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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고 스미기

윤동주 시 돌아와 보는 밤

by 빗방울이네 2024. 5.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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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시인님의 시 '돌아와 보는 밤'을 만납니다. 어떻게 살아가야할 것인지, 저마다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되는 시입니다. 함께 읽으며 마음을 맑히는 독서목욕을 하십시다.
 

1. 윤동주 시 '돌아와 보는 밤' 읽기

 
돌아와 보는 밤
 
윤동주(1917~1945, 중국 길림성 화룡현 명동촌)
 
세상으로부터 돌아오듯이 이제 내 좁은 방에 돌아와 불을 끄옵니다. 불을 켜 두는 것은 너무나 피로롭은 일이옵니다. 그것은 낮의 연장(延長)이옵기에 -
 
이제 창(窓)을 열어 공기(空氣)를 바꾸어 들여야 할텐데 밖을 가만히 내다 보아야 방(房)안과같이 어두어 꼭 세상같은데 비를 맞고 오든 길이 그대로 비속에 젖어 있사옵니다.
 
하로의 울분을 씻을바 없어 가만히 눈을 감으면 마음속으로 흐르는 소리, 이제 사상(思想)이 능금처럼 저절로 익어 가옵니다.
 
▷윤동주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1955년 10주기 증보판 오리지널 디자인, 소와다리, 2002년) 중에서
 
 

2. '대학 4학년생 윤동주'의 고민은?

 
윤동주 시인님의 시 '돌아와 보는 밤'을 원본 그대로 만납니다. 1941년 6월에 쓰인 시입니다. 시인님 25세, 연희전문 4학년 재학 중인 때네요.
 
이 시기는 일제강점기시대, 일제의 폭압이 점점 극에 달하던 시기였습니다. 1937년 중일전쟁을 일으킨 일본이 전시(戰時) 비상체제를 가동하며 우리 민족을 압박하던 암담한 시간이었습니다. 일본의 미국 하와이 진주만 기습(1941. 12.)으로 촉발된 미·일전쟁을 6개월여 앞둔 시점이었고요.
 
우리 민족이 겪고 있는 고난을 온몸으로 목도하고 겪으며 '대학 4학년생의 25세 청년 윤동주'는 어떤 생각을 하며 지냈을까요?
 
'세상으로부터 돌아오듯이 이제 내 좁은 방에 돌아와 불을 끄옵니다. 불을 켜 두는 것은 너무나 피로롭은 일이옵니다. 그것은 낮의 연장(延長)이옵기에 -'
 
우리가 저녁에 집에 돌아오는 일은 세상으로부터 돌아오는 일일까요?

 

'세상으로부터 돌아오듯이'. 시인님이 낮에 활동한 그 세상이 얼마나 힘든 세상이었으면 저녁에 집으로 돌아오는 일이 마치 세상으로부터 돌아오는 듯한 일이라고 하네요.

 

그렇게 집에 온 시인님은 '내 좁은 방'의 불을 켰다가 끈다고 하네요. '불을 켜 두는 것'은 '낮의 연장'이라고 하고, 그것은 '너무나 피로롭은 일'이라고 합니다. 일제강점기, '낮'의 시간은 시인님에게 고통과 울분의 시간입니다. 
 
그래서 '불을 끄옵니다' '피로롭은 일이옵니다' '낮의 연장이옵기에-' 같은 구절에서 고통과 울분을 호소하는 시인님의 간절한 기도의 숨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습니다.
 

그런데요, 낮으로부터 피신하여 도착한 '내 좁은 방'은 과연 시인님에게 안식을 주는 공간이었을까요?

"사상이-능금처럼"-윤동주-시-'돌아와-보는-밤'-중에서.
"사상이 능금처럼" - 윤동주 시 '돌아와 보는 밤' 중에서.

 

 

 

3. '능금처럼 저절로 익어가는 사상'은 무슨 뜻?

 
'이제 창(窓)을 열어 공기(空氣)를 바꾸어 들여야 할텐데 밖을 가만히 내다 보아야 방(房)안과같이 어두어 꼭 세상같은데 비를 맞고 오든 길이 그대로 비속에 젖어 있사옵니다.'
 
시인님은 '내 좁은 방'의 '창을 열어 공기를' 환기하려 합니다.
 
