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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고 스미기

박진규 시 산호자처럼 산호자 쌈 사람주나무

by 빗방울이네 2024. 5.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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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규 시인님의 시 '산호자처럼'을 만납니다. 5월의 별미, 산호자나무의 잎으로 해 먹는 쌈에 대한 시입니다. 함께 읽으며 마음을 맑히는 독서목욕을 하십시다.
 

1. 박진규 시 '산호자처럼' 읽기

 
산호자처럼
 
박진규(1963년~ , 부산)
 
나뭇잎인데 쌈 싸 먹는 나뭇잎이다
기장 사람들이 봄젓과 함께 오래도록 좋아하는 나뭇잎이다
목련 나뭇잎 같기도 감 나뭇잎 같기도 한데
어떤 맛인지는 딱 잘라 말해줄 수 없는 나뭇잎이다
아무 맛도 안 나는 듯해서 사람들이 잘 모르는 나뭇잎이라
좌중에 있는 듯 없는 듯 유유자적한 나뭇잎이다
그래도 아는 사람은 정말 친한 나뭇잎이라
해마다 오월이면 저절로 끌리며 산에 가는 나뭇잎이다
처음 만나는 사이라도 이 나뭇잎을 아는 사람이라면
말없이도 통하는 신묘한 나뭇잎이다
 
▷「기장문학」(2021년 봄호) 중에서.
 

2. 5월의 별미, 산호자 쌈을 드신 적이 있나요?

 
박진규 시인님의 시 '산호자처럼'에 등장하는 산호자는 무얼까요?
 
도서관에 가서 나무 사전을 찾아 넘겨봅니다.
 
몇 권의 나무 사전의 목차에 '산호자나무'는 안 보이고 '사람주나무'가 정식 명칭으로 등록되어 있네요.
  
사람주나무라는 이름은 경상도에서 부르는 '산호자나무'가 변화했거나 채록 과정에서 변형된 것으로 추정한다.
경상남도에서는 산호자나물이라고 하여 어린잎을 살짝 데쳐서 젓국 양념에 버무려 먹는데···.
▷「한국 식물 이름의 유래」(조민제 등 편저, 심플라이프 펴냄, 2021년) 중에서
 
그러니까 경상도에서 불리던 '산호자나무'라는 이름이 먼저였네요. 
 
산호자나무는 중부 이남에, 산 중턱에 많이 자생하는 나무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빗방울이네도 산호자 여린 잎을 채취하러 양산부산대학교 병원 뒤 오봉산에 간 적이 있습니다.
 
가파른 중턱에 산호자나무가 많았습니다.
 
나무껍질이 회백색이어서 멀리서 보아도 눈에 잘 띄는, 아주 미끈하게 잘 생긴 나무입니다.
 
'나뭇잎인데 쌈 싸 먹는 나뭇잎이다 / 기장 사람들이 봄젓과 함께 오래도록 좋아하는 나뭇잎이다'
 
그 나뭇잎을 쌈으로 싸 먹는다고 합니다. 산호자나무, 즉 사람주나무 나뭇잎 말입니다.
 
빗방울이네도 쌈을 좋아해서 손바닥 위에 펼쳐지는 잎사귀라면 다 쌈 싸 먹고 싶을 정도랍니다. 
 
산호자나무는 6월에 꽃이 피고요, 꽃이 피기 전 5월에 여린 잎을 따 끓는 물에 데쳐서 쌈으로, 또는 나물로 먹습니다.
 
빗방울이네가 좋아하는 어느 노시인님은 먹기 위해 산호자 잎을 채취할 때 잎이 너무 여려도 안 되고 너무 익어도 안 된다고 했습니다.
 
익다니요? 열매가 아닌 잎이 어떻게 익나요?
 
산호자를 좋아하는 그 노시인님은 잎도 익는다고 하네요. 그것도 적당히 익어야 한다고 합니다.
 
너무 부드럽지도 너무 거칠지도 않은 그 중간 즈음에 잎을 채취해야 최고의 맛을 느낄 수 있다고요.
 
그 연두색이 알맞게 익은 잎을 따서 끓는 물에 삶으면 잎이 갈색으로 변합니다. 
 
그 갈색 산호자 잎을 손바닥 위에 올리고 흰밥을 올리고 젓갈을 올립니다.
 
어떤 맛일까요? 
 
'목련 나뭇잎 같기도 감 나뭇잎 같기도 한데 / 어떤 맛인지는 딱 잘라 말해줄 수 없는 나뭇잎이다'
 
산호자 잎의 형태는요, 세로로 긴 타원형인데 그 생김새가 시에 나온 것처럼 목련 나뭇잎 같기고 하고 감 나뭇잎 같기도 합니다.
 
그런데 왜 '어떤 맛인지는 딱 잘라 말해줄 수 없는 나뭇잎'이라고 할까요?
 
이것이 산호자 쌈의 묘미입니다.
 
다른 나뭇잎은 자신만의 특유의 향이 있습니다.
 
그런데요, 산호자 잎은요, 특별한 향이 없어서 어느 양념과도 잘 어울리는 장점이 있습니다.
 
