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산 윤선도 시인님의 시조 '오우가(五友歌)' 여섯 수를 만납니다. 저마다의 친구에 대해 생각하게 해주는 시입니다. 함께 읽으며 마음을 맑히는 독서목욕을 하십시다.
1. 윤선도 시조 '오우가(五友歌)' 1 ~2 읽기
오우가(五友歌) 1
윤선도(1587~1671, 서울)
내 벗이 몇이나 하니 수석(水石)과 송죽(松竹)이라
동산(東山)에 달 오르니 그 더욱 반갑구나
두어라 이 다섯 밖에 또 더하여 무엇하리
▷「윤선도 시조집」(윤선도 지음, 김용찬 옮김, 지식을만드는지식, 2016년) 중에서(이하 동일)
'오우가(五友歌)'는 조선시대 문신인 고산 윤선도 시인님의 대표작이자 우리나라 고전시가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꼽힙니다.
'오우가(五友歌)'라는 제목의 뜻은 '다섯 벗에 대한 노래'라는 말이네요. 모두 6 수로 된 연시조인데요, 이 첫 번째 시조는 전체로 들어가는 인트로인 서시(序詩)입니다.
시인님이 꼽는 다섯의 벗은 수석(水石), 송죽(松竹), 그리고 달입니다. 나머지 5 수의 시조에서 이 다섯 벗에 대해 하나씩 그 덕목을 노래하는 형식이네요.
시조 '오우가(五友歌)'는 시인님이 56세 즈음에 전남 해남의 금쇄동에 은거하며 지은 시조 모음집 「산중신곡」에 실려 있습니다.
어지러운 국내외 정세(政勢) 속에서 삶의 과반을 유배와 은거로 보낸 시인님입니다. 그렇게 산전수전 다 겪은 시인님은 특히 친구에 대해 생각이 많았네요. '오우가(五友歌)'에서 진정한 친구란 어떤 친구인가에 대한 덕목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내 벗이 몇이나 하니 수석(水石)과 송죽(松竹)이라'
이 첫 행의 원문은 이렇습니다.
'내 버디 몇 치나 하니 水슈石셕과 松숑竹듁이라'
오래되고 소중한 친구를 소개하는 듯한 어조는 정말 정답고 친근하네요. '버디 몇 치나'하는 옛말도 참 정겹네요. 그런데 시인님의 친구는 사람이 아니네요. 물과 돌과 소나무와 대나무라고 하네요. 거기에 하나의 벗이 더 등장합니다.
'동산(東山)에 달 오르니 그 더욱 반갑구나'
이 중장에서 불현듯 두둥실 달이 뜹니다. 그래서 시인님의 반가운 마음처럼 우리 마음도 환해지는 것만 같네요. 중장에 등장한 달이 시의 분위기를 한층 생동감 있게 만들어 주네요.
'두어라 이 다섯 밖에 또 더하여 무엇하리'
물과 돌과 소나무와 대나무와 달. 시인님이 자신의 벗이라고 소개한 이들은 한양에서 벼슬하고 있는 친구들이 아니라 자연 속에 있는 사물들입니다. '또 더하여 무엇하리'. 그런 한양의 친구들은 친구 축에도 넣어주지 않았네요. 우정에 배반당하고 시기와 질투에 휘둘린 시간 때문이었을까요?
이 다섯 친구의 덕목을 새기며 저마다의 친구를, 또한 친구로서의 '나'를 생각해 봅니다.
오우가(五友歌) 2 - 물
구름 빛이 맑다 하나 검기를 자주 한다
바람 소리 맑다 하나 그칠 때가 많더라
맑고도 그칠 때 없기는 물뿐인가 하노라
첫 번째 벗은 물입니다. 은거하던 해남 금쇄동 산골의 계곡물일까요? 우선 초·중·종장에 제시된 친구의 공통된 덕목은 '맑음'입니다.
그러나 비교대상이 된 구름과 바람은 맑기는 하지만 검어지거나 그치거나 하면서 변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물은 맑은데도 변함없이 쉬지 않고 흐른다고 하네요.
맑은 마음을 가진 이, 그 맑은 마음이 변하지 않는 이, 이것이 바로 시인님이 꼽은 친구의 첫 번째 덕목이네요.
2. 윤선도 시조 '오우가(五友歌)' 3~4 읽기
오우가(五友歌) 3 - 돌
꽃은 무슨 일로 피면서 쉽게 지고
풀은 어이하여 푸르는 듯 누렇나니
아마도 변치 않음은 바위뿐인가 하노라
두 번째 친구로 등장한 돌도 변함이 없다는 점이 덕목입니다.
