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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고 스미기

프랑시스 잠 시 위대한 것은 인간의 일들이니

by 빗방울이네 2024. 6.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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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시스 잠(프랜시스 잠)의 시 '위대한 것은 인간의 일들이니 ···'를 만납니다. 일상의 소중함을 돌아보게 해주는 아름다운 시입니다. 함께 읽으며 마음을 맑히는 독서목욕을 하십시다.

 

1. 프랑시스 잠 시 '위대한 것은 인간의 일들이니 ···' 읽기

 

위대한 것은 인간의 일들이니 ···

 

프랑시스 잠(Francis Jammes, 1868~1938, 프랑스)

 

위대한 것은 인간의 일들이니

나무병에

우유를 담는 일,

꼿꼿하고 살갗을 찌르는

밀 이삭들을 따는 일,

암소들을 신선한 오리나무들 옆에서

떠나지 않게 하는 일,

숲의 자작나무들을 

베는 일,

경쾌하게 흘러가는 시내 옆에서

버들가지를 꼬는 일,

어두운 벽난로와, 옴 오른

늙은 고양이와, 잠든 티티새와,

즐겁게 노는 어린아이들 옆에서

낡은 구두를 수선하는 일,

한밤중 귀뚜라미들이 날카롭게

울 때 처지는 소리를 내며

베틀을 짜는 일,

빵을 만들고

포도주를 만드는 일,

정원에 양배추와 마늘의

씨앗을 뿌리는 일,

그리고 따뜻한

달걀들을 거두어들이는 일.

 

▷프랑시스 잠 시집 「새벽의 삼종에서 저녁의 삼종까지」(곽광수 옮김, 민음사, 1991년 10쇄) 중에서.

 

2. 그대에게 위대한 일은 무엇인가요?

 

프랑시스 잠은 프랑스 남서부 피레네 산맥의 발밑 산간지방에서 평생 자연과 더불어 살았다고 합니다.

 

시 '위대한 것은 인간의 일들이니 ···'를 읽으며, 아름다운 자연의 삶 속에서 그가 발견한 위대한 것, 인간의 일들이 무엇인지 만나봅니다.

 

'위대한 것은 인간의 일들이니 / 나무병에 / 우유를 담는 일'

 

'위대한 것은 인간의 일들'이라고 해놓고선, '나무병에 우유를 담는 일'이라고 했네요.

 

고작 '나무병에 우유를 담는 일'이 위대한 일이라고요? 

 

그런데요, 어쩐 일인지 마음에 미묘한 파동이 일기 시작하네요.

 

그래, 맞아. '나무병에 우유를 담는 일'은 정말 필요한 일이지,라고 고개를 끄득이게 되네요.

 

나무병에 우유를 담지 않는다면 우리 가족이 어떻게 우유를 마실 수 있단 말인가, 하면서요.

 

이렇게 우리의 일상을 유지시켜주는 일들이야말로 참 '위대한 일들'이네요. 

 

'꼿꼿하고 살갗을 찌르는 / 밀 이삭들을 따는 일'

 

가을에 벼 타작을 하거나 밀을 수확하는 일은 정말 힘든 일입니다.

 

논 한 귀퉁에서 펼쳐지는 가을걷이, 펄펄 눈처럼 날리는 '꼿꼿하고 살갗을 찌르는' 나락이나 밀 티끌로부터 얼마나 도망가고 싶었던지요.

 

그렇게 도망가고 싶었던 그 일이 소중하고 큰 일, 바로 '위대한 일'이라고 하네요.

 

가족들의 한 해 양식을 준비하는 일이니 어찌 위대하지 않을 수 있겠는지요?

 

그러나 그때는 어서 시골을 벗어나 도회지에 가서 더 소중하고 큰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도회지에 가서 과연 무엇을 이루었을까요? '꼿꼿하고 살갗을 찌르는' 이기심과 경쟁심 속에 수시로 상처받지 않았겠는지요?  

  

'암소들을 신선한 오리나무들 옆에서 / 떠나지 않게 하는 일'

 

시골에서의 어린 시절, 산에 소를 데리고 가서 풀을 먹이는 일도 싫은 일 중의 하나입니다.

 

숙제도 못했는데 소의 배를 채워주기 위해 소중한 시간을 '낭비'해야 하다니.

 

그런데 그런 일이야말로 인간의 일, 위대한 일이라고 하네요.

 

우리의 삶과 생명을 살려주고 이어주는 그런 일들이야말로 '위대한 일'이네요.

