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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 시 5편 시인들은 봄비를 어떻게 느낄까?

by 빗방울이네 2024. 3.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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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를 노래한 시 5편을 만납니다. 예민한 감성의 촉수를 가진 시인들은 봄비를 어떻게 느낄까요? 시인들의 봄비 시 가운데 대표적인 구절을 읽으며 음미하며 마음을 맑히는 독서목욕을 하십시다.
 

1. 이수복 시인의 '봄비'

 
이수복 시인님(1924~1986년, 전남 함평)의 시 '봄비'의 한 구절을 만납니다.
 
봄비가 내리면 누구라도 저도 모르게 입이 저 혼자 먼저 중얼거리는 시구입니다.
 
겨우내 얼었던 땅과 마음을 조용히 녹여주는 봄비, 새로운 생명들을 움트게 하는 봄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시인님은 이 보약 같은 봄비를 보면서 이렇게 노래했네요.
 
'이 비 그치면 / 내 마음 강나루 긴 언덕에 / 서러운 풀빛이 짙어오것다'
 
이 비가 그치면 두 곳에서 일이 일어난다고 하네요. '내 마음'에, 그리고 '강나루 긴 언덕'에요. 그 두 곳에 '서러운 풀빛'이 짙어온다고요.
 
겨울 동안 풀빛은 어디에 숨어있었을까요? 그 보이지 않던, 볼 수 없었던 풀빛이 보약 같은 봄비를 마시고 점점 짙어질 것을 생각하면 얼마나 반갑고 고마운지요. 
 
너무 반가우면 왜 한편으로는 서러워지는 느낌이 일어나던지요. 내가 너를 얼마나 기다렸다고! 풀빛이 짙어지듯 반갑고도 서러운 마음이 짙어진다는 시인님의 감성은 얼마나 풀빛처럼 연두처럼 여리디 여린지요.
 

2. 박목월 시인의 '봄비'

 
박목월 시인님(1916~1978년, 경북 경주)이 만난 봄비는 어떤 봄비일까요? 시인님의 시 '봄비'의 한 구절을 만나봅니다.
 
'한나절 젖어드는 흙담 안에서 / 호박순 새넌출이 사르르 펴난다'
 
이 시에서는 '호박순 새넌출이 사르르 펴난다'라는 구절이 좋네요. 시인님이 한나절 봄비를 맞은 호박순을 보니 그렇더라고 하네요. 
 
'넌출'은 길게 뻗어 나가 가늘어진 식물의 줄기를 말합니다. 그러니 '새넌출'은 봄비를 먹고 힘을 내어 막 세상에 나오는 연하디 연한 호박순이네요.
 
호박순은 처음에 스프링처럼 꼬인 채 새순이 나왔다가 점점 펴지며 앞으로 나아갑니다. '호박순 새넌출이 사르르 펴난다'에서 우리는 스프링처럼 둥글게 말려 세상에 나왔던 '호박순 새넌출'이 사르르 풀리는 소리와 움직임을 모두 듣고 볼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특히 '펴난다'에서 우리는 움츠려 있던 것이 바르게 펴지며 어디론가 뻗어 나아가는 '새넌출'의 움직임을 동영상 보듯 생생하게 실감할 수 있게 됩니다. 
 
봄비를 먹은 호박순을 한동안 지켜보았을 시인님의 낮은 시선이 느껴집니다. 그래 힘내, 하고 '호박순 새넌 출'을 응원하는 그 다정한 시선이 느껴집니다.
 
어디 호박순만 그러하겠는지요? 봄비는 보약이라서 움츠렸던 만물을 사르르 피어나게 하는 마력이 있네요. 얼마나 신기한 봄비인지요.
 
그대도 이 봄 누군가에게 무언가에게 응원하고 있겠지요? 

 

"시인들은-봄비를-어떻게-느낄까"-봄비-시-5편에서-만난-시인들의-시선.
"시인들은 봄비를 어떻게 느낄까?" - 봄비 시 5편에서 만나본 시인들의 시선.

 

 

 

 

 

 

 

3. 김소월 시인의 '봄비'

김소월 시인님(1902~1934년, 평북 구성)의 시 '봄비' 중에서 한 구절을 만납니다.
 
'어룰없이 지는 꽃은 가는 봄인데 / 어룰없이 오는 비에 봄은 울어라'
 
시인님에게 이 봄은 슬픔으로 가득한 봄이네요. '어룰없이'는 '얼굴없이'로 새깁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없는 봄이네요. 얼마나 쓸쓸하겠는지요? 사랑하는 이도 가고, 봄꽃마저 가고, 봄이 간다고 합니다. 
 
