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읽고 쓰고 스미기

윤동주 시 십자가

by 빗방울이네 2024. 6. 19.
반응형

윤동주 시인님의 시 '십자가'를 만납니다. 일제강점기 암울한 현실에 맞서는 희생적 삶을 살겠다는 시인님의 비장한 각오가 담긴 시입니다. 함께 읽으며 마음을 맑히는 독서목욕을 하십시다.
 

1. 윤동주 시 '십자가(十字架)' 읽기

 
십자가(十字架)
 
윤동주(1917~1945, 중국 길림성 화룡현 명동촌)
 
쫓아오든 햇빛인데
지금 교회당(敎會堂) 꼭대기
십자가(十字架)에 걸리었읍니다.
 
첨탑(尖塔)이 저렇게도 높은데
어떻게 올라갈 수 있을까요.
 
종(鍾)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데
휘파람이나 불며 서성거리다가,

괴로웠든 사나이,
행복(幸福)한 예수·그리스도에게
처럼
십자가(十字架)가 허락(許諾)된다면
 
목아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어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읍니다.
 
▷윤동주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1955년 10주기 증보판 오리지널 디자인, 소와다리, 2002년) 중에서.
 

2. '쫓아오던 햇빛'은 무엇일까요?

 
윤동주 시인님의 시 '십자가(十字架)'는 1941년 5월 31일 쓰인 작품입니다. 시인님 대학 4학년 때입니다. 
 
일제강점기의 암울한 현실 속에서 25세의 시인님은 어떻게 살기를 다짐했을까요?
 
그 비장한 다짐이 든 시를 원문 표기 그대로 감상합니다.
 
'쫓아오든 햇빛인데 / 지금 교회당(敎會堂) 꼭대기 / 십자가(十字架)에 걸리었읍니다'
 
시인님은 1917년생이니 한일합병(1910년)으로 국권을 잃은 아픔의 시간을 오롯이 살아왔네요.
 
그 캄캄한 어둠 속에서 얼마나 '햇빛'을 바라고 또 바랐을까요? 빼앗긴 빛(주권)을 되찾는 '광복(光復)' 말입니다.
 
'쫓아오든 햇빛'. 내가 쫓아오던 햇빛입니다. 모두가 쫓아오던 햇빛입니다. 
 
그렇게 쫓아오던 햇빛이 십자가에 걸렸다고 합니다. 교회당 꼭대기 아득히 높은 곳에 말입니다. 오갈 데 없는 조국의 암울한 현실이 느껴지네요.
 
'첨탑(尖塔)이 저렇게도 높은데 / 어떻게 올라갈 수 있을까요'
 
시가 쓰인 1941년은 한일합병 31년이 지난 해입니다.
 
자신의 힘으로 이 거대한 부정적 현실을 타개할 수 없다는 것을 절감하면서 시인님은 얼마나 절망했을까요?
 
아득히 높은 첨탑을 바라보며 자신의 무기력을 자책하기도 했을까요? 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감으로 시인님의 내면에 고민과 갈등이 깊어지는 것만 같습니다.
 
'어떻게 올라갈 수 있을까요?'. 이 구절에서 올라갈 수 있는 방도,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방도를 고민하는 시인님의 마음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목아지를-드리우고" - 윤동주 시 '십자가' 중에서.

 

 

 

3. 이 비장하고 순결하고 고귀한 결심!

 
'종(鍾)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데 / 휘파람이나 불며 서성거리다가'
 
'종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데'. 종소리는 희망의 징후이겠지요? 그런 반가운 종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다고 하네요.
 
그 절망적인 시간 속에서 시인님이 할 수 있는 일은 '휘파람이나 불며' 서성거리는 일뿐이었을까요?
 
그렇게 서성거리는 고뇌와 성찰의 시간 속에서 시인님은 어떤 생각에 이르게 되었을까요?
 
'괴로웠든 사나이 / 행복(幸福)한 예수·그리스도에게 / 처럼 / 십자가(十字架)가 허락(許諾)된다면'
 
시인님은 이 구절의 중간에 '처럼'을 하나의 독립적인 시행으로 배치해 놓았습니다.
 
이 의도적인 배치 때문에 우리는 이 '처럼'부터 긴장된 마음으로 시행을 따라가게 되네요.
 
'예수 그리스도(Jesus Kristos)'는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정하여 이르는 이름입니다. 
 
'괴로웠던 사나이 행복(幸福)한 예수·그리스도'. 인류의 짐을 진 괴로웠던 사나이, 그러나 십자가에 못 박혀 인류를 구원했던 행복한 메시아입니다.
 
'십자가(十字架)가 허락(許諾)된다면'.  예수 그리스도님이 간 희생의 길을 생각하면서 시인님은 자신도 그 길을 갈 수 있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처럼'을 별행으로 배치하면서까지, 인류의 죄를 대속하는 속죄양의 길을 간 예수 그리스도님의 희생을 깊이 본받고 싶다는 시인님의 간절한 심정이 느껴지네요.
 
우리는 다음 구절에서 피가 뜨거워짐을 느낍니다. 어느 시인이 자신의 시에서 이처럼 붉디붉은 고백을 해놓았던가요!
 
'목아지를 드리우고 /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 어두어가는 하늘 밑에 / 조용히 흘리겠읍니다'
 
'목아지'. '목'이 아니라 '목아지'라고 썼네요. 자신의 목숨을 낮추고 또 낮추어놓았네요.
 
나라 잃고 고통받는 민족을 위한 희생이 자신에게 요구된다면 목숨을 버리는 일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시인님의 의중이 담겨 있는 것만 같습니다.
 
'꽃처럼 피어나는 피'. 피로 핀, 붉디붉은 꽃!
 
그 꽃은 어떤 열매를 맺어야만 마땅할까요? 조국 광복이겠지요?  
 
그 열매를 위해, 일제의 폭압에 억눌려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있는 '어두어가는 하늘 밑에' 그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흘리겠다고 합니다.
 
그것도 '조용히' 말입니다. 민족을 위해 묵묵히 자신의 목숨을 바치겠다고 합니다. 일제에 대항하여 싸우는 길, 자신에게 주어진 순절(殉節)의 운명을 순순히 따르겠다고 합니다.
 
이 얼마나 비장하고 순결하고 고귀한 결심인지요!
 
글 읽고 마음 목욕하는 블로그 '독서목욕'에서 윤동주 시인님의 시를 더 만나보세요.

윤동주 시 바람이 불어

윤동주 시인님의 시 '바람이 불어'를 만납니다. 암울한 시간에도 단단한 자아를 지키며 사랑하며 아파하며 살아가겠다는 윤동주 시인님의 각오가 담긴 시입니다. 함께 읽으며 마음을 맑히는 독

interestingtopicofconversation.tistory.com

반응형

'읽고 쓰고 스미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황동규 시 풍장 1  (97) 2024.06.21
조지훈 시 병에게  (87) 2024.06.20
윤선도 시조 만흥  (86) 2024.06.18
조지훈 시 봉황수  (94) 2024.06.14
윤동주 시 바람이 불어  (97) 2024.06.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