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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고 스미기

이육사 시 황혼

by 빗방울이네 2024. 7.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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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육사 시인님의 시 '황혼'을 만나봅니다. 황혼처럼 세상의 아픔을 감싸주려는 시인님의 다짐이 담긴 시입니다. 함께 읽으며 마음을 맑히는 독서목욕을 하십시다.

 

1. 이육사 시 '황혼' 읽기

 

황혼(黃昏)

 

이육사(1905~1944, 경북 안동)

 

내 골방의 커-텐을 것고

정성된 맘으로 황혼(黃昏)을 마저 드리노니

바다의 힌 갈매기들갓치도

인간(人間)은 얼마나 외로운 것이냐

 

황혼(黃昏)아 네 부드러운 손을 힘껏 내미라

내 뜨거운 입술을 맘대로 맛추어 보련다

그리고 네 품 안에 안긴 모-든 것에

나의 입술을 보내게 해 다오

 

저-십이성좌(十二星座)의 반ㅅ작이는 별들에게도

종(鐘)소리 저문 삼림(森林) 속 그윽한 수녀(修女)들에게도

쎄멘트 장판 우 그 만흔 수인(囚人)들에게도

의지할 가지 업는 그들의 심장(心臟)이 얼마나 떨고 잇슬가

 

'고비' 사막(沙漠)을 끈어 가는 낙타(駱駝) 탄 행상대(行商隊)에게나

'아푸리카' 녹음(綠陰) 속 활 쏘는 '인데안'에게라도

황혼(黃昏)아 네 부드러운 품 안에 안기는 동안이라도

지구(地球)의 반(半)쪽만을 나의 타는 입술에 맛겨 다오

 

내 오월(五月)의 골방이 아늑도 하오니

황혼(黃昏)아 내일(來日)도 또 저-푸른 커-텐을 것게 하겠지

정정(情情)이 살어지긴 시내물 소리 갓해서

한번 식어지면 다시는 도라올 줄 모르나 부다

 

▷「이육사 시선」(이육사 지음, 홍용희 엮음, 지식을만드는지식, 2014년) 중에서

 

2. 자신을 돌아보고 앞날을 다짐하며 쓴 시 

 

이육사 시인님은 평생을 항일투쟁이라는 정치적 행동에 바쳤습니다. 생전에 무려 17번이나 옥고를 치렀을 정도입니다. 

 

그 격렬했을 순간순간마다 자신을 돌아보고 앞날을 다짐하며 쓴 시들이 우리 모두 사랑하는 '청포도' '절정' '광야' 같은 주옥같은 시들입니다.

 

'황혼'도 그 가운데 한 편입니다. 1935년 발표됐으니 시인님 31세 때입니다.   

 

시 마지막에 '오월(五月)의 병상(病床)에서'라는 문장이 붙어있네요. 1935년 오월의 어느 날 몸이 아팠던 시인님은 무슨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요?

 

'내 골방의 커-텐을 것고 / 정성된 맘으로 황혼(黃昏)을 마저 드리노니

바다의 힌 갈매기들갓치도 / 인간(人間)은 얼마나 외로운 것이냐'

 

시인님은 1925년 21세 때 독립운동단체에 가입한 후 항일운동 과정에서 23세, 26세, 27세 때 잇달아 구속됐고, 이 시 '황혼'을 쓰기 직전인 1934년 30세 때에도 구속됐습니다. 이런 숨 가쁜 시간을 달려오면서 어느 날 시인님은 병상에서 황혼을 만나게 되었네요.

 

심신이 지치고 아픈 시간에 만난 황혼은 이전의 황혼과는 달랐을 것입니다. 자신을 돌아보게 하고 앞으로 가야 할 길을 생각하게 했을까요?

 

'정성된 맘으로 황혼을 마저(맞아) 드리노니(들이노니)'. 병상에서 창밖의 황혼을 직면했을 그때, 시인님은 모든 것을 황금빛으로 물들이며 포근히 감싸주는 황혼 같은 존재가 되고 싶었을까요? 