그 사이 봄비가 내리네요. 사랑하는 이 없이 내리는 봄비 때문에 봄이 운다고 합니다. 봄이 우는 것이 아니라 봄 내내 운다는 말이네요. 시인님이 말입니다.
 
생명의 약동을 노래하는 다른 봄비 시와 달리 이 시는 하염없이 울고 있는 시입니다.

 

아무리 생명이 약동하는 봄이라고 하여도 사랑하는 이가 곁에 없다면 다 무슨 소용이겠는지요.
 
'어룰없이' 봄을 보내고 또 내리는 봄비를 보며 그리운 이를 울며 기다리고 있는 시인님의 애절한 심정이 느껴지는 것만 같습니다.  
 

4. 주요한 시인의 '빗소리'

 
'불놀이'라는 시로 우리에게 친숙한 주요한 시인님(1900~1979년, 평양)의 시 '빗소리'의 일부를 읽습니다. 이 '빗소리'는 봄비의 소리입니다. 
 
'비가 옵니다 / 밤은 고요히 짓을 버리고 / 비는 뜰 우에 속삭입니다 / 몰래 지껄이는 병아리같이'
 
이 시에서는 '몰래 지껄이는 병아리같이'라는 구절이 우리의 가슴을 간지럽히네요.
 
봄비가 뜰 위에 속삭인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요? '몰래 지껄이는 병아리같이' 속삭이는 봄비라고 하네요.
 
병아리의 지껄임은 어떤 말일까요?

엄마에게 품을 열어달라고 조르는 말, 병아리 지껄임 같은 봄비의 말은 겨우내 얼었던 대지라는 엄마에게 품을 열어달라고 조르는 말이겠네요. 대지 속의 생명들과 같이 놀자고 조르는 말이겠네요.
 
'몰래 지껄이는 병아리같이'
 
시인님은 어떻게 이런 구절을 '발명'해냈을까요? 뜰에서 구구거리는 병아리를 한동안 바라보고 있었을 시인님의 다정한 마음이 우리에게 건너오고 있습니다. 우리도 세상 다정해지네요.
 

5. 변영로 시인의 '봄비'

 
시 '논개'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변영로 시인님(1898~1961년, 서울)이 1922년 쓴 시 '봄비'의 일부를 만납니다.

 

지금(2024년)으로부터 102년 전의 '봄비' 시입니다. 그때 시인님이 느낀 봄비의 감성은 어땠을까요?
 
'나직하고, 그윽하게 부르는 소리 있어 / 나아가보니, 아, 나아가보니 - 
(중략)
비둘기 발목만 불키는 은(銀)실 같은 봄비만이'
 
이 시에서 유명한 구절이 바로 '비둘기 발목만 불키는 은(銀)실 같은 봄비'라는 구절입니다.
 
'비둘기 발목만 불키는'. 봄비가 오면 비둘기 발목이 왜 퉁퉁 불게 될까요? 봄비는 워낙 조용하게 가늘게 내려 비둘기는 아랑곳없이 뜰에서 벌레 찾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그러다 보면 비에 젖어 발목이 퉁퉁 불게 되겠네요.
 
'은(銀)실 같은 봄비'라고 합니다. 대지의 생명을 깨우는 봄비이니 얼마나 귀한 봄비인지요. 가늘고 조용하게 내리는 봄비의 모양과 소리도 이 구절에서 다 보이고 다 들리는 듯하네요.
 
'봄비'를 소재로 한 아름다운 시 5편을 만나보았습니다.

 

이 시들의 공통적인 감성이 무언지 느껴지지요?

 

서러운 풀빛 - 호박순 새넌출 - 병아리 - 비둘기 발목 

 

시인님들의 정밀하고 섬세한 감정의 시선이 모두 이렇게 낮고 여린 데 닿아있네요.

 

그래서 우리를 낮고 여린 데로 데려가주네요. 그리하여 우리도 마침내 여리고 낮아지네요. 

 

이렇게 여리고 낮아지니 그동안 안 보이던 여리고 낮은 것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동안 없던 연두빛 사랑이 움트는 것만 같고요.

 

감사합니다, 시인님!

 
오늘 만나본 봄비 시 5편은, 글 읽고 마음 목욕하는 블로그 '독서목욕'에 모두 소개되어 있습니다. 아래 링크에서 더 자세한 ‘봄비’ 감상에 젖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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