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찬주 소설가님의 장편소설 「산은 산 물은 물」에 나오는 한 장면을 만납니다. 성철 큰스님 이야기입니다. 마음의 옷을 벗고 큰스님의 말씀을 함께 읽으며 들으며 독서목욕을 하십시다.
1. 정찬주 장편소설 「산은 산 물은 물」의 문장 읽기
천대(賤待), 즉 나무꾼도 쳐다보지 않는,
부러진 나무막대기(搉殘古木)처럼 괄시받는 사람이 돼라.
- 정찬주 장편소설 「산은 산 물은 물」 (열림원, 2007년)중에서
성철 큰스님(1921~1993)은 경남 산청 출신으로 청년시절 「하이네 시집」과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을 읽으며 영원한 자유를 갈망했고, 어느 날 탁발승으로부터 받은 영가 스님의 「증도가」를 보고 가슴 깊이 마음을 냈다고 합니다. 25세에 출가해 치열한 참선 정진으로 29세에 깨우침을 이루었습니다. 스님은 평생 누더기 장삼을 입고 ‘자기를 바로 봅시다. 자기는 원래 구원되어 있습니다.’라고 법문 하며 부처님의 가르침을 세상에 전했습니다.
정찬주 작가님은 1953년 전남 보성 출신으로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습니다. 장편소설 「다불」, 「대 백제왕」, 「야반삼경에 촛불춤을 추어라」등을, 산문집 「암자로 가는 길」, 「돈황 가는 길」, 「나를 찾는 붓다 기행」, 「길 끝나는 곳에 암자가 있다」, 「선방 가는 길」, 「다인 기행」, 「자기를 속이지 말라」, 「나를 찾는 암자여행」, 「왜 산중에서 사냐고 묻거든」 등이 있습니다.
2. 부러진 나무막대기가 되라고요?
책을 읽다가 이런 문장을 만나면 불현듯 정신이 아득해집니다. 그대는 어떤지요?
나무꾼도 쳐다보지 않는 부러진 나무막대기 같은 사람이 돼라!
- 정찬주 장편소설 「산은 산 물은 물」 중에서
일등이 되어야 한다, 남보다 앞서 가야 한다, 재주가 많아야 한다, 자격증 하나라도 더 따야 한다, 주위에 힘 있는 사람을 많이 알아야 한다···. 이렇게 스스로를 독려하며 살았는데, ‘부러진 나무막대기’가 돼라니요? 나무를 해다 파는 나무꾼조차 쳐다보지 않는 괄시받는 나무막대기, 최잔고목(搉殘古木), 꺾여서 남은 고목이 되라고요?
처음에 이 문장을 만났을 때 들었던 ‘참 괴이하다’라는 생각은 어느샌가 노글노글 녹아내리면서 ‘일리 있는 말씀이네’라고 변화했고, 다시 어느 순간 ‘이거 맞는 말씀이네’라며 손뼉까지 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빗방울이네 수첩에 또박또박 적어두었습니다.
이 문장은 성철 큰스님의 말씀입니다. 위의 장편소설 「산은 산 물은 물」에 소개된, 성철큰스님이 수행하는 스님들에게 강조한 여덟 가지 규칙 중 하나입니다. 그 여덟 가지를 잠깐 볼까요?
첫째가 절속(絶俗)입니다. 이 부문에서 성철 큰스님은 이렇게 말합니다. 스님네가 부모형제 버리고 떠난 것은 작은 가족을 버리고 큰 가족인 일체중생을 위해 살기 위한 것이라고요.
둘째가 금욕, 셋째가 오늘 ‘독서목욕’의 주제인 천대(賤待), 넷째가 항상 자기의 허물만 보고 남의 시비, 선악은 보지 못하는 하심(下心)을 가지라는 것, 다섯째는 정진(精進), 여섯째는 고행(苦行), 일곱 번째는 일체중생을 위해 매일 예불 때 참회하는 예참(禮懺), 여덟 번째가 남을 도우는 이타(利他)였습니다.
