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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고 스미기

안도현 시 서울로 가는 전봉준 동학농민혁명

by 빗방울이네 2024. 5.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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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현 시인님의 시 '서울로 가는 전봉준'을 만납니다.
 
130년 전 동학농민혁명을 이끈 전봉준 녹두장군의 형형한 눈빛이 보이고 쉰 목소리가 들리는 시입니다.
 
함께 읽으며 마음을 맑히는 독서목욕을 하십시다.
 

1. 안도현 시 '서울로 가는 전봉준' 읽기

서울로 가는 전봉준(全琫準)
 
안도현(1961~ , 경북 예천)
 
눈 내리는 만경 들 건너가네
해진 짚신에 상투 하나 떠 가네
가는 길 그리운 이 아무도 없네
녹두꽃 자지러지게 피면 돌아올거나
울며 울지 않으며 가는
우리 봉준이
풀잎들이 북향하여 일제히 성긴 머리를 푸네
 
그 누가 알기나 하리
처음에는 우리 모두 이름 없는 들꽃이었더니
들꽃 중에서도 저 하늘 보기 두려워
그늘 깊은 땅속으로 젖은 발 내리고 싶어하던
잔뿌리였더니
 
그대 떠나기 전에 우리는
목쉰 그대의 칼집도 찾아주지 못하고
조선 호랑이처럼 모여 울어주지도 못하였네
그보다도 더운 국밥 한 그릇 말아주지 못하였네
못다 한 그 사랑 원망이라도 하듯
속절없이 눈발은 그치지 않고
한 자 세 치 눈 쌓이는 소리까지 들려오나니
 
그 누가 알기나 하리
겨울이라 꽁꽁 숨어 우는 우리나라 풀뿌리들이
입춘 경칩 지나 수군거리며 봄바람 찾아오면
수천 개의 푸른 기상나팔을 불어제낄 것을
지금은 손발 묶인 저 얼음장 강줄기가
옥빛 대님을 홀연 풀어헤치고
서해로 출렁거리며 쳐들어갈 것을
 
우리 성상(聖上) 계옵신 곳 가까이 가서
녹두알 같은 눈물 흘리며 한 목숨 타오르겠네
봉준이 이사람아
그대 갈 때 누군가 찍은 한 장 사진 속에서
기억하라고 타는 눈빛으로 건네던 말
오늘 나는 알겠네
 
들꽃들아
그날이 오면 닭 울 때
흰 무명띠 머리에 두르고 동진강 어귀에 모여
척왜척화 척왜척화 물결소리에
귀를 기울이라
 
▷안도현 시집 「서울로 가는 전봉준」(문학동네, 1997년 1쇄, 2002년 4쇄) 중에서.
 

2. 동아일보 신춘 당선작 '서울로 가는 전봉준'

 
안도현 시인님의 시 '서울로 가는 전봉준(全琫準)'은 198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입니다.
 
동학농민혁명을 이끈 민중의 영웅 전봉준 녹두장군(1855~1895, 전라 정읍)이 시의 소재입니다.
 
녹두장군은 어떤 분일까요? 이에 대해 안도현 시인님이 쓴 문장을 읽습니다.
 
어릴 때부터 키가 작아 녹두라는 별명을 가졌던,
눈빛이 유난히 맑었던 소년 전봉준.
수십만 농민군과 함께 의연하게 일어섰던 전봉준.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고자 누구보다 고민했고
누구보다 헌신적으로 앞장서서 싸웠던 전봉준.
못된 벼슬아치들과 양반들을 물리치고
나아가 조선을 넘보던 일본의 야욕을 막아 내기 위해
자신을 바친 동학농민전쟁의 최고 지도자 전봉준.
▷ 청소년을 위한 인물 이야기 「전봉준」(안도현 지음, 김세현 그림, 산하, 2016년) 중에서
 
동학농민혁명은 1894년 천도교의 전신인 동학 세력이 주축이 되어 일으킨 민중혁명입니다.
 
처음 전라도 고부 군수 조병갑의 부패와 수탈에 항거하여 일어난 민란입니다.
 
전라도에서 시작된 농민들의 민란은 경상도 충청도 황해도 등으로 들불처럼 번져갔습니다. 
 