 

'바다의 힌(흰) 갈매기들갓치도(같이도) / 인간은 얼마나 외로운 것이냐'. 흰 갈매기처럼 인간도 외롭다고 합니다. 황혼이 저 흰 갈매기를 아늑하게 감싸주듯이 시인님은 억압받고 고통받는 세상의 외로운 존재를 감싸주고 싶었을까요?

 

'내 골방의 커텐(커튼)을 것고(걷고)'. 그래서 시인님은 식민지 현실에서 번뇌와 고뇌, 각오와 다짐의 베이스캠프 같던 골방이라는 공간을 열고 황혼을 맞아드린다고 합니다. 그것도 '정성된 맘'으로 말입니다. 이 마음은 '온갖 힘을 다하려는 참되고 성실한 마음'입니다.

 

'황혼을 맞아들이노니'. 모든 존재를 차별 없이 공평하게 비춰주며 어루만져주는 황혼이 되겠다는, 앞날에 대한 이육사 시인님의 비장한 선언 같기만 합니다.

 

"정성된-맘"-이육사-시-'황혼'-중에서.
"정성된 맘" - 이육사 시 '황혼' 중에서.

 

 

 

3. 황혼처럼 세상의 소외된 존재들을 감싸 안으려는 희망

 

'황혼(黃昏)아 네 부드러운 손을 힘껏 내미라 / 내 뜨거운 입술을 맘대로 맛추어 보련다

그리고 네 품 안에 안긴 모-든 것에 / 나의 입술을 보내게 해 다오'

 

'네 품 안에 안긴 모-든 것에'. 시인님은 어느 특정한 존재에게만 사랑을 주려고 하지는 않습니다. '네 품 안에 안긴 모-든 것에' '뜨거운 입술을 맘대로 맛추어(맞추어)' 보기를 희망합니다.

 

'모-든'이라고 중간에 하이픈(-)을 넣었네요. 이 세계에 대한 시인님의 커다란 사랑이 담긴 뜨거운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은 대목이네요.

 

'저-십이성좌(十二星座)의 반ㅅ작이는 별들에게도 / 종(鐘)소리 저문 삼림(森林) 속 그윽한 수녀(修女)들에게도

쎄멘트 장판 우 그 만흔 수인(囚人)들에게도 / 의지할 가지 업는 그들의 심장(心臟)이 얼마나 떨고 잇슬가'

 

이 3연에서 마지막 행 '의지할 가지 업는(없는)'이 눈에 띕니다. '의지가지없다'라는 말은 '의지할 만한 대상이 없다' 또는 '다른 방도가 없다'는 뜻으로 사전에 나옵니다. 

 

'의지할 가지 업는 그들'은 '반ㅅ작이는(반짝이는) 별들', '그윽한 수녀(修女)들' '그 만흔(많은) 수인(囚人)들'이겠네요. 그들에게도 '나의 입술을 보내게 해 다오'라고 요청합니다. 이 요청은 물론 스스로 하는 자신에 대한 다짐이겠지요?

 

''고비' 사막(沙漠)을 끈어 가는 낙타(駱駝) 탄 행상대(行商隊)에게나 / '아푸리카' 녹음(綠陰) 속 활 쏘는 '인데안'에게라도

황혼(黃昏)아 네 부드러운 품 안에 안기는 동안이라도 / 지구(地球)의 반(半)쪽만을 나의 타는 입술에 맛겨 다오'

 

또한 시인님은 요청하며 다짐합니다. '낙타(駱駝) 탄 행상대(行商隊)', '활 쏘는 인데안'들에게도 '나의 입술을 보내게' 해달라고요. 

 

'고비 사막(沙漠)을 끈어가는' 중에서 '끈어가는'은 '끊어가는'으로 새깁니다. 광활한 사막을 가로질러 가는 '낙타(駱駝) 탄 행상대(行商隊)'의 기다란 대열이 눈에 보이는 것같은 멋진 표현이네요. 

