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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고 스미기

김남조 시 바람

by 빗방울이네 2024. 5.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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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조 시인님의 시 '바람'을 만납니다.
 
마음이 바람처럼 자유로워지는 시입니다.
 
함께 읽으며 마음을 맑히는 독서목욕을 하십시다.
 

1. 김남조 시 '바람' 읽기

 
바람
 
김남조(1927~2023, 경북 대구)
 
바람 부네
바람 가는 데 세상 끝까지
바람 따라 나도 갈래
 
햇빛이야 청과 연한 과육에
수태를 시키지만
바람은 과원 변두리나 슬슬 돌며
외로운 휘파람이나마
될지 말지 하는 걸
 
이 세상 담길 곳 없는 이는
전생이 바람이던 게야
바람이 의관(衣冠)을 쓰고 나들이온 게지
 
바람이 좋아
바람끼리 휘이휘이 가는 게 좋아
헤어져도 먼저 가 기다리는 게
제일 좋아
 
바람 불며
바람 따라 나도 갈래
바람 가는 데 멀리멀리 가서
바람의 색시나 될래
 
▷「김남조 시 99선」(김남조 지음, 도서출판 선, 2002년) 중에서.
 

2. 자유롭게 과원 주변이나 슬슬 도는 바람처럼

 
김남조 시인님의 시 '바람'은 자유에 대한 시로 읽힙니다.
 
만나볼까요?
 
'바람 부네 / 바람 가는 데 세상 끝까지 / 바람 따라 나도 갈래'
 
바람의 인상은 자유입니다.
 
아무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어떤 목적지도 없이 자유롭게 떠도는 것이 바람입니다.
 
'바람 따라 나도 갈래'. 이러저러한 일들이 몸과 마음을 구속하는 일상에서 벗어나 우리도 바람을 따라 어디로든 가고 싶네요. 자유롭게요.
 
'햇빛이야 청과 연한 과육에 / 수태를 시키지만
바람은 과원 변두리나 슬슬 돌며 / 외로운 휘파람이나마 / 될지 말지 하는 걸'
 
바람의 인상은 또 주변인 같기만 합니다.
 
어느 쪽에도 완전히 속하지 않는 존재 말입니다.
 
햇빛은 꽃을 피워 열매를 맺게 하고 그 푸른 과일을 빨갛게 익히는 중심적 존재라고 합니다.
 
그러나 바람은 그렇지 않다고 합니다.
 
'바람은 과원 변두리나 슬슬 돌며 / 외로운 휘파람이나 / 될지 말지 하는 걸'
 
이 구절에서 어떤 느낌이 드는지요?
 
1연에서 '바람 따라 나도 갈래'라고 한 걸 보면, '변두리나 슬슬' 도는 그런 바람이 좋다는 이야기네요.
 
시인님은 햇빛이 아니라 바람이 좋다고 합니다.
 
다들 되고 싶어하는, 늘 중심이 되어 세상을 이끌어가는 그런 이 말고요.
 
그 중심의 주변이 되어 흐르는 바람이 좋다고 합니다.
 
과일에게 영양을 주며 영글게 하는 햇빛이 아니라 그 과일이 익어가는 과수원 주변을 돌며 바람소리나 내는 바람이 좋다고 하네요.
 
'외로운 휘파람이나마 될지 말지 하는 걸'
 
그 '외로운 휘파람'조차 될지 말지 할 정도로 안 보이고 안 들리는 존재가 바람이라고 하네요.
 
그런 바람은 얼마나 희미할까요?
 

"바람의 색시나 될래" - 김남조 시 '바람' 중에서.

 

 

 

3. 제일 좋은 것은 바람처럼 함께 있는 것 

 
'이 세상 담길 곳 없는 이는 / 전생이 바람이던 게야 / 바람이 의관(衣冠)을 쓰고 나들이온 게지'
 
바람의 인상은 또한 비정형적(非定型的)이네요.
 
형태가 없습니다. 바람의 처소(處所)는 없습니다. '이 세상에 담길 곳'이 없습니다. 
 
그런 바람 같은 사람이라면 이 정형화된 삭막한 현실을 견디기 어려워하는 자유로운 사람일 것입니다.
 
그런 자유로운 바람 같은 이에게 온갖 욕망이 난무하는 현실은 어울리지 않을 것입니다.
 
'의관(衣冠)'은 남자가 정식으로 갖추어 입는 옷차림을 말합니다. 
 
시인님이 생각하는 바람이라는 존재는 사랑하는 이를  말할까요?
 
어디에 담기고 싶지 않은, 아니 어디 담길 곳 없는 우리도 전생에 바람이었을까요?
 
'바람이 좋아 / 바람끼리 휘이휘이 가는 게 좋아 / 헤어져도 먼저 가 기다리는 게 / 제일 좋아
바람 불며 / 바람 따라 나도 갈래 / 바람 가는 데 멀리멀리 가서 / 바람의 색시나 될래'
 
바람의 인상은 또한 함께 있는 것입니다. 
 
'헤어져도 먼저 가 기다리는'. 헤어지면 볼 수 없는 우리네 삶과는 달리 바람은 '헤어져도 먼저 가' 기다린다고 합니다.
 
시인님은 바람이 자유롭고 주변인적이며 비정형적인 면도 좋지만 '헤어져도 먼저 가 기다리는 게', 함께 있는 것이 제일 좋다고 합니다.
 
그런 '바람의 색시나 될래'라고 합니다.
 
그것도 '멀리멀리 가서' 말입니다.
 
현실 세계를 벗어나 자유로운 바람과 늘 함께 있고 싶은 마음이 느껴지네요.
 
바람의 품에 안기고 싶고, 바람과 함께 살고 싶은 마음이 느껴지네요.
 
그런데요, '바람이 되고 싶다'라고 하지 않고 왜 '바람의 색시'가 되고 싶다고 했을까요?
 
'바람은 과원 변두리나 슬슬 돌며 / 외로운 휘파람이나마 / 될지 말지 하는 걸'
 
앞의 2연에서 이처럼 과일을 영글게 하는 햇빛보다 그 과일의 과수원 주변을 도는 바람이 좋다고 했습니다.
 
이 점을 떠올리면 바람이 아니라 바람의 색시가 되고 싶다는 시인님의 마음이 그려질 것 같습니다.
 
그 자신이 더 자유로운 존재로 살고 싶은 마음일까요?
 
이 시 '바람'을 읽고 나니, '바람과 나'라는 한대수 가수님의 노래가 생각나네요. 
 
이 노래와 함께 시를 감상하면 참으로 자유로운 '무명(無名) 무실(無實) 무감(無感)한' 바람의 색시가 되겠네요.
 
끝 끝없는 바람 / 저 험한 산 위로 나뭇잎 사이 불어 가는 / 아, 자유의 바람 / 저 언덕 넘어 물결같이 춤추던 님
무명(無名) 무실(無實) 무감(無感)한 님 / 나도 님과 같은 인생을 / 지녀볼래 지녀볼래
▷한대수 노래 '바람과 나'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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