혁명군의 목적은 민중을 수탈하는 탐관오리들을 몰아내고 봉건체제를 개혁하는 것, 그리고 일제 침략으로부터 나라를 지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일본의 침략야욕, 그 외세를 등에 업고 권세를 누리려는 조선왕조 봉건지배층의 부패와 무능의 벽에 혁명의 꿈이 좌절되고 말았네요. 
 
'눈 내리는 만경 들 건너가네 / 해진 짚신에 상투 하나 떠 가네 / 가는 길 그리운 이 아무도 없네
녹두꽃 자지러지게 피면 돌아올거나 / 울며 울지 않으며 가는 우리 봉준이
풀잎들이 북향하여 일제히 성긴 머리를 푸네'
 
이 1연의 장면은 녹두장군의 서울 압송 장면이네요.
 
두 차례의 봉기가 실패로 돌아간 뒤 녹두장군은 순창 쌍치면 피노리에 피신했습니다.
 
당시 은신한 녹두장군을 잡으려고 현상금과 벼슬을 건 수배령이 내려져 있던 상태였고요.
 
1894년 12월 밤, 돈과 벼슬에 눈이 어두웠던 부하의 배신으로 녹두장군은 관군에 잡히고 맙니다.
 
그때 피신하려다 몽둥이로 다리를 맞아 크게 다쳤다고 하네요.
 
그래서 소가 끄는 수레에 실려 한양으로 압송되었다고 합니다.
 
이때 사진이 한 장 남았습니다. 
 
상투를 틀고 몸을 오른쪽으로 튼 채 우리 쪽을 노려보고 있는 녹두장군의 사진입니다.
 
'해진 짚신에 상투 하나 떠 가네'.
 
엄동설한에 소 수레에 실려 허공에 둥둥 떠가듯 압송되는 녹두장군, 이 구절이 가슴 아프게 다가오네요. 
 
'가는 길 그리운 이 아무도 없네'
 
사랑하는 사람도 멀고 험한 길 떠나는 그의 곁을 지키지 못했다고 하고요.
 
'울며 울지 않으며 가는 우리 봉준이'
 
이루지 못한 혁명의 꿈, 그것도 곁에 있던 사람의 배신에 의해, 지키고자 했던 나라의 관군에 의해 무릎이 꺾이고만 이 원통함을 어찌할까요?
 
'우리 봉준이'
 
시인님의 이 느닷없는 아득한 호명에 불현듯 우리 모두 '우리 봉준이'편이 되었네요.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일어섰던 '우리 봉준이'편이 되었네요. 
 
'그 누가 알기나 하리 / 처음에는 우리 모두 이름 없는 들꽃이었더니 / 
들꽃 중에서도 저 하늘 보기 두려워 / 그늘 깊은 땅속으로 젖은 발 내리고 싶어하던 / 잔뿌리였더니'
 
'우리 모두 이름 없는 들꽃'.
 
힘없고 가난한 민중입니다.
 
나의 것을 지켜가며, 소박하나마 나의 꿈을 일구어가며, 이웃과 더불어 오로지 따뜻하고 평화롭게 살고 싶은 들꽃요.
 
그런 들꽃의 평화는 지켜지지 못했습니다.
 
들꽃을 지켜주리라 믿었던 권력은 남의 편과 손잡고 들꽃의 평온을 깨는 두려운 존재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대 떠나기 전에 우리는 / 목쉰 그대의 칼집을 찾아주지 못하고 / 조선 호랑이처럼 모여 울어주지도 못하였네
그보다도 더운 국밥 한 그릇 말아주지 못하였네 / 못다 한 그 사랑 원망이라도 하듯 
속절없이 눈발은 그치지 않고 / 한 자 세 치 눈 쌓이는 소리까지 들려오나니'
 
들꽃은 너무나 나약했기에 그랬습니다.
 
너무나 두려웠기 때문에 그랬습니다.
 
이끌던 그대가 이제 없으므로 들꽃은 아무 의지할 데가 없네요.
 
'목쉰 그대의 칼집을' 찾아주고 싶고, '조선 호랑이처럼 모여' 함성을 지르고 싶고, '더운 국밥 한 그릇' 말아주고 싶습니다.
 
그대처럼 목이 쉬도록 더 큰 목소리로 일어서야 했을 것을, 목숨을 내놓은 그대처럼 더 힘찬 몸짓으로 나아가야 했을 것을.
 

