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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고 스미기

조지훈 시 고사 1

by 빗방울이네 2024. 5.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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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훈 시인님의 시 '고사(古寺) 1'을 만납니다.
 
마음을 씻을 수 있는 고요와 평화가 가득한 시입니다.
 
함께 읽으며 마음을 맑히는 독서목욕을 하십시다.
 

1. 조지훈 시 '고사(古寺) 1' 읽기

 
고사(古寺) 1
 
조지훈(1920~1968년, 경북 영양)
 
목어(木魚)를 두드리다
조름에 겨워
 
고오운 상좌 아이도
잠이 들었다.
 
부처님은 말이 없이
웃으시는데
 
서역(西域) 만리(萬里)ㅅ길
 
눈부신 노을 아래
모란이 진다.
 
▷「조지훈 시선」(오형엽 해설, 지식을만드는지식, 2011년) 중에서.
 

2. 아이의 잠 건너편을 응시하는 부처님의 미소

 
조지훈 시인님의 시 '고사(古寺) 1'은 1946년 발간된 박목월 박두진 시인님과의 3인 공동시집 「청록집」에 실린 시입니다.
 
시인님 26세 즈음의 시네요.
 
'고사(古寺)는 '오래된 절'이라는 뜻이겠지요.
 
마지막 5연에 모란의 낙화가 등장하는 것을 보면 시의 시간은 늦봄입니다.
 
깊은 산속의 오래된 절, 거기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요?
 
'목어(木魚)를 두드리다 / 조름에 겨워 // 고오운 상좌 아이도 / 잠이 들었다'
 
목어(木魚)는 무얼까요?
 
목어(木魚)의 사전적 의미는 '나무를 잉어 모양으로 만들어 매달고 불사(佛事)를 할 때 두드리는 기구'와 '목탁'이라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이 시의 목어(木魚)는 목탁으로 새깁니다.
 
'상좌(上佐)'는 '사승(師僧)의 대를 이을 사람 가운데 가장 높은 승려'라는 뜻도 있지만, '불도를 닦는 사람', 또는 '출가한 지 얼마 되지 않는 수습 기간 중의 예비 승려'를 말하기도 합니다.
 
그리니 이 시에 등장하는 '상좌 아이'는 불도에 갓 입문한 아이라는 말이네요.
 
이 아이가 목탁을 두드리다가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잠이 들었습니다.
 
시인님은 산행길에 우연히 오래된 절에 들게 되었을까요?
 
아무런 인기척이 없는 절집입니다.
 
그래서 문이 열린 대웅전 안을 가만히 들여다보았겠지요?
 
거기서 옆으로 누워 웅크리고 잠든 아이를 발견했겠네요.
 
머리를 파르라니 깎고 앙증맞은 승복을 입은 아이 말입니다.
 
얼마나 귀여웠을까요? 햇복숭아 같은 볼은 얼마나 사랑스러웠을까요?
 
아이의 손을 떠난 동그란 목탁은 대웅전 바닥에 뒹굴고 있고요.
 
목탁을 두드리다 잠이 오면 그냥 쓰러져 잠이 드는 아이입니다.
 
대웅전 큰 부처님 앞에서 말입니다.
 
부처님도 무서워하지 않고 큰스님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불도(佛道)에 가까이 가겠다는 욕망도 없습니다.
 
이렇게 잠들면 혼날 텐데 어쩌지 하는 번뇌도 없습니다.
 
이런 '상좌 아이'의 마음은 세상사 욕망과 번뇌에 물들지 않은 인간의 본심, 바로 순진무구한 동심(童心)이네요.
 
하늘에서 받은 본성 그대로의 천진난만(天眞爛漫)입니다. 
 
그 천진난만이 자는 모습은 얼마나 고울까요?
 
'고오운'. '고운'이 아니라 '고오운'입니다.
 
'상좌 아이'의 순진무구의 세계가 우리에게 다정하게 스며드는 것만 같습니다.
 
'부처님은 말이 없이 / 웃으시는데'
 
'상좌 아이'는 잠이 들었습니다.
 
부처님 앞에서요.
 
그러나 부처님은 말이 없고 다만 웃으신다고 합니다.
 
졸음에 겨워 연거푸 하품을 하다가 쓰러져 잠이 든 '상좌 아이', 그 모습을 높은 좌대에서 내려다보고 있는 부처님은 침묵과 미소.
 
한 장의 스냅사진 같은 절묘한 장면에 우리도 미소가 절로 나오네요.
 
부처님의 미소는 어디에 닿아 있을까요?
 
아이의 '잠' 건너편에 있을 것 같은 아득히 먼 곳일까요?
 
모든 욕망과 번뇌가 씻겨진 해탈의 세계 말입니다.
 
진리를 깨닫았을 때 찾아온다는 황홀한 법열(法悅)의 세계 말입니다.
 
부처님의 침묵과 미소 속에는 속세를 초월하는 고요하고 평화로운 기쁨이 흐르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눈부신 노을 아래 모란이 진다" - 조지훈 시 '고사 1' 중에서.

 
 

 
 
 

 
 

3. 고요와 평화 속의 편안한 기쁨

 
'서역(西域) 만리(萬里)ㅅ길'
 
이 구절은 외진 산속 오래된 절에 있던 우리를 무한대의 공간으로 데려다 주네요.

'서역(西域)'은 예전에 중국 서쪽에 있던 여러 나라를 통틀어 이르던  말입니다.
 
이 시 속의 '서역(西域)'은 부처님이 계신다는 서방정토(西方淨土)일까요?
 
그 '서역(西域)'에 이르기 위해 가야할 '만리(萬里) 길'은 우리네 생(生)의 고달픈 여정이기도 할 것입니다.
 
희로애락(喜怒哀樂)에 점철된 윤회의 시간을 유랑하며 진리를 찾아가는 깨달음의 길, 구도(求道)의 길 말입니다.
 
'눈부신 노을 아래 / 모란이 진다'

그 아득히 먼 '만리(萬里) 길'의 한 자그마한 모퉁이에서 모란이 지고 있다고 하네요.
 
눈부신 노을 아래서요.
 
그 눈부신 배경 속에서 아무 기쁨이나 슬픔 없이 모란이 지고 있네요. 자연 그대로의 경지입니다.

이렇게 사라지는 모란도 생멸(生滅)의 인연 속에서 다시 만나게 되겠지요?

인연이 다하면 소멸하고 또다른 인연 속에서 만나게 되는 것이 우리네 삶의 길이니까요.

아이의 잠, 눈부신 노을 속 모란의 낙화, 부처님의 침묵과 미소.
 
모두 고요하고 평화롭기 그지 없습니다. 
 
이 한 폭의 동양화 같은 시를 읽고 나니, 그 고요와 평화 속에서 샘물처럼 맑고 깨끗한 기쁨이 스며나오는 것만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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