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읽고 쓰고 스미기

가곡 보리밭은 박화목 동시 옛 생각

by 빗방울이네 2024. 5. 29.
반응형

박화목 시인님의 동시이자, 우리의 대표 가곡 '보리밭'의 노랫말이 된 '옛 생각'을 만나봅니다. 저마다의 영혼을 살찌게 해주던 아련한 추억 속으로 데려다주는 시입니다. 함께 읽으며 부르며 마음을 맑히는 독서목욕을 하십시다.
 

1. 박화목 동시 '옛생각' 읽기

 
옛 생각
 
박화목(1924~2005년, 황해도 황주)
 
보리밭 사잇길로
걸어가면,
 
뉘 부르는 소리 있어
나를 멈춘다.
 
옛 생각이 외로와
휘파람 불면,
 
고운 노래 귓가에 
들려온다.
 
둘러봐야 아무도
보이지 않고,
 
저녁놀 븬 하늘만
눈에 가득 차네.
 
▷「한국아동문학전집 9 - 박화목 방기환 최요안 작품집」(민중서관, 1978년) 중에서
 
아동문학가이자 시인인 박화목 님(1924~2005년, 황해도 황주)은 1941년 동시 '겨울밤' '피라미드'를 「아이생활」에 발표했고 1946년 월남하여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저서로는 시집 「시인과 산양」 「그대 내 마음 창가에」 등, 동시집 「초롱불」, 동화집 「부엉이와 할아버지」 「꽃팔이 소녀의 그림」 등, 소년소설집 「밤을 걸어가는 아이」 등, 「박화목 아동문학 독본」 「흥부전」 등이 있습니다.
우리의 대표 가곡 '보리밭'을 비롯 동요 '과수원길'도 박화목 시인님의 작품입니다.
 

2. 전쟁통에 부산자갈치시장에서 만들어진 가곡 '보리밭'

 
우리 모두 좋아하는 가곡 '보리밭'의 노랫말은 박화목 시인님의 동시입니다.
 
'옛 생각'이라는 제목의 동시가 그것입니다.
 
이 동시에 윤용하 작곡가님(1922~ 1965년, 황해도 은율)이 곡을 붙이고, 제목을 '보리밭'으로 바꿔 오늘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가곡 '보리밭'의 노래비가 부산 남포동 자갈치시장 친수공간에 있습니다.
 
바로 가곡 '보리밭'의 탄생지가 이곳이기 때문입니다.
 
박화목 시인님과 윤용하 작곡가님 모두 황해도 출신입니다.
 
1951년 부산으로 피난 온 두 사람이 부산 자갈치시장에서 의기투합해 만든 가곡이 바로 '보리밭'입니다.
 
그 당시에는 6·25 동란이란 민족상잔의 비극 속에서도
우리는 동요(動搖)되지 말고 오는 날의 꿈을 키우며 살자는 애틋한 생각들이 있었다···
나는 '보리밭'의 노래를 들을 적마다 피란살이 어려움 속에서라도
낭만을 잃지 않고 아름다운 이상의 세계를 동경하며 나의 영혼을 살찌게 하던
그날의 추억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을 느끼는 것이다.
▷박화목 수필집 「보리밭, 그 추억의 길목에서」(선경도서출판, 1972년) 중에서
 
한국전쟁의 폐허 속에서 탄생한 노랫말이네요.
 
절망과 고통 속에 허우적거리는 사람들에게 '오는 날의 꿈을 키우며 살자'라면서 다독여주고 싶어 만든 노래라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노래를 부르다 보면 우리의 마음속에 가라앉아있던 조용한 정서가 깨어나면서 아련한 추억 속으로 젖어드는 것만 같습니다. 
 
'보리밭 사잇길로 / 걸어가면  / 뉘 부르는 소리 있어 / 나를 멈춘다'
 
박화목 시인님은 고향 황해도의 보리밭을 떠올리며 이 동시 '옛 생각'을 썼다고 합니다.
 
시인님은 눈을 감고, 두고 온 고향의 '보리밭 사잇길'을 천천히 걸어가고 있네요.
 
이 동시에 멜로디를 붙인 윤용하 작곡가님은 이 구절에서 언제나 앞으로 뛰어가려고만 하는 우리를 붙잡습니다. 이렇게요.
 
'보~~~리~~~밭~~~♪'
 
그렇게 천천히 걸어가면 누군가 부르는 소리가 있다고 하네요. 저녁밥 먹으러 오라는 어머니의 목소리였을까요? 다정한 연인이나 친구가 부르는 소리였을까요?  
 
그 소리가 나를 멈추게 한다고 합니다. 갈 수 없게 된 고향에서의 옛 생각을 떠올리며 걸음을 멈추었네요. 그 먼 추억의 뒤안길에서 서성거리는 시인님의 뒷모습이 보이는 것만 같습니다. 
 

