 하십시다.
 

1. 김남조 시 '그대 세월' 읽기

 
그대 세월
 
▷ 김남조(1927~2023, 경북 대구)
 
그대 헐벗었던 유년기
전란의 소년기
돌을 져 나르던 청년기
불과 얼음이 번갈아 손을 잡던
형벌의 긴 장년기
그 풍진 다하여
마침내 보통 날씨
그대 초로(初老)
 
그러나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
그 모든 세월에
허리 굽혀 절하는
여자 하나 있잖니
 

▷ 「한국대표시인 101인선집 - 김남조」(김남조 지음, 문학사상사, 2002년) 중에서

 

2. 그대도 '마침내 보통 날씨'인가요?

 
'마침내 보통 날씨 / 그대 초로(初老)'
 
김남조 시인님의 시 '그대 세월'을 읽고 나니 이 구절이 가슴에 오래 남았습니다.
 
이 시 속의 '그대'는 해방 후의 혼란기 속의 가난(유년기)과 한국전쟁의 비참(소년기)과 근대화의 비지땀(청년기), 민주화의 격동기(장년기)를 거친 삶이네요.
 
어느 시대라도, 누구라도 유년기부터 장년기까지 삶의 가풀막을 헉헉거리며 오르고 내려야 했던 그대였습니다.
 
다정한 사람을 만나 가정을 일구고 위로는 부모님, 아래로는 자식들 건사하며 오로지 가족을 위해 앞만 바라보며 뛰어온 그대였습니다.
 
'마침내 보통 날씨 / 그대 초로(初老)'
 
그대 이제 삶의 일선에서 한발 물러났군요.
 
그리하여 '그대 초로(初老)'의 시간은 '보통 날씨'이네요.
 
비나 눈이 오지 않고 바람도 잠잠한 그런 '보통 날씨'네요.
 
화창한 날씨는 아니지만, 수시로 바람 불고 천둥 치던 지난날의 풍파를 생각하면 이렇게 '보통 날씨'만 되어도 얼마나 좋은지요?
 
밀린 방학숙제를 모두 끝낸 아이처럼 홀가분한 그대입니다.  
 
이 시를 통해 시인님은 그대에게 묻는 것만 같습니다.
 
지금 그대의 '보통 날씨'에 그대 어떻게 지내는지를요.
 
정말로 홀가분한 기분인지를요.
 
집에 있어도 집 밖에 있어도 어리둥절한 그대입니다.
 
아이들은 앞서 가는 마라톤 주자처럼 아득히 멀리 가버렸네요.
 
키오스에서 햄버거를 주문하지 못해 뒤돌아선 적이 있는 그대입니다.

신세대의 말은 얼마나 속사포 같던지요.
 
그대의 말은 알아듣지 못하는 옛말이 되어버렸네요.

어쩌면 자주 기울어진 삶의 운동장에서 뛰어야 했을 그대, 이제 해가 기울어가는 텅 빈 운동장에 남았습니다.
 
삶의 일선에서 물러나 덩그러니 혼자 남은 그대입니다.
 
키도 작아지고 근력도 작아지고 용기도 작아진 그대입니다.
 
밖은 '보통 날씨'가 되었는지만, 안에서는 천둥과 비바람이 몰아치는 요즘의 그대네요.
 
과연 나는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살아왔던가, 이렇게 탄식하고 있을 때 누가 있어 그대의 손을 잡아주던가요?
 

"마침내 보통 날씨 그대 초로" - 김남조 시 '그대 세월' 중에서.

 

 

3. 그대라는 바람풍선에게 바람 넣어주는 '사랑'

 
'그러나 /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 / 그 모든 세월에 / 허리 굽혀 절하는 / 여자 하나 있잖니'
 
'여자 하나 있잖니'라는 구절에서 그대 마음의 호수가 일렁입니다.
 
이렇게 솔직하고 당돌하고 과감하게 '여자 하나 있잖니'라고 말하는 이의 사랑은 얼마나 고마운 사랑인지요.
 
우리는 이 구절 속의 '여자'를 '사랑'이라고 읽고 싶습니다.

이 ‘사랑’은 그대에게 연인일 수도 부모님이나 형제, 친구, 절대자일 수도 있겠네요.
 
'너를 위하여 나 살거니 / 소중한 건 무엇이나 너에게 주마'

▷ 김남조 시 '너를 위하여' 중에서

시인님은 진정한 사랑이라면 '소중한 건 무엇이나' 주고 싶어 하는 사랑이라고 말하네요.
 
내가 준 사랑만큼 받으려는 사랑이 아니라 내가 가진 '소중한 건 무엇이나' 아무 조건 없이 주고 싶은 마음이 진정한 사랑이라고요.
 
이런 사랑은 그대의 '그 모든 세월에 허리 굽혀 절하는' 그런 이의 사랑이겠지요.
 
그대의 '그 모든 세월에 허리 굽혀 절하는' 그런 사랑이 그대에게 이렇게 말하네요. 
 
'그대만큼 사랑스러운 사람을 본 일이 없다'

▷ 김남조 시 '편지' 중에서

 
일선에서 물러나 바람이 다 빠진 바람인형 같은 요즘의 그대에게 이런 말을 해주는 사랑이라면 그대는 다시 힘차게 일어설 수 있겠네요.
 
그런 사랑이라면 얼마나 소중한 사랑이겠는지요?
 
시인님은 이렇게 그대에게 물어보는 것만 같습니다.
 
그대는 사랑을 정확하게 말한 적이 있는지를요.
 
너무 마음을 숨기고 살지는 않았는지를요.
 
'그러나 /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 / 그 모든 세월에 / 허리 굽혀 절하는 / 여자 하나 있잖니'
 
시인님은 또 묻는 것만 같습니다.
 
그리하여 그대가 '허리 굽혀 절하는' '사랑'에게 그대도 '허리 굽혀 절하는' 사랑인지를요. 

그가 하는 일이라면 다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 위로하고 응원하며 용기를 주는 사랑인지를요.
 
하나뿐인 사랑을 받고 있는 나는 그 사람을 하나뿐인 사랑으로 사랑하고 있는지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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