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읽고 쓰고 스미기

김동환 시 오월의 향기

by 빗방울이네 2024. 5. 24.
반응형

김동환 시인님의 시 '오월의 향기'를 만납니다. 종달새가 오월의 하늘에 오선지를 그리고 음표를 붙여 작곡하는 장면이 인상적인 시입니다. 함께 읽으며 마음을 맑히는 독서목욕을 하십시다.
 

1. 김동환 시 '오월의 향기' 읽기

 
오월(五月)의 향기(香氣)
 
김동환(1901~?, 함북 경성)
 

오월의 하늘에 종달새 떠올나 보표(譜表)를 그리자 산나물 캐기 색시 푸른 공중 치어다 노래 부르네, 그 음부(音符) 보고 봄의 노래를.
 
봄의 노래 바다에 떨어진 파도를 울리고 산에 떠러진 종달새 울니더니 다시 하늘로 기어올나 구름 속 거문 소낙이까지 울려 놋네.
 
거문 소낙이 일만 실비를 물고 떠러지자 땅에는 흙이 젓물가치 녹아지며 보리바티 석 자나 자라나네.
 
아, 오월의 하늘에 떠도는 종달새는 풍년을 물고 산들에 떠러지네, 떠러질 때 우린들 하늘 밧기라 풍년이 안오랴.
 

오월의 산에 올라 풀 비다 소리치니 하늘이 넓기도 해 그 소리 다시 도라안지네 이러케 넓다면 나라라도 가 보고 십흔 일 넉이라도 가 보라 또 소리첫네.
 

벽에 걸닌 화액(畵額)에 오월 바람에 터질 듯 익은 내 나라가 걸녀 잇네 꿈마다 기어와선 노다가두 날 밝기 무섭게 도로 화액(畵額) 속 풍경화(風景畵)가 되여 버리는 내 나라가.
 
▷「김동환 시선」(김동환 지음, 방인석 엮음, 지식을만드는지식, 2013년) 중에서
 

2. 종달새가 하늘에 오선지를 그리고 음표 찍는 오월

 
김동환 시인님의 시 '오월의 향기'를 발표 당시 원본 그대로 감상해 봅니다.
 
위에 소개된 시는 1929년 「삼인(三人) 시가집(詩歌集)」에 실린 시의 원본 그대로입니다. 다만 원본에 'ㅅㄷ'으로 표기만을 'ㄸ'으로 바꾸었습니다.
 
시인님 20대 후반의 시입니다.
 
모두 6행으로 이루어진 기다란 산문시인데요, '○' 표시로 앞의 4행을 묶었고, 나머지 한 행씩을 '○' 표시로 별도로 구분해 두었네요. '○' 표시대로 나누어 읽어달라는 시인님의 눈짓일까요?
 
먼저 첫 번째  '○' 표시에 묶인 4개 행을 먼저 만나봅니다.
 
'오월의 하늘에 종달새 떠올나 보표(譜表)를 그리자 산나물 캐기 색시 푸른 공중 치어다 노래 부르네, 그 음부(音符) 보고 봄의 노래를'
 
만물이 약동하는 오월의 풍경을 이처럼 생생히 그림으로 보여주는 시는 달리 없을 것만 같습니다.
 
종달새는 풀밭에서 하늘로 수직으로 치솟아 높이 날아오르는 천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시인님은 오월의 역동성을 우리에게 전해주기 위해 이렇게 종달새를 대표 선수로 등장시켰네요.
 
'보표(譜表)'는 '악보를 그리기 위해 가로로 그은 다섯 줄'을 말합니다. 오선(五線)이네요.
 
그러니까 오월의 하늘을 오가는 종달새의 동선이 바로 '하늘 오선지'가 되었네요!
 
'음부(音符)'. 악보에서 음의 장단과 고저를 나타내는 음표를 말합니다. 음표는 바로 작은 종달새의 몸을 말하겠네요. 
 
종달새가 하늘에서 움직인 동선이 오선지가 되고, 그 오선지 위를 종달새가 날아다니며 몸을 찍어 작곡을 한 셈입니다.
 
종달새가 공중에 그린 악보를 쳐다보며 산나물 캐던 색시가 노래를 부른다고 하네요. 아름다운 풍경입니다.
 
'봄의 노래 바다에 떨어진 파도를 울리고 산에 떠러진 종달새 울니더니 다시 하늘로 기어올나 구름 속 거문 소낙이까지 울려 놋네'
 
산나물 캐던 색시가 부르는 봄노래의 마법을 좀 보셔요.
 
바다에 떨어져 파도를 울린다고 하네요. 오월 바다에 일렁이는 푸른 파도도 색시의 봄 노래 때문이라고 하고요.
 
산에 떨어져 종달새를 울린다고 하네요. 그러면 그 종달새는 어쩌겠는지요? 춘정을 참지 못하여 다시 하늘로 치솟겠지요?
 
그렇게 '하늘로 기어올라 거문 소낙이까지 울려 놋네'라고 합니다. 검은 소나기. 소나기가 내릴 때 하늘이 갑자기 어두워지는 느낌을 전해주네요.
 
오월에, 만물이 생동하는 오월에 그 검은 소나기가 울면 어떻게 되겠는지요?
 
