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환 시인님의 시 '산 너머 남촌에는'을 만납니다. 읽으면 마음이 흥겨워지고 고와지는 시입니다. 함께 읽으며 마음을 맑히는 독서목욕을 하십시다.
1. 김동환 시 '산 너머 남촌에는' 읽기
산(山) 너머 남촌(南村)에는
김동환(1901~?. 함북 경성 출생)
1
산(山) 너머 남촌(南村)에는
누가 살길래
해마다 봄바람이
남(南)으로 오네
꽃 피는 사월(四月)이면
진달내 향긔
밀 익는 오월(五月)이면
보릿내음새
어느 것 한 가진들
실어 안 오리
남촌(南村)서 남풍(南風) 불제
나는 좋테나
2
산(山) 너머 남촌(南村)에는
누가 살길래
저 하늘 저 빛같이
저리 고을가
금잔듸 너른 벌엔
호랑나비떼
버들밭 실개천엔
종달새 노래
어느 것 한 가진들
들여 안 오리
남촌(南村)서 남풍(南風) 불제
나는 좋테나
3
산(山) 너머 남촌(南村)에는
배나무 섯고
그 나무 아레에는
각씨 섰다기
그리운 생각에
재에 오르니
구름에 가리어
자최 안 뵈나
끈었다 이어오는
가는 노래
바람을 타고서
고요히 들니데
▷「김동환 시선」(김동환 지음, 방인석 엮음, 지식을만드는지식, 2013년) 중에서.
2. 원본으로 만나는 '산 너머 남촌에는'
시 '산(山) 너머 남촌(南村)에는'은 장편 서사시 '국경의 밤'과 '북청 물장수'의 시인인 김동환 시인님의 시입니다.
1927년 발표된 이 시는 1965년 대중가요(김동현 작곡 박재란 노래)로, 1975년에는 가곡(김규환 작곡)으로 만들어져 불리고 있습니다.
봄을 기다리는 화자의 산 너머 남쪽 마을, 즉 이상 세계에 대한 그리움과 동경을 노래한 시입니다.
1927년에 발표된 만큼 잃어버린 조국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한 시로도 읽히고 있습니다.
오늘 만나는 시는 원본의 맛을 살리기 위해 띄어쓰기만을 오늘의 어법에 맞게 고치고 나머지는 원본 그대로입니다.
시의 원본은 1942년 발간된 시인님의 시집 「해당화」에 실린 것(위 책 「김동환 시선」에 재수록)입니다.
'산(山) 너머 남촌(南村)에는 / 누가 살길래 / 해마다 봄바람이 / 남(南)으로 오네
꽃 피는 사월(四月)이면 / 진달내 향긔 / 밀 익는 오월(五月)이면 보릿내음새
어느 것 한 가진들 / 실어 안 오리 / 남촌(南村)서 남풍(南風) 불제 / 나는 좋테나'
이 시의 가장 큰 특징은 7·5조의 리듬을 갖고 있다는 점입니다.
산 너머 남촌에는(7) 누가 살길래(5) 해마다 봄바람이(7) 남으로 오네(5) -.
그래서 마지막 구절에서 자수(5)에 맞추기 위해 '남쪽으로부터 오네'를 과감하게 '남으로 오네'로 줄였네요.
이런 파격으로 시는 우리 마음에 작은 파문을 일으키면서 더 풍성해지는 것만 같습니다.
봄소식은 남쪽으로부터 옵니다. 봄을 알리는 개나리꽃 벚꽃 같은 개화소식도 남쪽으로부터 옵니다.
북쪽에 있는 우리는 겨울이 지날 즈음, 적도가 가까운 남쪽으로부터 오는 따뜻한 기운을 기다립니다.
그즈음에는 우리의 감각이 온통 남쪽, '산 너머 남촌'으로 향해 있습니다.
거기에는 누가 살고 있길래 이렇게 따뜻한 봄바람을 보내주는 걸까, 까치발을 하고 멀리 내다보면서요.
그 봄바람에 실려오는 '진달래 향기' '보리 내음새'가 코를 자극한다고 하네요.
'보리 내음새'도 운율(5자)을 맞추기 위해 '냄새'를 '내음새'로 늘였네요.
'내음새', 보리에서 나는 냄새를 코로 천천히 맡고 있는 듯하네요.
보리밭에서 자라고 있는 푸른 보리는 어떤 냄새를 풍길까요? 풀냄새 같을까요?
'나는 좋테나'. 이 구절 좀 보셔요. 매우 생소합니다. 과문한 탓인지, 이런 표현을 어디서 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여기서는 '좋더라'라는 감탄의 뜻으로 새깁니다. 그런데 '좋더라'보다 어쩐지 더 흥겨운 느낌을 풍깁니다.
