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 시인님의 시 '또 다른 고향'을 만납니다. 지금의 삶에 대해 생각하게 하고, 마음을 더 크게 열어주는 시입니다. 함께 읽으며 마음을 맑히는 '독서목욕'을 하십시다.
1. 윤동주 시 '또 다른 고향' 읽기
또 다른 고향
- 윤동주(1912~1945, 북간도 명동촌)
고향에 돌아온 날 밤에
내 백골(白骨)이 따라와 한방에 누웠다.
어둔 방은 우주로 통하고
하늘에선가 소리처럼 바람이 불어온다.
어둠 속에서 곱게 풍화작용(風化作用)하는
백골을 들여다보며
눈물짓는 것이 내가 우는 것이냐
백골이 우는 것이냐
아름다운 혼이 우는 것이냐
지조(志操) 높은 개는
밤을 새워 어둠을 짖는다.
어둠을 짖는 개는
나를 쫓는 것일 게다.
가자 가자
쫓기우는 사람처럼 가자.
백골 몰래
아름다운 또 다른 고향에 가자.
- 「윤동주 시집 - 그의 시와 인생」(권일송 편저, 청목문화사, 1987년) 중에서
2. 이 시로 가는 징검돌 '백골'이 뜻하는 것은?
윤동주 시인님의 시 '또 다른 고향'을 만납니다. 1941년 9월에 쓰인 작품입니다.
이 시에서 가장 눈에 띄는 단어가 '백골'입니다.
여기서의 '백골'은 무슨 의미일까요?
우리가 이 시 속에 나오는 '백골'의 의미를 알고 있으면, 이 시는 금방 우리 가슴으로 뛰어들 것입니다.
아래 문장은 우리가 이 시로 건너가는 소중한 징검돌입니다.
당시 시절은 '일본어 상용'의 암흑기이던 1941년 하반기였다 ···
어디에 취직해서 돈을 벌어 가족을 부양하는 삶이란
결국 지금까지의 지조와 이상을 모두 버려야만 되는 삶일 수밖에 없다.
그는 그렇게 될 때 그것은 '사람'으로서 사는 삶이 아니라
'백골'로서 살아가는 삶, 인간의 형해(形骸)만 남은 삶이라고 느낀 것이다.
- 「윤동주 평전」(송우혜 지음, 서정시학, 2018년) 중에서
이 문장은 '백골'의 의미가 '인간의 형해(形骸, 내용이 없는 뼈대)만 남은 삶', 즉 형식뿐이고 가치나 의의가 없는 삶이라는 것을 알려줍니다.
이로써 우리는 이 시에 '지금의 나'와 '가족을 부양하며 살아가는 백골', '지조를 지키며 이상을 추구하며 사는 아름다운 혼', 이렇게 3가지 '나'가 등장한다는 것을 알겠습니다.
이런 점들을 징검돌 삼아 시로 건너갑니다.
고향에 돌아온 날 밤에 / 내 백골이 따라와 한방에 누웠다
- 윤동주 시 '또 다른 고향' 중에서
이 시가 쓰인 때는 윤동주 시인님이 연희전문학교 졸업(12월)을 앞둔 9월이고 여름방학 직후입니다. 여름방학 때 서울을 떠나 고향 북간도 명동촌에 들렀을까요?
'고향에 돌아온 날 밤에' 누웠는데 '내 백골이 따라와 한방에 누웠다'라고 합니다. 이날 낮에는 가족들과 어울려 맛있는 것도 먹고 이런저런 이야기도 했겠지요. 곧 대학 졸업이니 졸업 후 진로에 대해서도요.
잠자리에 누운 시인님은 장손으로서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책임감을 느꼈을 것입니다. '가족을 부양하는 삶'이란, '지금까지의 지조와 이상을 모두 버려야 되는 삶', '인간의 형해(形骸)만 남은 삶'입니다. 그런 삶을 살아가는 자아가 '백골'이네요. 이 '백골'은 '나'이면서 내가 원하지 않는 나의 분신입니다.
3. '가자 가자 쫓기우는 사람처럼 가자'
어둔 방은 우주로 통하고 / 하늘에선가 소리처럼 바람이 불어온다
- 윤동주 시 '또 다른 고향' 중에서
지금 시인님은 '어둔 방'에 누워 있지만 시인님의 마음은 우주로 열려 서로 닿아 있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본래의 참마음은 '우주의 마음'이며 '하늘마음'일 것입니다. '백골'의 삶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시인님에게 어디선가 불어오는 바람이 '우주의 마음'을 가지라고 하는 것만 같네요. '소리처럼'. 한 '소리'하듯, 채근(採根)하듯 말입니다.
어둠 속에서 곱게 풍화작용하는 / 백골을 들여다보며
눈물짓는 것이 내가 우는 것이냐 / 백골이 우는 것이냐 / 아름다운 혼이 우는 것이냐
- 윤동주 시 '또 다른 고향' 중에서
'어둠 속에서 곱게 풍화작용하는'. 이 구절은 앞서 우리가 새긴 '백골'의 삶의 과정으로 읽습니다. '어둠'은 소소한 일상에 묻힌 삶입니다. 시인님은 그런 '어둠' 속의 삶을 택할 경우, 가족을 부양하며 사는 이런저런 문제들로 점점 부서지거나 분해되고 닳아가는('풍화작용하는') '백골'의 자아를 들여다봅니다.
그렇게 흘러가버릴 생을 떠올리며 시인님은 눈물을 흘리고 있네요. '우는 것'이 '현실의 나'인지 '백골의 나'인지 '이상의 나'인지 스스로에게 물으면서요.
지조 높은 개는 / 밤을 새워 어둠을 짖는다 / 어둠을 짖는 개는 / 나를 쫓는 것일 게다
- 윤동주 시 '또 다른 고향' 중에서
'지조(志操)'는 원칙과 신념을 굽히지 않고 끝까지 지켜 나가는 꿋꿋한 의지나 기개를 말합니다. '지조 높은 개'는 밤을 새워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는 자로 새깁니다. 한밤중에 들려오는 그 소리가 마치 원칙과 신념을 지켜라고 시인님을 꾸짖는 소리('나를 쫓는 것')로 들리는 것만 같다고 합니다.
가자 가자 / 쫓기우는 사람처럼 가자 / 백골 몰래 / 아름다운 또 다른 고향에 가자
- 윤동주 시 '또 다른 고향' 중에서
그래서 시인님은 '백골 몰래' 가자고 스스로에게 말합니다. 여러 현실적인 사정을 감안해서는 도저히 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어둠을 짖는 개'에게 '쫓기우는 사람처럼 가자'고 합니다.
시인님이 지향하는 삶은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해서 자기 가족만을 부양하는 '백골'의 삶이 아닙니다. 시인님은 일제의 억압에 신음하고 있는, 민족이 처한 보다 큰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일조하는 삶을 지향합니다.
그런 신고(辛苦)의 삶으로 이루어낼 시대와 공간이 바로 시인님이 추구하는 '아름다운 또 다른 고향'일 것입니다.
이렇게 시를 읽고 나니 쳇바퀴 같은 일상에 매몰되어 작아진 마음이 문득 '우주로' 통하는 큰 마음으로 부풀어 오르는 느낌이 듭니다. 이렇게 큰 마음 갖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시인님!
글 읽고 마음 목욕하는 블로그 '독서목욕'에서 윤동주 시인님의 시를 더 만나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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