피었다 지고, 푸르렀다 누렇게 변하는 꽃과 풀은 시인님에게 실망을 안겨준 친구인 것만 같네요. 시인님은 변치 않고 항상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바위를 칭송합니다.
한동안 잊고 있다가 불쑥 연락해도 그 자리에서 반갑게 맞아주는 친구일까요? 바위처럼 항상 그 자리에 있어주는 친구는 얼마나 든든한 친구이겠는지요?
오우가(五友歌) 4 - 소나무
더우면 꽃 피고 추우면 잎 지거늘
솔아 너는 어찌 눈서리를 모르는가
구천(九泉)에 뿌리 곧은 줄을 그것으로 아노라
세 번째 친구 소나무도 변함없음이 덕목이네요. 다른 나무들은 모두 봄철에 꽃을 피우고 가을이 되면 잎을 떨어뜨리지만 소나무는 사철 푸릅니다.
'솔아 너는 어찌 눈서리를 모르는가'
이 중장에서 시인님은 소나무의 굳은 절개를 생각하는 것만 같네요. 강직한 인품 말입니다. 눈서리의 시련 속에서도 변함없이 자신의 푸르름을 지키는 성품의 친구는 얼마나 소중한 친구이겠는지요?
시인님은 소나무의 이런 변함없는 생명력을 보니 그 뿌리를 땅속 깊은 밑바닥(구천, 九泉)까지 곧게 뻗치고 있을 것이라고 짐작합니다.
이렇게 시인님은 소나무를 벗으로 꼽으며 마음의 심지가 변함없이 곧고 깊은 친구를 생각했을까요?
3. 윤선도 시조 '오우가(五友歌)' 5~6 읽기
오우가(五友歌) 5 - 대나무
나무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것이
곧기는 뉘 시켰으며 속은 어찌 비었느냐
저렇듯 사시(四時)에 푸르니 그를 좋아하노라
네 번째 친구의 덕목도 항상 변함이 없다는 점입니다. 변함없이 푸른 대나무이네요.
'나무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것이'
이 초장의 착상이 참 재미있네요. 대나무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는데, 정말 대나무는 나무 같기도 풀 같기도 하네요.
중장에 대나무의 속성이 나옵니다. 곧고 비어있음이네요. 절개가 곧고 욕심 없는 빈 마음을 말하겠지요?
신념이나 신의를 헌신짝처럼 버리기를 잘하며, 늘 친구보다 자기 욕심만 채우는 어떤 친구를 생각했을까요?
'저렇듯 사시(四時)에 푸르니 그를 좋아하노라'
6 수 중에서 '좋아하노라'라는 진술은 이 대목이 유일합니다. 특별히 대나무가 좋다는 뜻일까요?
절개가 곧고 욕심이 없는 친구, 그런 푸르름이 사시사철 변함없는 대나무 같은 친구가 좋다고 합니다.
오우가(五友歌) 6 - 달
작은 것이 높이 떠서 만물(萬物)을 다 비추니
밤중의 광명(光明)이 너만 한 이 또 있느냐
보고도 말 아니하니 내 벗인가 하노라
다섯 번째 달의 덕목도 변함없음인데, 친구의 덕목으로 좁혀보면 과묵함이네요.
깜깜한 밤에 만물을 다 비추고 있는 달은 돌아가는 세상사 누구보다 속속들이 잘 알고 있겠네요.
'보고도 말 아니하니 내 벗인가 하노라'
이 마지막 종장에서 시인님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자신에 대한 시기와 질투에서 촉발된 허튼 소문이 떠올랐을까요?
고산의 승진을 못마땅하게 여긴 강석기가 허튼 소문을 낸 탓에 고산은 벼슬을 잃고 48세 되던 해 봄 성산현감으로 좌천된다.
▷「윤선도 평전」(고미숙 지음, 한겨레출판, 2013년) 중에서
이렇게 시인님은 다 보고 다 알고도 밖으로 말하지 않는 달 같은 친구가 그리웠겠네요. 자신의 속을 훤히 다 알고도 가벼이 떠벌이지 않고 감싸주는 달 같은 친구 말입니다.
'오우가(五友歌)', 우리는 서로에게 어떤 친구인가? 하는 묵직한 질문을 던지는 시조이네요.
글 읽고 마음 목욕하는 블로그 '독서목욕'에서 윤선도 시인님의 시를 더 만나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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