국어사전에 보니, '~데'의 표현이 있는데요, 자신이 경험한 사실을 회상하여 일어주거나 스스로의 느낌을 나타낼 때 쓰입니다.
'꽃구경 하러 사람이 무척 많이 왔데' 또는 '시집을 잘 가서 참 좋겠데' 등의 쓰임이 있습니다.
'그것 참 좋데'도 같은 쓰임이겠네요.
시에 쓰인 '좋테나'도 '좋데'에 감탄형 어미 '~나'가 붙어 '좋데나'→'좋테나'가 되었겠지요? 그 느낌이 정말 좋네요.
3. 마음을 곱고 흥겹게 해주는 시
'산(山) 너머 남촌(南村)에는 누가 살길래 / 저 하늘 저 빛같이 저리 고을가
금잔듸 너른 벌엔 / 호랑나비떼 / 버들밭 실개천엔 / 종달새 노래
어느 것 한 가진들 / 들여 안 오리 / 남촌(南村)서 남풍(南風) 불제 / 나는 좋테나'
이 3절에서는 '저리 고을가'가 단연 돋보이네요.
'고을가'는 '고을까'보다 얼마나 더 이쁘게 고운 느낌인지요.
화자의 여리고 다정한 마음이 전해오는 것 같습니다.
'남풍 불제'도 '남풍 불 때'보다 더 예스럽고 정다운 느낌이 들어 좋네요.
'어느 것 한 가진들 들여 안 오리'. 그렇네요. 남쪽에서 불어오는 남풍에는 정말로 없는 게 없네요.
금잔디 너른 벌도 있고요, 거기 날아다니는 호랑나비 떼도 있고요.
'버들밭'은 '버드나무의 어린 모를 심는 밭' 또는 '버드나무가 많이 늘어선 땅'을 말합니다.
그 '버들밭' 옆 '실개천'에 '종달새'가 노래한다고 하네요.
나무가 아니라 땅 위에 둥지를 트는 종달새여서 실개천 옆에 둥지를 만들어 두었겠네요.
그리고는 수직으로 하늘로 솟구쳐 위세를 과시하며 실컷 노래하고는 다시 둥지로 수직 하강하고 있었겠네요.
종달새는 그렇게 하루종일 놀고 있었겠지요?
삐르르 삐르르, 쭈르르 쭈르르 하는 종달새의 노래는 얼마나 멋지겠는지요?
'산(山) 너머 남촌(南村)에는 배나무 섯고 / 그 나무 아레에는 각씨 섰다기
그리운 생각에 재에 오르니 / 구름에 가리어 / 자최 안 뵈나
끈었다 이어오는 / 가는 노래 / 바람을 타고서 / 고요히 들니데'
'섰다기'. 이 구절도 7·5조에 맞추기 위해 축약한 것입니다. '서 있다고 하기에'→'섰다고 하기에'→'섰다기'가 되었겠지요?
이 과감한 축약에서 시인님의 마음이 느껴지네요.
배나무 아래(아레)에 각시(각씨)가 '섰다고 하기에'라고 하려다가, 너무 반갑고 그리운 나머지 마음이 울컥해서 '섰다기···'라고 말 줄임이 되는 상황 말입니다.
그리운 마음에 높은 언덕(재)에 올랐으나 구름에 가려서 자취(자최)가 안 보인다고 합니다.
'안 뵈나'도 '안 보여'의 의미이겠지만, '안 뵈나'는 화자가 사랑하는 이(각시)가 보이나 안 보이나 하면서 계속 보고 있는 듯한 뉘앙스를 줍니다. 예의 그 까치발을 하면서요.
'고요히 들니데'. 원본에 나온 표현 그대로입니다. '들니데'는 '들리데', 즉 '들리더라'의 의미로 새깁니다.
이 역시 운율을 맞추기 위한 축약이겠지만 '들리데'로의 축약은 우리에게 긴 여운을 줍니다.
끊어졌다 이어져오는 가느다란 노랫소리, 들릴 듯 말들 그리운 노래입니다. 그 노래가 '고요히 들리데'라고 하네요.
우리 귀에도 아련하게 봄바람을 타고 희미하고 가느다란 노랫가락이 들리는 것만 같네요.
'♪ 산 넘어 남촌에는 누가 살길래 ~~ 해마다 봄바람이 남으로 오네~~♬'
가만히 들리는 그 가느다란 노래에 마음이 고와지고 온갖 것에 자꾸만 다정해지려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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