그러나 밖을 가만히 내다 보니 방안과 같이 어두운 세상이라고 하네요.
 
방안과 밖이 똑같이 어두운 현실이라는 말이네요. 칠흑같이 어두운 일제강점기의 절망적인 시간 말입니다.
 
'비를 맞고 오든 길'은 슬픔과 눈물 속의 시간을 말하겠지요? 
 
'길이 그대로 비속에 젖어 있사옵니다'.
 
- 하느님, 우리 민족의 고통을 헤아려주십시오. 우리의 모든 길이 슬픔과 눈물 속에 젖어 있사옵니다.
 
시인님의 이런 기도의 뜨거운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은 구절이네요.
 
슬픔과 눈물이 그치지 않는 고통과 울분의 시간입니다.
 
그런 '비'의 시간이 지속되고 있는 암담함이 우리 가슴으로 전해져 오는 것만 같습니다. 
 
'하로의 울분을 씻을바 없어 가만히 눈을 감으면 마음속으로 흐르는 소리, 이제 사상(思想)이 능금처럼 저절로 익어 가옵니다.'
 
세상이 온통 슬픔과 눈물에 젖어 있는 암울한 '비'의 시간입니다.
 
'세상으로부터 돌아오듯이 이제 내 좁은 방으로' 돌아와도 여전히 변하지 않는, '비'에 젖은 시간입니다.
 
그 속에서 시인님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낮'의 세상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길은 무얼까요?
 
가만히 눈을 감는 일이었네요.
 
'내 좁은 방'으로 들어와도 여전히 밖과 같은 고통과 울분의 시간, 그래서 이제 나의 내면으로 들어갑니다. 
 
그래서 내면의 소리, '마음속으로 흐르는 소리'를 듣습니다. 그 소리는 자기 성찰의 소리일 것입니다.
 
'25세 대학 4학년 청년 윤동주'는 내면으로부터 어떤 소리를 들었을까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할 것인가에 대한 각오였을 것만 같습니다. 자신이 가야할 삶의 길 말입니다.
 
윤동주 시인님이 연희전문학교 입학 후 처음 쓴 시가 '새로운 길'입니다.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 오늘도 ··· 내일도 ···'
▷윤동주 시 '새로운 길' 중에서
 
이미 나 있는 길이 아니라 '언제나 새로운 길'을 가겠다고 합니다. 남들이 가는 길이 아니라 '새로운 길'을 가겠다고요.
 
그 '새로운 길'을 가겠다는 다짐은 연희전문 4년 내내 익어갔겠지요?
 
'이제 사상(思想)이 능금처럼 저절로 익어 가옵니다'
 
'사상(思想)'의 사전적 의미는 '어떠한 사물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구체적인 사고나 생각', 또는 '지역, 사회, 인생 등에 관한 일정한 인식이나 견해'라는 뜻입니다. 후자에 더 눈길이 가네요.
 
일제식민지라는 고난에 처한 민족을 위해 내가 할 일, 내가 가야할 '새로운 길'에 대한 '사상(思想)' 익어간다는 말이겠지요?
 
작은 열매가 영글면 햇빛과 비와 바람 속에서 저절로 익어가는 사과(능금)처럼요.
 
'새로운 길'이라는 작은 열매가 영글어 이제 저절로 커지고 익어간다고 하네요.
 
'이제 사상(思想)이 능금처럼 저절로'
 
이 구절에서는 사상이 능금처럼 저절로 익어가는 것을 누구도 막을 수 없다는 뉘앙스가 느껴집니다. 능금이 저절로 익어가는 것을 아무도 막을 수 없듯이 말입니다.
 
그 사상은 얼마나 단단한 각오였겠는지요. 누구도 되돌릴 수 없는 각오 말입니다.
 
이 시의 제목 '돌아와 보는 밤'은 세상으로부터 돌아와 자신의 내면을, 자신의 사상(思想)을 다시한번 깊이 헤아려 보는 밤이라 새겨봅니다.
 
'돌아와 보는 밤', 우리의 내면에는 저마다 어떤 능금이 저절로 익어가고 있을까요?

글 읽고 마음 목욕하는 블로그 '독서목욕'에서 윤동주 시인님의 시를 더 만나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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