여덟 가지 중 나머지는 머리에 속속 들어오는데 ‘천대(賤待)’는 좀 의외이지요?
천대(賤待)는 업신여겨 천하게 대우하거나 푸대접하는 것을 말합니다. 천대받는 것을 싫어하는 우리가 스스로 천대받기를 자처해야 한다는 말인데요, 성철 큰스님은 그래야 공부 밖에는 한눈을 팔지 않는다고 강조합니다.
이 소설 속에 등장한 일화를 소개드립니다.
어느 스님이 바가지 위에 글씨와 그림을 조각하는 재주가 있었답니다. 성철 큰스님의 글도 새긴 바가지 작품들을 만들어 서울 명동에서 전시회를 열었다고 하네요. 그런데 성철 큰스님은 자신의 글이 새겨진 바가지를 가져오라고 해서 그 스님에게 바가지를 발로 밟아 깨뜨리라고 했답니다. 그 호통을 문장으로 만나볼까요?
“이 자슥아, 바가지 팔아 뭐가 될라꼬 그라노? 중은 부처님 빽으로 살아야 해. 열심히 기도하면 다 된다, 이 말이야.”
가야산 호랑이로 소문난 노스님의 투박한 경상도 억양이 지금 들리는 것만 같네요. 그러면서 성철 큰스님은 이렇게 일침을 가하네요.
“이눔아, 잔재주가 많으면 중노릇 하기 힘들다, 이 말이야.”
잔재주 많아 이것저것에 매달리게 되고, 여기저기에 기웃거리게 되고, 그 잔재주 칭찬받으면 우쭐하고 비난받으면 속상해하면서 어떻게 한곳에 집중해 큰일을 할 수 있겠는가 하는 뜻이겠습니다.
3. 나를 가두어 노예처럼 부리기 또 풀어놓기
성철큰스님의 ‘부러진 나무막대기’가 머릿속에 맴돌고 있을 즈음, 한승원 소설가님의 자서전 「산돌 키우기」(문학동네, 2021년)를 만났습니다. 거기에 이런 문장이 나옵니다.
다산 선생은 타의에 의해 갇혀 살면서 독서와 저술을 통해
당대 최고 최대의 향기로운 자유를 성취한 인물인데
나는 그분을 귀감으로 삼고 산다.
나를 어느 한 공간에 가두고 자유를 구가해야 한다.
사람은 자기를 가두고 노예처럼 부릴 줄도 알아야 하지만
자유 속으로 훨훨 날아가게 양생하고 풀어줄 줄도 알아야 한다.
- 소설가 한승원 자서전 「산돌 키우기」 중에서
그래서 한승원 소설가님은 고향인 전남 장흥 안양 율산마을에 자신만의 창작공간인 ‘해산토굴’을 마련했다고 합니다.
나를 토굴에 가두고 노예처럼 부리자고 생각했다.
자기를 가두어놓고 양생 한다는 것은
독서하고 창작하기이고
풀어놓는다는 것은 자유를 획득한다는 것이고
향기로운 삶의 경계에 이른다는 것, 말하자면 구도적인 삶이다.
- 소설가 한승원 자서전 「산돌 키우기」 중에서
이렇게 자신만의 베이스캠프에 나를 가두고 노예처럼 부린다고 하네요.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 ‘부러진 나무막대기’가 된다고 하네요. 그 '부러진 나무막대기'는 마냥 버려져 있을까요? 버려져 있는 것처럼 보여도 얼마나 치열한 ‘자기 부리기와 풀어놓기’를 반복하고 있겠는지요?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 ‘나무막대기’가 되고 싶을 때가 있네요. 깊은 곳에 깃들어서 노예처럼 스스로를 부리고 자유 속으로 훨훨 날아가고도 싶고요.
글 읽고 마음목욕하는 블로그 ‘독서목욕’에서 성철 큰스님 연관 글을 더 읽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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