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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고 스미기

김영랑 시 내 마음을 아실 이

by 빗방울이네 2024. 7.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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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랑 시인님의 시 '내 마음을 아실 이'를 만나 봅니다. 내 마음을 아실 이와 함께 하고픈 간절한 마음을 섬세한 시어로 노래한 시입니다. 함께 읽으며 마음을 맑히는 독서목욕을 하십시다.
 

1. 김영랑 시 '내 마음을 아실 이' 읽기

 
43
 
김영랑(본명 김윤식, 1903~1950, 전남 강진)
 
내 마음을 아실 이
내 혼자ㅅ마음 날가치 아실 이
그래도 어데나 게실 것이면
 
내 마음에 때때로 어리우는 티끌과
속임업는 눈물의 간곡한 방울방울
푸른 밤 고히 맺는 이슬가튼 보람을
보밴듯 감추엇다 내여드리지
 
아! 그립다
내 혼자ㅅ마음 날가치 아실 이
꿈에나 아득히 보이는가
 
향 맑은 옥돌에 불이 달어
사랑은 타기도 하오련만 
불빛에 연긴 듯 희미론 마음은
사랑도 모르리 내 혼자ㅅ마음은
 
▷한국 현대시 원본 전집 1935년판 「영랑시집(永郞詩集)」(김영랑 지음, 문학사상사 엮음)
 

2. '내 혼자 마음 날가치 아실 이'를 그리워하는 마음

 
1935년 시문학사에서 나온 원본 시집 「영랑시집(永郞詩集)」에 실린 원본 그대로 시 '내 마음 아실 이'를 만나봅니다. 
 
이 시는 시집에 실리기 앞서 1931년 시문학 3월호에 게재되었던 시입니다. 시인님 28세 즈음이네요.
 
시집에는 제목 대신 '43'이 씌어있는데, 이는 시집 속의 43번째 시라는 의미입니다. 첫 구절인 '내 마음 아실 이'라는 제목으로 알려진 시입니다. 
 

이 시의 가장 큰 특징은 시 전반에 흐르는 감정과 시어가 매우 부드럽고 섬세하다는 것입니다.

 

보석 세공사처럼 시인님이 정밀하게 깎고 다듬어 내놓은, 조탁(彫琢)의 시어를 만나는 즐거움이 큰 시입니다.

 

가늘고 고운 시어의 리듬에 마음을 싣고 시를 따라가 봅니다.


'내 마음을 아실 이 / 내 혼자ㅅ마음 날가치 아실 이 / 그래도 어데나 게실 것이면'
 
1연에서 '날가치'라는 구절이 눈에 띄네요. 이 시어는 유음(流音) 'ㄹ'을 첨가해 시인님이 만들어낸 것입니다.
 
'날가치'는 현대어로 '날같이'일 텐데요, '나를 자신과 같이 → 나를 같이 → 날같이'로 변화된 것이겠지요?
 
'날같이'는 '나같이'의 의미인데, '나같이'보다 훨씬 부드럽게 다가옵니다. 시인님이 공들여 조탁했을 이 특별한 시어로 인해 시의 운율이 살아나 마음이 물결처럼 일렁이는 것만 같네요. 이는 시인님의 마음이겠지요?

 
시인님은 그렇게 섬세하고 부드러운 마음으로 '내 마음을 아실 이'에 대해 생각하고 있네요. '내 혼자 마음'을 '날같이 아실 이'에 대해 생각하고 있네요. 그런 사람은 내 혼자 아는 내 마음을 내가 알듯 속속들이 알아주는 사람이겠네요. 
 
그런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우리는 언제나 저마다 마음의 방문을 꽁꽁 잠그고 있어서 서로에게 다가가는 일이 참으로 어렵습니다. 

'그래도 어데나 계실 것이면'. '어데나'는 '어디에나' '어데인가' '어디엔가'의 의미로 새깁니다. '내 마음 아실 이' '내 혼자 마음 날같이 아실 이'가 세상에 없을 것으로 짐작되지만, '그래도 어디엔가 계실 것이면'이라고, 혹시 그런 사람이 세상 어데인가 있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간절한 마음이 담겨 있는 것만 같습니다.

'내 마음에 때때로 어리우는 티끌과 / 속임업는 눈물의 간곡한 방울방울
푸른 밤 고히 맺는 이슬가튼 보람을 / 보밴듯 감추엇다 내여드리지'

 

2연에서는 '어리우는'이라는 시어가 눈에 띕니다. '어리는'이란 말일 텐데요, 거기에 모음 '우'를 첨가해 '어리는'보다 섬세하고 부드러운 느낌과 음악적 효과를 살리고 있습니다. 
 
'내 혼자 마음을 날같이 아실 이'가 세상 어딘가에 계신다면, 시인님은 '티끌'과 '눈물'과 '보람'을 '보배인 듯 감추었다' 내어드린다고 한다고 합니다.
 
'내 마음에 때때로 어리우는 티끌과'. '티끌'은 내면의 고뇌와 번민일 것입니다. 사사로운 욕심이나 못된 생각이 없는 순수한 마음을 흐리게 하는 장애물이네요. 
 
'속임 없는 눈물의 간곡한 방울방울'. '눈물'은 정화의 상징입니다. 내면을 씻어 맑히는 끊임없는 참회의 눈물이네요. 그런 눈물이 '간곡한 방울방울'이라고 하네요. 순수한 자아로 더 높은 곳에 닿으려는 시인님의 간절하고 정성스러운 마음이 느껴집니다. 
 