"국밥 한 그릇"- 안도현 시 '서울로 가는 전봉준' 중에서.

 
 

 

 

3. 사진 속의 타는 눈빛이 하는 말은?

 
'그 누가 알기나 하리 / 겨울이라 꽁꽁 숨어 우는 우리나라 풀뿌리들이
입춘 경칩을 지나 수군거리며 봄바람 찾아오면 / 수천 개의 푸른 기상나팔을 불어제낄 것을
지금은 손발 묶인 저 얼음장 강줄기가 / 옥빛 대님을 홀연 풀어헤치고 / 서해로 출렁거리며 쳐들어갈 것을'
 
'봄바람 찾아오면'. 풀뿌리들은, 봄은 온다는 것을 알겠습니다.
 
봄은 기어이 오고야 말 것이라는 것을 알겠습니다.
 
그대가 높이 올린 깃발 아래로 말입니다.
 
우리 풀뿌리들이 이 꽁꽁 언 땅을 끝까지 놓지 않고 움켜쥐고 있다면 그 찬란한 봄이 올 것이라는 것을 알겠습니다.
 
그 봄이 오면 '수천 개의 푸른 기상나팔을' 불어 제치고, '지금은 손발 묶인 저 얼음장 강줄기'가 출렁거릴 것이라는 것을요.
 
출렁거릴 뿐일까요? '쳐들어갈 것'이라는 것을 알겠습니다. 
 
'우리 성상(聖上) 계옵신 곳 가까이 가서 / 녹두알 같은 눈물 흘리며 한 목숨 타오르겠네
봉준이 이사람아 / 그대 갈 때 누군가 찍은 한 장 사진 속에서 / 기억하라고 타는 눈빛으로 건네던 말 / 오늘 나는 알겠네'
 
'타는 눈빛'. 서울 압송 때 찍힌 사진 속에 보이는 것은 그대 매서운 눈빛뿐입니다.
 
매서운 회초리 같은, 그대 흰자위 번득이는 눈빛뿐입니다. 
 
서울로 압송된 그대는 가혹한 고문 속에 심문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민중의 영웅 녹두장군, 그대는 끝까지 당당했습니다.
 
그대를 심문하던 일본 영사와 조선 법관에게 이렇게 호통을 쳤다지요.
 
우리는 잘못된 세상을 바로잡고자 일어섰을 뿐이다.
탐관오리를 없애고 그릇된 정치를 바로잡는 것이 무슨 잘못이며
나쁜 짓으로 백성의 피를 빨아먹는 자를 처치하는 것이 무슨 잘못이며
사람으로서 사람을 사고팔며 나라의 재물을 뜯는 데 눈이 먼 자를 치는 것이 무엇이 잘못이냐!
청소년을 위한 인물 이야기  「전봉준」(안도현 지음, 김세현 그림, 산하, 2016년) 중에서
 
1894년 12월 관군에서 잡혀 이듬해 4월 교수형!
 
그대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때는 겨우 마흔 살이었네요. 
 
'들꽃들아 / 그날이 오면 닭 울 때 / 흰 무명띠 머리에 두르고 동진강 어귀에 모여 
척왜척화 척왜척화 물결소리에 / 귀를 기울이라'
 
'척왜척화(斥倭斥和)'. 물리칠 '斥'(척), 왜국 '倭'(왜), 화할 '和(화)입니다.
 
우리나라를 침략하려는 왜국을 배척하고 그들과의 화친도 배척한다는 말입니다.
 
자꾸 읽으면 겨울 강물소리 같을까요?
 
사진 속 번득이는 눈빛의 그대는 우리 들꽃들에게 그 강물소리에 귀를 기울이라고 하네요.
 
'척왜척화(斥倭斥和)'. 2024년은 반(反) 봉건 반(反) 외세를 기치로 농민들이 목숨을 걸고 싸웠던 동학농민혁명 130주년입니다. 
 
130년 전과 오늘은 얼마나 달라졌는지요?
 
'동진강' 강물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은 밤입니다.
 
'나'는 강물소리에 얼마나 귀를 기울이는 편인가요?
 
글 읽고 마음 목욕하는 블로그 '독서목욕'에서 안도현 시인님의 시를 더 만나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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