"보리밭 사잇길" - 박화목 동시 '옛 생각' 중에서.

 

 


 

3. 영혼을 살찌워준 그리운 고향을 노래한 동시 

 
시인님은 1946년 월남했습니다. '38도선'이라는 시인님의 동시에 남쪽으로 내려오며 조마조마하던 그날의 상황이 나와 있네요.
 
솔밭 길 산비탈 길 / 사십 리 길은 / 초생달이 기우는 / 으스름 밤 길
내 나라 내 땅 안에 내 길 걷는데 / 무엇이 무서워서 / 밤을 새워 걷나요
서러운 국경 / 들메 참새들도 / 하늘의 아기별도 / 모두 잠들었는데
산고개를 살근살근 / 기어 넘고요 / 풀숲 새 몰래몰래 / 걸었습니다
▷박화목 동시 '38도선' 전문
 
38선이 봉쇄되어 버린 1945년 8월부터는 남과 북이 서로 왕래할 수 없었습니다. 그 이듬해 2월 시인님은 새들도 아기별도 잠든 야밤에 산고개를 살금살금 기어서 넘고, 풀숲 사이를 몰래몰래 걸어서 남쪽으로 왔다고 합니다. 38선을 지키는 군인들에게 들키지 않으려고요.
 
'옛 생각이 외로와 / 휘파람 불면 / 고운 노래 귓가에 / 들려온다'
 
이제는 영영 갈 수 없게 된 고향이네요.
 
'옛 생각이 외로와'. 이 곡의 클라이맥스가 시작되는 부문입니다. 외로움의 클라이맥스요.
 
어찌 시인님만 그렇겠는지요. 우리 모두 잃어버린 마음의 고향이 떠올라 외로움이 전염되어 오네요.
 
'휘파람'. 이 구절의 음이 가장 높습니다. 마치 휘파람이라도 불듯 소리치는 구간입니다. 그렇게 소리치면 외로움을 떨쳐낼 수 있기라도 하듯, 이 높은 멜로디를 타며 우리는 목청껏 ‘휘파람’을 불러봅니다. 
 
그러면 '고운 노래 귓가에 들려온다'라고 합니다. 어머니가 불러주던 자장가일까요? 사랑하는 이의 콧노래였을까요? 나를 키워주던 소리, 내 영혼을 살찌워주던 소리입니다. 그렇게 환청처럼 들리는 그 가락은 얼마나 고운 가락이겠는지요.
 
'둘러봐야 아무도 / 보이지 않고 / 저녁놀 븬 하늘만 / 눈에 가득 차네'

'아무도 보이지 않고'. 이 가락에 애타는 마음을 심어두었네요. 앞의 '휘파람'처럼 '보이지'는 음이 가장 높은 구간입니다.
 
그러나 '않~~~~고♪'에서 아무도 보이지 않는 막막함을 보여주려는 듯 점점 잦아드는 멜로디가 애절함을 고조시키네요.
 
'저녁놀 븬 하늘만 눈에 가득 차네'. 노래에서는 이 구절 속의 '눈에 가득 차네'가 '눈에 차누나'로 바뀌었습니다.
 
그런데요, 이 눈에 가득 차는 '저녁놀'은 무얼까요? 바로 고향의 '저녁놀'입니다. 내 영혼을 부풀려주던 저녁놀 말입니다.
 
지금 눈에 가득 차는 저녁놀은 같은 시간 고향에도 아름답게 노을 지고 있겠지요?
 
그런 생각으로 저녁놀을 바라보는 시인님의 눈에는 노을빛 눈물이 흐르고 있겠지요?
 
누구에게라도 시인님처럼 지금은 갈 수는 고향이 있습니다.
 
나를 키워준 곳, 내 영혼을 살찌워준 곳 말입니다.
 
비록 지금은 갈 수 없지만, 우리는 이렇게 마음으로 그곳에 다녀와 오늘의 외로움을 달래며 살아가네요.

글 읽고 마음 목욕하는 블로그 '독서목욕'에서 분단의 아픔이 스며있는 시를 만나 보세요.

김종삼 시 민간인

김종삼 시인님의 시 '민간인'을 만납니다. 일곱 줄의 짧은 시이지만 한 권의 책보다 더 긴 사연을 담고 있는 시입니다. 함께 읽으며 마음을 맑히는 독서목욕을 하십시다. 1. 김종삼 시 '민간인' 읽

interestingtopicofconversation.tistory.com

반응형

'읽고 쓰고 스미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노천명 시 이름 없는 여인 되어  (113) 2024.05.31
조지훈 시 낙화  (117) 2024.05.30
윤동주 시 돌아와 보는 밤  (91) 2024.05.28
김동환 시 오월의 향기  (131) 2024.05.24
소리새 노래 오월의 편지  (112) 2024.05.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