'푸른 밤 고이 맺는 이슬 같은 보람을'. 이 '푸른 밤'은 성스러운 시간일까요? 시인님이 '티끌'과 '속임 없는 눈물의 간곡한 방울방울'의 지난(至難)한 시간을 거쳐 이르게 된 시간 말입니다.
 
그런 힘든 시간이 맺은 '보람'이 이슬 같다고 합니다. 그것은 부단한 몸부림 끝에 시인님이 이르게 된 순수하고 맑고 깨끗한 내면세계일까요?
 
'보밴듯 감추었다 내여드리지'. 시인님이 마음속에 지니고 있는 그런 보배를 '내 마음 아실 이'에게 내어드린다고 합니다. '내 혼자 마음 날같이 아실 이'에게 말입니다. 자신의 마음을 '날같이' 알아줄 삶의 동반자를 깊이 염원하는 마음이 느껴집니다. 

"날같이"-김영랑-시-'내마음-아실-이'-중에서.
"날같이" - 김영랑 시 '내 마음 아실 이' 중에서.

 

 

 

 

 

 

3. '향 맑은 옥돌에 불이 달아 사랑은 타기도 하오련만'

 
'아! 그립다 / 내 혼자ㅅ마음 날가치 아실 이 / 꿈에나 아득히 보이는가'
 
'내 혼자 마음 날가치 아실 이'. 1연에 이어 3연에서도 이 구절이 등장했네요. 그만큼 시인님이 강조하고픈 구절이라는 뜻이네요.
 
이 구절 중에서 시인님이 깎고 다듬은 아름다운 조어 '날가치'를 다시 음미해 봅니다. 이 '날가치(날같이)'가 이 시의 눈인 것 같습니다. 이 시가 발화하게 된 불쏘시개 같은 시어 말입니다. 
 
이 세상에 '날같이' 내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이 어딘가에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는지요? 나의 외로움과 그리움의 깊이를 다 헤아려주는 이, 나의 결핍을 채워주고 번민을 덜어주는 이, 함께 동행하며 나의 공부와 깨달음에 높이를 더해주는 이 말입니다.
 
시인님은 그런 '이'가 그립다고 합니다. '꿈에나 아득히 보이는가'라는 구절에서, 꿈에서라도 그런 존재를 만나고 싶다는 간절함이 느껴지네요.
 
'향 맑은 옥돌에 불이 달어 / 사랑은 타기도 하오련만
불빛에 연긴 듯 희미론 마음은 / 사랑도 모르리 내 혼자ㅅ마음은'
 
마지막 4연에서는 '하오련만'과 '희미론'이라는 특별한 시어가 단연 눈에 뜨입니다.
 
모두 시어의 조탁 사례입니다. 시인님은 '하련만'에 모음 '오'를 끼워 넣어 부드러운 운율로 우리의 마음을 잔잔한 물결처럼 일렁이게 하네요.
 
'희미론'은 '희미'에 '롭다'라는 형용사형 접미사가 붙은 뉘앙스를 주네요. '희미한'보다 '희미론'에서 옷깃이 여며지는 듯하고 마음이 더욱 간절해지는 느낌이랄까요?

 

이런 시인님의 마음을 떠올리며 4연으로 들어가 봅니다. 시로 들어가는 길은 여러 갈래일 것입니다. '독서목욕'이 낸 오솔길을 따라가 봅니다.
 
'향 맑은 옥돌에 불이 달어 / 사랑은 타기도 하오련만'. 이 구절에서 '하오련만'을 주목합니다. '~련만'은 아쉽게도 어떤 조건이 충족되지 못하여 기대하는 결과도 이루어질 수 없음을 나타내는 연결어미입니다. 그런 의미로 '하오련만'을 새기며 앞뒤 정황을 파악하면, 그렇게 옥돌에 불이 달지 않아 타지 못하는 사랑은 '내 혼자 마음'을 모를 것이라는 의미로 연결되네요. 
  
시인님의 마음은 '향 맑은 옥돌에 불이 달어'라는 구절에 실려있는 것만 같습니다. 옥돌은 아름답고 소중한 것입니다. 그런 보석 같은 마음에 불이 달아올라야 사랑이 타오른다고 하네요. 그런 사랑은 '향 맑은 옥돌'이 뜨거워지듯 은근히 달아오른 '향 맑은' 순수한 사랑이겠지요?

 

그런 '향 맑은' 사랑으로 '내 혼자 마음''날같이 아실 이'와 꿈에서라도 함께 하고픈 간절한 마음을 느껴봅니다.

 

시인님의 염원처럼 '내 마음 날같이 아실 이'가 '그래도 어데나 계실 것이면' 얼마나 좋을까요? 내 마음 그이에게 다 내어드릴 텐데요.

글 읽고 마음 목욕하는 블로그 '독서목욕'에서 김영랑 시인님의 시를 더 만나 보세요.

 

김영랑 시 뉘 눈결에 쏘이었소

김영랑 시인님의 시 '뉘 눈결에 쏘이였소'를 만납니다. 누구의 눈결에 쏘여 온몸 온마음 붉어져 간질거리던 시간으로 돌아가게 하는 시입니다. 함께 읽으며 마음을 맑히는 독서목욕을 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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