 

'지구(地球)의 반(半) 쪽만을 나의 타는 입술에 맛겨(맡겨) 다오'. 이 시구에 나온 '지구의 반쪽'은 억압받고 핍박받는 피지배자들일 것입니다. 당시 우리 민족처럼 제국주의의 지배를 받게 된 억울한 존재들 말입니다. 그 나머지 반쪽은 잔인하고 악한 지배자들이겠지요? 

 

그렇게 자신의 것을 빼앗긴 억울한 존재들에게 입술을 보내게 해달라고 합니다. 입술을, 자신의 사랑을 보내겠다는 다짐이겠지요? 세상의 소외된 존재들에 대한 시인님의 깊은 연민과 사랑이 느껴집니다.

 

'내 오월(五月)의 골방이 아늑도 하오니 / 황혼(黃昏)아 내일(來日)도 또 저-푸른 커-텐을 것게 하겠지

정정(情情)이 살어지긴 시내물 소리 갓해서 / 한번 식어지면 다시는 도라올 줄 모르나 부다'

 

'내일도 또 저-푸른 커-텐을 것게(걷게) 하겠지'. 내일도 변함없이 인간과 세계를 향한 큰 사랑을 실천하며 살겠다는 의지로 읽힙니다.

 

'정정(情情)이 살어지긴(사라지긴) 시내물(시냇물) 소리 갓해서(같아서)'. '정정(情情)이'가 오기(誤記)라고 하여 이 자리에 '암암(暗暗)히'가 대신 들어간 시가 많이 읽히고 있습니다만, '독서목욕'은 이 시가 처음 발표된 원본에 쓰인 그대로 '정정(情情)이'로 새깁니다. 

 

'정(情)'은 '느끼어 일어나는 마음', '사랑하여 친근감을 느끼는 마음'이라는 뜻도 있지만, '혼탁한 망상'이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황혼에서 비롯된 세계에 대한 새로운 인식, 자신이 나아갈 길에 대한 새로운 신념으로 이제 시인님의 골방은 아늑한 공간으로 변화되었습니다. 그래서 세속의 자잘한 '정(情)'은 식어 이젠 그런 크고작은 정에는 얽매이지 않는 큰 마음이 되었을까요?

 

'한번 식어지면 다시는 도라올(돌아올) 줄 모르나 부다(부다)'. 시냇물이 다시 돌아오지 않는 것처럼 다시는 '정정(情情)이' 돌아오지 않게 되었다는 의미로 다가오네요. 세상을 향한 뜨겁고 큰 애정을 앞으로도 변함없이 간직하겠다는 신념이 느껴집니다.

 

시 '황혼'을 읽는 동안 루쉰(魯迅, 1881~1936)의 소설 '고향'에 나오는 문장이 내내 맴돌았습니다. 

 

희망이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땅 위의 길과 같다. 사실 땅 위에는 본래 길이 없었다.

걸어 다니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곧 길이 된 것이다.

▷루쉰의 소설 '고향' 중에서.

 

이 유명한 문장이 담긴 루쉰의 '고향'을 우리말로 처음 번역(1936년 12월)해 국내에 소개한 사람이 바로 이육사 시인님입니다.

 

시인님은 중국이 낳은 위대한 문학가이며 사상가인 루쉰을 중국에서 처음 만났습니다(1933년 6월).

 

루쉰이 사망했을 때 시인님은 그의 생애와 문학적 업적이 담긴 추도문을 신문에 발표(1936년 10월) 하기도 했습니다. 

 

시 '황혼'은 이육사 시인님이 루쉰의 정신세계에 심취해 있을 때(1935년 12월) 발표되었네요.

 

'걸어 다니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곧 길이 된 것이다'

 

시인님은 소설 '고향'의 마지막 문장을 번역하면서 자신이 '황혼'이 되어서 소외된 외로운 존재들을 위해 새로운 길을 열어가겠다는 다짐을 했을 것만 같습니다.

 

글 읽고 마음 목욕하는 블로그 '독서목욕'에서 이육사 시인님의 시를 더 만나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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