특별한 맛과 향이 없는 나뭇잎을 왜 먹느냐고요?
 
그러니까요. 그것이 산호자 쌈의 또 다른 묘한 맛이기도 합니다.
 
멸치로 유명한 기장 대변항구를 끼고 있는 기장사람들에게는요, 산호자 쌈에 멸치젓갈이 필수입니다.
 
콤콤하게 발효된 멸치젓갈은 순하고 부드러운 산호자 잎과 어울려 입속에서 아주 특별한 맛을 선사해 줍니다.
 
죄송하지만, 딱히 어떤 맛이라고 설명할 순 없지만요.
 
산호자 잎이 얼마나 심심한가 하면요, 어떤 사람들은 숙성되어 맛이 기막힌 멸치 젓갈을 먹기 위해서 산호자 쌈을 먹는 거 아니냐라고 할 정도랍니다.
 
빗방울이네도 산호자 쌈을 정말 좋아합니다. 어떤 맛이냐고요? 
 
글쎄요, 아득하고 희미한 맛이랄까요? 그러면서 약간 쫀득하니 미끄러운 맛이랄까요?
 

산호자나무-잎.-산호자나무는-사람주나무라고도-한다.-오월에-어린-잎을-따-데쳐서-쌈이나-나물로-먹는다.
산호나나무의 잎. 산호자나무는 사람주나무라고도 한다.오월에 어린 잎을 따 데쳐서 쌈이나 나물로 먹는다.

 

 

 

3. 혹시 산호자 쌈을 좋아하시나요?

 
'아무 맛도 안 나는 듯해서 사람들이 잘 모르는 나뭇잎이라 / 좌중에 있는 듯 없는 듯 유유자적한 나뭇잎이다'
 
이 구절부터 시인님은 산호자나무 잎과 어떤 사람을 겹쳐놓았나 봅니다.
 
'아무 맛도 안 나는 듯한' 산호자 나뭇잎과 또 '아무 맛도 안 나는 듯한' 사람 말입니다.
 
그대 주위에도 그런 사람이 있겠지요? 유순한 사람 말입니다. 튀지 않고 말없이 편안한 사람요.
 
'좌중에 있는 듯 없는 듯 유유자적한 나뭇잎이다'
 
산호자 잎이 아무 맛이 안나는 듯해서 사람들이 잘 찾지 않아 '좌중에 있는 듯 없는 듯' 하다고 합니다.
 
산호자 잎처럼 순하고 담박한 사람도 '좌중에 있는 듯 없는 듯' 합니다.
 
그러면 소외되기 때문에 싫다고요?
 
그런데요, 유유자적(悠悠自適)하다고 하네요. 아무 속박 없이 조용하고 편안한 상태 말입니다.
 
그런 사람이라면 산속 산호자나무처럼 혼자서도 스스로 행복한 사람일 것입니다.
 
'그래도 아는 사람은 정말 친한 나뭇잎이라 / 해마다 오월이면 저절로 끌리며 산에 가는 나뭇잎이다'
 
산호자 쌈맛을 알게 되면요, 산호자 잎이 오는 오월이 기다려집니다.
 
아무 맛도 안 나는 듯한 나뭇잎에 불과한 그 쌈을 말입니다.
 
좌중에 있는 듯 없는 듯한 사람의 정에 빠진 적이 있나요? 저절로 끌리는 사람말입니다. 산호자처럼요.
 
'해마다 오월이면 저절로 끌리며 산에 가는 나뭇잎이다'
 
빗방울이네도 오월이면 산호자 나뭇잎이 적당히 익을 때를 기다립니다. 오늘일까, 내일일까, 하고요.
 
오월에 함께 산호자 잎을 따러가기로 한 예의 그 노시인님은 아직 때가 아니데이, 아직 이파리가 익질 않았어!라고 빗방울이네의 조바심을 누르곤 한답니다.
 
'처음 만나는 사이라도 이 나뭇잎을 아는 사람이라면 / 말없이도 통하는 신묘한 나뭇잎이다'
 
빗방울이네가 아는 '어떤 좋은 사람'을 그대도 안다는 일도 참으로 신묘한 일이겠지요?
 
'어떤 좋은 사람'을 그대도 좋아한다는 것은, 빗방울이네가 좋아하는 '어떤 좋은 사람'의 좋은 면을 그대도 좋아한다는 것이니까요.
 
이렇게 '어떤 좋은 사람'의 좋은 점을 공유한 빗방울이네와 그대는 아무 말 없이도 얼마나 서로 다정하겠는지요?
 
산호자 잎 쌈도 그렇다는 말이네요.
 
어떤 맛을 공유한다는 일은 참으로 신묘한 일인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그 존재를 잘 알지도 못하는 산호자 쌈맛을 아는 사람, 그런 사람은 얼마나 주변에 찾기 힘든 귀한 사람이겠는지요?
 
그러니 그런 사람이라면 '처음 만나는 사이라도' '말없이도' 서로 즉시 통할 수밖에요.
 
앗, 산호자 쌈을 다 아시다니! 하면서요.
 
혹시, 산호자 잎 쌈을 좋아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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