 

'숲의 자작나무들을 베는 일 / 경쾌하게 흘러가는 시내 옆에서 / 버들가지를 꼬는 일'

 

산에 나무 하러 가는 일도 도망가고 싶은 일이지요.

 

산비탈 소나무 아래에 쌓인 갈비(마른 솔잎)를 갈쿠리로 끌어모아 커다랗게 동을 만들어 가져오는 일 말입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겨울 동안 땔감으로 쓸 갈비 동들이 마당 한편에 가득 쌓여가는 것을 바라보며 뿌듯해하셨습니다.

 

그날 아버지는 생각했겠지요?

 

그 갈비로 겨울 동안 아궁이 가득 환하게 불을 때면, 어머니는 그 불로 밥을 하고 국을 끓이고, 어린 자식들은 따뜻한 아랫목에서 옹기종기 모여있을 시간들을 말입니다.

 

그런 평화로운 일이 어찌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일이 아니겠는지요?

 

"따뜻한-달걀들을-거두어들이는-일"-프랑시스-잠-'위대한-것은-인간의-일들이니'-중에서.
"따뜻한 달걀들을 거두어들이는 일" - 프랑시스 잠 '위대한 것은 인간의 일들이니' 중에서.

 

 

 

3. 위대한 일, 일상의 흐름을 평화롭게 이어주는 일

 

'어두운 벽난로와, 옴 오른 / 늙은 고양이와, 잠든 티티새와 / 즐겁게 노는 어린아이들 옆에서 / 낡은 구두를 수선하는 일'

 

불이 꺼져 어두운 벽난로일지라도 얼마나 나와 오래오래 함께 해온 소중한 가족인지요?

 

옴 오른 늙은 고양이라도 얼마나 다정한 식구인지요?

 

잠든 티티새를 깨우지 않는 일, 즐겁게 노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그치지 않게 하는 일은 얼마나 따뜻한 일인지요.

 

그리하여 그 소중하고 다정하며 따뜻한 것들 옆에서 '낡은 구두를 수선하는 일', 그 검소한 일이 어찌 아름답지 않겠는지요?

 

'한밤중 귀뚜라미들이 날카롭게 / 울 때 처지는 소리를 내며 / 베틀을 짜는 일'

 

귀뚜라미야 너는 소프라노로 울어라, 나는 바리톤으로 베를 짜겠어. 이렇게 시인님은 가을밤에 베틀을 돌리네요.

 

귀뚜라미도 시인님의 베틀소리에 신이 나서 더 크게 울었을 것만 같습니다.

 

이렇게 자연의 소리에 화음을 넣으며 살아가는 일, 그것은 자연과 하나가 되는 멋진 일, '위대한 일'이네요.

 

'빵을 만들고 / 포도주를 만드는 일 / 정원에 양배추와 마늘의 / 씨앗을 뿌리는 일'

 

날마다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을 소소하고 가벼이 여기는 때가 많았습니다.

 

더 가치 있는 일은 언제나 지금이 아니라 나중에 있고 도시의 광장에 있는 것만 같았습니다.

 

'빵을 만들고 ···'. 지금 이 순간의 일이 삶이며 또한 '위대한 일'이라는 생각이 드는 구절입니다.

 

평범한 일들이지만 우리의 삶을 자연스럽게 흘러갈 수 있도록 이 순간과 저 순간을 이어주는 소중한 일들이네요.

 

이런 일들 가운데 하나라도 멈춘다면 우리의 평온도 삐걱거리고 말 것입니다. 

 

'그리고 따뜻한 / 달걀들을 거두어들이는 일'

 

이 시의 마지막 구절, 참으로 따뜻하네요.

 

손아귀에 든, 갓 나은 달걀의 온도가 온몸으로 전해져 오는 것만 같습니다.

 

그 따뜻한 생명으로 나와 가족의 생명을 건강하게 이어가는 일, 얼마나 위대한 일인지요?

 

무언가 더 소중한 것을 찾아 앞으로 내달리기 바쁜 지금의 시간을 생각해 봅니다.

 

단조롭고 비루하게 느끼던 일상, 그렇게 함부로 지나쳐버린 하루하루가 소중한 삶의 본질이었다는 것을 되돌아봅니다.

 

이 시를 읽는 그대에게 '위대한 일'은 어떤 일인지요?

 

글 읽고 마음 목욕하는 블로그 '독서목욕'에서 프랑시스 잠의 시를 더 만나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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