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한 시인님의 시 '샘물이 혼자서'를 만납니다. 외로운 삶의 길일지라도 춤추며 웃으며 가고 싶어지는 시입니다. 함께 읽으며 마음을 맑히는 독서목욕을 하십시다.
1. 주요한 시 '샘물이 혼자서' 읽기
샘물이 혼자서
주요한(1900~1979, 평양 출생)
샘물이 혼자서
춤추며 간다
산골작이 돌 틈으로
샘물이 혼자서
우스며 간다
험한 산길 꽃 사이로.
하늘은 말근데
즐거운 그 소래
산과 들에 울니운다
▷주요한 시집 「아름다운 새벽」(한국현대시 원본전집 1924년판, 문학사상사) 중에서.
2. 첫시집 첫시에 새겨진 것은?
시 '불놀이'로 유명한, 한국근대시의 선구자로 꼽히는 주요한 시인님의 시 '샘물이 혼자서'를 원본으로 만납니다.
원본 시집에 보니 '샘물이 혼자서'의 시 끝에 한자로 '一九一八'이라고 적혀있네요.
1918년 작품이라는 말인데, 지금으로부터 100년도 더 된 작품입니다.
이 시는 1924년 나온 주요한 시인님의 첫시집 「아름다운 새벽」에 실려있습니다.
이 시집 마지막 즈음에 그 유명한 시 '불놀이'가 실려 있습니다.
이 시집에는 서시(序詩)처럼 '니애기'라는 제목의 시를 맨 앞에 배치해두고, '나무색이', '고향생각', '힘 있는 생명' 등 6개 단락으로 나뉘어 시를 실었습니다.
그 첫번째 단락 '나무색이'의 첫시가 바로 '샘물이 혼자서'입니다.
서시격인 '니애기'를 빼면 첫시집의 첫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왜 이 시를 첫시집의 대표주자로 내세웠을까요?
대표주자로 내세울 만큼 , 이 시에는 시인님의 삶의 길, 시의 길이 담겨있다고 할 수 있겠네요.
어떤 생각이 담겨져 있을까요?
'샘물이 혼자서 / 춤추며 간다 / 산골작이 돌 틈으로'
외형적으로는 매우 가볍고 상쾌한 느낌이네요. 그러나 자세히 음미해보면 무언가 묵직한 느낌이 뭉글하게 일어납니다.
이 첫연을 천천히 읽으니 '샘물이 혼자서' 가듯 나도 나의 길을 혼자서 가겠다는 의미가 드러나네요.
이 시가 쓰인 때가 1918년이니까 1900년생인 시인님이 18세 때입니다.
1918년은 일제강점기입니다. 그 암울한 현실 속에서 18세 시인님은 '샘물이 혼자서' 가듯 나의 길을, 삶의 길을 가겠다고 다짐하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그래서 이 시가 주는 외형적 경쾌함의 이면에는 외로움과 고독이 스며있는 것만 같습니다.
'샘물이 혼자서 / 춤추며 간다'. 그러므로 이 진술이 샘물이 단순히 춤추며 즐거이 간다는 의미보다는 혼자서 애써 고독을 누르며 춤추며 간다는 안간힘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산골작이 돌 틈으로'. 산골짜기 돌 틈은 얼마나 외지고 외로운 공간인지요. 아무도 오지않는 산골짜기입니다. 아주 좁은 돌틈입니다.
그런 곳을 샘물이 혼자서 가듯이, 어려운 장애물이 있더라도 시인님은 춤추며 가겠다고 합니다. 그것도 혼자서 말입니다.
3. 외로운 길일지라도 춤추며 웃으며 가리라는 다짐
'샘물이 혼자서 / 우스며 간다 / 험한 산길 꽃 사이로'
1연의 '춤추며 간다'에 이어 2연에서는 '우스며(웃으며) 간다'고 합니다. 깊은 산골의 샘물은 머나먼 계곡의 길을 지나 바다에 닿습니다.
시인님은 그 외롭고 먼 인생 길을 춤추며 웃으며 간다고 합니다. '샘물이 혼자서' 가듯이 말입니다.
이것은 시인님의 다짐인 것만 같습니다. 이렇게 첫시집에 첫시로 '샘물이 혼자서'를 배치해두고 자신의 삶의 자세를 샘물의 길로 은유해 놓았네요.
제목 '샘물이 혼자서'에도 있듯이 이 시의 정조(情調)는 '혼자서'에 방점이 찍혀있네요.
삶의 길을 헤쳐나가는 일에는 많은 이들의 도움도 받게되지만 결국에는 오로지 '혼자서' 감당해야만 할 일이 있습니다.
시인님은 그런 외로운 시간일지라도 춤추며 웃으며 가리라고 하네요.
'험한 산길 꽃 사이로'. 험한 산길이지만 꽃도 있다는 뜻으로 다가오네요. 혼자서 가는 길의 고독과 애수를 달래줄 한 송이 꽃은 얼마나 소중한 꽃이겠는지요.
'하늘은 말근데 / 즐거운 그 소래 / 산과 들에 울니운다'
그 소리(소래)가 산과 들에 울리운다(울니운다)고 하네요. 그 즐거운 소리는 샘물소리이겠지요. 시인님의 웃음소리이겠지요.
혼자서 '산골짜기 돌틈'을 지나 '험한 산길'이라도 춤추며 웃으며 가는 샘물소리가 세상을 울린다고 합니다.
시인님의 첫시집 「아름다운 새벽」에는 '샘물이 혼자서'와 '불놀이'를 포함 모두 66편의 시가 실려있습니다.
이 시집은 '자유시를 개척한 시집'으로 꼽힙니다. 이 시집을 평가한 문장을 만나봅니다.
이 시집에 나타난 형식상의 특징은 무엇보다 자유시를 개척하여
이전의 시 형식인 창가·신체시 등에 잔재해 있는
정형률의 구속으로부터 벗어나 시 형식의 자유를 보여주었다 ···
이러한 자유시 추구의 근대시 운동은 ··· 한국 근대시의 장을 여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주요한 연구」(이용호 지음, 동광문화사, 2002년) 중에서.
위 책은 주요한 시인님을 '한국 현대 자유시의 완성자'로 꼽고 있습니다.
'샘물이 혼자서' 고독과 애수를 누르며 춤추며 웃으며 계곡을 타고 큰 바다로 가듯, 자유시의 세계를 개척해온 시인님의 고독과 애수의 삶도 이렇게 세상을 울리게 되었네요. 힘든 길이었지만 그 고독을 누르려 춤추며 웃으며 달려왔겠지요?
마지막 연을 다시 읽어봅니다.
'하늘은 말근데 / 즐거운 그 소래 / 산과 들에 울니운다'
글 읽고 마음 목욕하는 블로그 '독서목욕'에서 주요한 시인님의 시를 더 만나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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