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읽고 쓰고 스미기

김소월 시 금잔디 읽기

by 빗방울이네 2023. 5. 2.
반응형

김소월 시인님의 시 '금잔디'를 만납니다. 이 시 속에는 어떤 삶의 통찰이 숨겨져 있을까요? 시인님이 건네주는 다정한 위로 속에 우리의 마음을 담가 흔들어 씻으며 함께 독서목욕을 하십시다.
 

1. 김소월 시 '금잔디' 읽기

 
금잔디
 
- 김소월
 
잔디,
잔디,
금잔디.
심심산천에 붙는 불은
가신 님 무덤가에 금잔디.
봄이 왔네, 봄빛이 왔네,
버드나무 끝에도 실 가지에.
봄빛이 왔네, 봄날이 왔네,
심심산천에도 금잔디에.
 

- 김소월 시집 「소월의 명시」(한림출판사) 중에서

 
이 시 '금잔디'는 김소월 시인님(1902~1934) 21세 때, 1922년 1월 「개벽」에 발표된 시입니다. 이 즈음 김소월 시인님에게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요? 
 
그는 1916년 15세 때 결혼했고, 1917년 조만식 선생이 세운 민족학교인 오산학교(평북 정주)에 입학해 1922년 4월 서울의 배재고등보통학교 편입 때까지 공부했습니다. 시인님은 오산학교 시절 좋아했던 어떤 연인의 죽음도 겪었다고 합니다. 시기로 보면 '금잔디'는 서울로 오기 전 고향(평북 구성)에서 쓰인 것이네요. 이 시기는 김소월 시인님이 가장 왕성한 작품활동을 한 시기로 알려져 있습니다.
 

2. 시 '금잔디'가 우리에게 말하는 것은?

 
그대는 '금잔디'를 읽고 어떤 느낌이 드셨는지요? 김소월 시인님의 대표 시로 꼽히는 이 시는, 아홉 줄짜리 짧은 이 시는 과연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요? 읽을수록 그 의미를 알 듯 모를 듯하여, 시인님이 행간에 숨겨놓은 무언가가 있을 것만 같은 시입니다.
 
우선 제목인 금잔디는 '잡풀 없이 탐스럽게 자란 잔디'(표준국어대사전)를 말합니다. '금'에서 연상되는 노란 색깔의 잔디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의외네요. 우리는 제목을 통해 봄에 연초록으로 잡풀 없이 소복소복 돋아나는 탐스러운 잔디를 생각합니다.
 
그런데요, 읽어 내려가던 우리는 이 구절에서 정신의 계단을 헛짚은 것처럼 휘청거립니다.
 
심심산천에 붙는 불은 

- 김소월 시 '금잔디' 중에서

 
'심심산천에 붙는 불은'. 이 구절은 무얼 의미할까요? 김소월 시인님은 이 구절을 몇 번 고쳤습니다.
 
심심산천에 바알한불빗은(1922. 「개벽」)
심심산천에 팔한 불빗은(1924. 「잃어진 진주」)
심심산천에 붓는불은(1925. 「진달래꽃」)
 

- 「김소월전집」(김용직 편저, 서울대학교출판부) 중에서

 
이런 변화 과정을 보면서, 우리는 이 구절의 '불'이 붉은 불이 아니라 푸른빛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우리는 전통적으로 청색과 녹색을 따로 구분하지 않고 '푸르다'라는 형용사로 표현해 왔습니다. '푸른 하늘', '푸른 산', '파란 하늘', '파란 잔디' 같은 표현이 그것입니다.
 
그래서 이 구절은 푸릇푸릇한 금잔디가 들불처럼 번져가는 이미지를 우리에게 건네줍니다. 그것은 현실에서 일어나는 사건이기도 하고 시인님의 내면에서 그려지는 이미지이기도 할 것입니다.
 
가신 님 무덤가에 금잔디 

- 김소월 시 '금잔디' 중에서

 
이 구절이 이 시의 솟대입니다. 우리는 이 시구(詩句)로 인해 이 시 '금잔디'가 봄날의 풍경화에서 생생한 드라마로 바뀌는 것을 느낍니다. 지금 시의 화자는 심심산천 님의 무덤가에 와 있습니다. 그 님은 먼저 떠난 어떤 연인이기도 하고, 사랑하는 가족이기도 하겠지요. 바로 옆에 그 님이 누워 있지만 '나'와 님의 사이는 완전히 단절되어 있네요. 살아있는 나와 죽은 님과의 거리, 이승과 저승과의 거리는 도무지 잴 수조차 없습니다. 이 막막함이라니요. 가닿을 수 없는 이 불가능의 광활함이라니요.
 
봄이 왔네, 봄빛이 왔네 / 버드나무 끝에도 실 가지에

- 김소월 시 '금잔디' 중에서

 
그런 절망 속일 텐데요, 시의 화자의 마음은 이렇게 경쾌하게 느껴지네요. 시의 화자는 생명의 약동, 봄의 활력을 느끼고 있습니다. 버드나무 끝 실가지에도 왔다는 그 봄, 그 봄빛이 무얼까요? 가신 님 무덤가에도 왔다는 금잔디, 봄, 봄빛은 무얼까요?
 
시의 화자는 그 속에서 님을 만나는 것 같습니다. 님은 가셨지만, 영영 가신 것이 아니라는 것을, 시의 화자는 금잔디를 매개로 깨닫게 된 것 같습니다. 우리 모두 하나의 큰 생명이라는 각성, 그 속에서 현존하는 존재의 무한성 말입니다. 불 같이 번져 금잔디처럼 돋아나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생명 말입니다.
 
이 시구에서 우리는 '편재'(遍在, omnipresence)라는 단어를 떠올립니다. 그래서 수많은 이별을 겪었던, 앞으로도 겪게 될 우리도 깊은 위로를 받게 되네요.

김소월시금잔디중에서
김소월 시 '금잔디' 중에서

 

 

3. 시인의 부고에 함께 실린 시 '금잔디'

 
김소월 시인님은 1934년에 돌아가셨습니다. 그해 12월 24일 오전 8시, 시인님은 이미 숨진 채 부인에 의해 발견되었습니다. 겨우 33세에 말입니다.
 
위의 책 「김소월전집」에 따르면, 김소월 시인님의 사망 소식은 조선중앙일보에 보도되었습니다. '민요시인 소월 김정식 돌연 별세'라는 제목의 2단짜리 기사로요. 그 부고 기사에는 오늘 함께 읽은 시 '금잔디'가 첨부되었다고 하네요.
 
오늘 '금잔디'를 읽고 보니, 그렇게 멀리 우리가 닿을 수 없는 곳으로 갔다고 여겨지던 시인님이 바로 우리 곁에 있음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봄빛으로, 심심산천에도, 버드나무 가는 가지 끝에도 말입니다. 우리의 많은 사랑하는, 가신 님들도 그러하겠지요. 
 
글 읽고 마음 목욕하는 블로그 '독서 목욕'에서 김소월 시인님의 시를 더 읽어 보세요.

 

김소월 시 진달래꽃 읽기

김소월 시인님의 시 '진달래꽃'을 봅니다. 앞산에 진달래꽃이 활짝 피어나면 어김없이 이 시도 따라 핍니다. 왜 그럴까요? 이 시에 무엇이 담겨 있기에 그럴까요? 천천히 읽으며 진달래꽃 향기에

interestingtopicofconversation.tistory.com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