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고 있습니다. 오늘은 이성부 시인님의 시 '봄'을 만납니다. 이 시는 우리에게 어떤 깨우침을 줄까요? 저마다 기다리는 봄을 생각하면서 한 구절씩 소리 내어 천천히 읽으며 독서목욕을 해봅시다.
1. 이성부 시인님의 시 '봄' 읽기
봄
- 이성부(1942~2012)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너는 온다.
어디 뻘밭 구석이거나
썩은 물웅덩이 같은 데를 기웃거리다가
한눈 좀 팔고, 싸움도 한판 하고,
지쳐 나자빠져 있다가
다급한 사연 들고 달려간 바람이
흔들어 깨우면
눈 부비며 너는 더디게 온다.
더디게 더디게 마침내 올 것이 온다.
너를 보면 눈부셔
일어나 맞이할 수가 없다.
입을 열어 외치지만 소리는 굳어
나는 아무것도 미리 알릴 수가 없다.
가까스로 두 팔을 벌려 껴안아보는
너, 먼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아.
- 이성부 시선집 「우리들의 양식」(민음사) 중에서
이성부 시인님은 1960년대 대표적 참여시인의 한 사람으로 꼽힙니다. 구체적인 일상언어로 사회의 모순과 상처를 보여주는 현실인식이 짙은 시를 썼습니다.
1942년 전남 광주 태생인 이성부 시인님은 1959년 고교 재학시절 전남일보 신춘문예에 당선했고, 1961년 「현대문학」 추천완료, 1967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우리들의 양식'이 당선했습니다. 한국일보와 일간스포츠 기자로 활동했습니다.
2. 더디게 더디게 마침내 올 것은 온다
오늘 함께 읽을 시 '봄'은 1970년대 초 이 땅에 민주화의 봄을 기다리는 간절한 마음을 노래한 시입니다. 이 시가 어떤 시인지를 소개한 김종철 문학평론가님의 문장을 함께 읽겠습니다.
아마도 이성부보다도 더욱 어둠 뒤의 밝음 혹은 절망 뒤의 희망을 열심히 그리고 감동적으로 묘사할 수 있는 시인은 없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시 '봄'이다.
- 김종철 문학평론가의 시집 「우리들의 양식」 해설 중에서
1974년에 발표된 이성부 시인님의 시 '봄'을 2023년에 읽어봅니다. 50년이 지난 오늘 이 시를 읽으면서 우리는 그때처럼 여전히 봄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그대는 이 시의 어떤 구절에 시선이 멈추었습니까? 이 시는 도입부부터 우리의 정신을 흔들어 깨워주는 것 같습니다.
-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너는 온다.
이렇게 봄은 필연적으로 온다고 합니다. 이 구절에서 문득 스피노자가 「지성교정론」에서 말한 '불변의 자연법칙'이 떠오릅니다. 이는 사물들이 절대 확고한 연결 속에서 확정된 법칙에 따라 일정한 결과들을 나타내는 것을 말합니다.
기다리지 않아도, 삶에 지친 나머지 그 기다림을 잃었을 때에도 올 것은 결국 온다는 말은 얼마나 우리에게 큰 위안이 되는지요. 바로 봄처럼 말입니다. 혹독한 겨울에도 저만치 뒤에서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봄을 우리는 다 느낄 수 있지 않습니까?
3. 우리는 여전히 새로운 봄을 기다리고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 건물에 내걸리던 '광화문 글판'은 2002년 1월의 문장으로 이 시의 아래 세 구절을 소개했습니다. 이 때는 외환위기 후 우리 모두 어려운 시간을 견디던 때였습니다. 이 시의 문구는 어려운 현실이라도 기다리는 자세로 각자 열심히 산다면, 더디게 이루어지더라도 꿈은 이루어질 것이라는 따뜻한 희망을 품게 해주었습니다. 기필코 오는 봄처럼, 반드시 피어나는 꽃처럼 말입니다.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너는 온다.
더디게 더디게 마침내 올 것이 온다. 봄.
이 시를 읽는 우리는 여전히 봄을 기다리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저마다 기다리는 봄이 있고, 시대와 사회가 기다리는 봄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 봄들은 마침내 올 것이라고 이성부 시인님은 말하고 있습니다. 불변의 자연법칙에 따라 말입니다. 큰 힘이 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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