'거문 소낙이 일만 실비를 물고 떠러지자 땅에는 흙이 젓물가치 녹아지며 보리바티 석 자나 자라나네'
 
그 검은 소나기가 일만(一萬) 실비를 물고 떨어진다고 합니다. 봄비는 가느다란 실비입니다. 그 실 같은 빗줄기가 한꺼번에 쏟아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네요.
 
그러면 대지는 어떻게 되겠는지요? '흙이 젓물가치 녹아지며'. 흙이 녹는데요, 그것도 '젖물' 같이 녹아진다고 합니다! 젖물요, 아기가 먹는 젖물 말입니다. 땅이 실비에 젖어 흙이 젖물이 되었다네요. 
 
무엇이든 키워주는 젖물입니다. 무엇이든 살려주는 젖물입니다. 
 
그러면 보리밭이 고요히 있을리가요. 쑥쑥 석 자나 자란다고 하네요. 젖물 먹고 말입니다. 
 
'아, 오월의 하늘에 떠도는 종달새는 풍년을 물고 산들에 떠러지네, 떠러질 때 우린들 하늘 밧기라 풍년이 안오랴'
 
종달새는 수직으로 공중에 치솟아올라 자신의 둥지가 있는 산이나 들에 다시 수직으로 떨어집니다.
 
그것도 풍년을 물고 떨어진다고 하네요. 산들에 종달새들이 치솟았다가 다시 떨어지는 것을 보고 풍년을 점쳤을까요?
 
종달새들이 평화롭게 사는 시공간에 어찌 풍년이 오지 않겠는지요?
 
그런데요, 마지막 구절 '우린들 하늘 밧기라 풍년이 안오랴' 좀 보셔요.
 
왜 우리는 '하늘 밖'이라고 했을까요?
 
이 시가 발표된 때(1929년)는 일제 강점기입니다. 그래서 억압받는 우리는 '하늘 밖'이라고 했네요.
 
'우린들 하늘 밧기라 풍년이 안 오랴'. 아무리 옥죄어도 자연의 순리(順理)를 막지는 못할 것이라는 말이네요.
 
이렇게 첫 번째 연('○'에 묶인 4개의 행)에 시인님은 오월의 풍요로운 정경을 모아두었네요.

"오월의 하늘에" - 김동환 시 '오월의 향기' 중에서.

 

 

 

3. 풍요로운 오월의 시간으로 가고 싶은 마음

 
두 번째 연입니다.
 
'오월의 산에 올라 풀비다 소리치니 하늘이 넓기도 해 그 소리 다시 도라안지네 이러케 넓다면 나라라도 가 보고 십흔 일 넉이라도 가 보라 또 소리첫네'
 
'풀비다'는 '풀베다'의 방언입니다. 시인님은 '오월의 산에 올라' 풀을 베다 소리를 칩니다. 야호!! 하고 외쳤을까요? 
 
'안지네'의 '안지다'는 '앉다'의 방언으로, 그래서 '도라안지네'는 '돌아앉네'로 새깁니다. 그렇게 외친 소리가 다시 메아리로 돌아온다는 말이겠지요?
 
산에서 소리를 치는 누구라도 메아리가 가본 곳까지 가고 싶습니다. 시의 화자도 날아서라도 가고 싶다고 하네요. 그렇게 날아가지 못하니 넋이라고 가보라고 소리쳤다고 합니다.
 
오월의 풍요로움을 마음껏 누릴 수 없는 시대를 사는 화자의 설움이 느껴지는 대목입니다.  
 
이 시의 마지막 연, 세 번째 연입니다.
 
'벽에 걸닌 화액(畵額)에 오월 바람에 터질 듯 익은 내 나라가 걸녀 잇네 꿈마다 기어와선 노다가두 날 밝기 무섭게 도로 화액(畵額) 속 풍경화가 되여 버리는 내 나라가'
 
마지막 연에서 돌연 '나라'가 등장했네요. '오월의 바람에 터질 듯 익는 내 나라'입니다.
 
그런데요, 그렇게 풍요로운 '내 나라'의 풍경은 벽에 걸린 액자 속의 풍경화라고 합니다.
 
앞의 1연에서 보여준 풍경을 떠올려 봅니다.
 
종달새가 오월의 하늘에 오선지를 그리고, 그 오선지 위에 자신의 앙증맞은 몸으로 이분음표 사분음표 팔분음표를 그리고, 그 악보를 보고 색시가 노래하고, 소나기가 땅을 깨워 보리가 석자나 자라나는, '오월의 바람에 터질 듯 익은' 풍경입니다.
 
이런 풍경은 '화중지병(畵中之餠)'이네요. 화자가 지금은 가질 수 없는 액자 속의 것입니다.
 
이 보석처럼 빛나는 '내 나라'로, 희망과 평화가 넘치는 시간으로 돌아가고 싶은 화자의 간절함이 느껴지는 시입니다.
 
글 읽고 마음 목욕하는 블로그 '독서목욕'에서 김동환 시인님의 시를 더 만나 보세요.

김동환 시 산 너머 남촌에는

김동환 시인님의 시 '산 너머 남촌에는'을 만납니다. 읽으면 마음이 흥겨워지고 고와지는 시입니다. 함께 읽으며 마음을 맑히는 독서목욕을 하십시다. 1. 김동환 시 '산 너머 남촌에는' 읽기 산(

interestingtopicofconversation.tistory.com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