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철스님 시봉 이야기」 속의 한 단락을 만납니다. 성철스님은 어떤 마음이 좋은 마음이라고 여겼을까요? 성철스님이 파놓은 깊고 깊은 우물물에 마음을 헹구고 맑히며 함께 독서목욕을 하십시다.
1. 「성철스님 시봉 이야기」 한 다락 읽기
성철스님은 아이들을 무척 좋아하셨다.
여신도들이 가끔 꼬마들을 데리고 오면 꼭 아이들을 불러 과일이나 과자를 주곤 하셨다.
아이들의 천진함을 마냥 좋아했다.
"숨김없이 지 생각나는 대로 반응하는 것이 어린애 아니냐. 그게 얼마나 좋냐."
그런데 큰스님은 아이들을 보면 꼭 장난을 건다.
과자를 맛있게 먹고 있는 아이의 볼을 꼬집거나 머리에 꿀밤을 먹이곤 했다.
당연히 아이들은 아앙하고 울어버린다.
그러면 큰스님은 다시 우는 아이를 달래느라 안간힘을 쓴다.
당시만 해도 귀하던 사탕이나 과자를 쥐어주기도 하고, 조금 큰 아이에겐 동전을 주면서 구슬린다.
- 「성철스님 시봉 이야기」(원택 지음, 김영사) 중에서
'20세기 한국 불교를 대표하는 인물'로 칭송받는 성철스님(본명 이영주, 1912~1993)은 경남 산청군 단성군 묵곡리에서 태어났습니다. 1936년 25세에 수행의 길로 들어서 출가 3년 만인 29세에 대구 동화사 금당선원에서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독보적인 사상과 선풍으로 조계종 종정에 오르면서 불교계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습니다. 진리를 위해 모든 것을 버린 용기, 평생에 걸친 엄격하고 철저한 수행, 무소유와 절약정신은 '우리 곁에 왔던 부처'의 모습으로 남아있습니다. 1993년 11월 4일 성철스님은 처음 출가했던 합천 해인사 퇴설당에서 '참선 잘하거라'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남기고 법랍 58세 세수 82세의 일기로 열반에 들었습니다.
「성철스님 시봉 이야기」 저자 원택스님(1944~ )은 1967년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합천 해인사 백련암에서 성철스님으로부터 '니 고마 중 돼라'라는 한마디를 듣고 1972년 출가해 성철스님 생전에 곁에서 스님의 제자로 23년 동안 시봉생활을 했습니다. 조계종 총무원 총무부장을 역임했으며, 성철스님 사후에 합천 가야산 백련암을 지키며 조계종 백련불교문화재단 이사장, 도서출판 장경각 대표를 맡아 성철 사상을 전하고 있습니다.
2. '아이들의 천진함을 마냥 좋아했다‘
문득 우리는 어떤 글에서 삶의 비의(秘義)를 만나곤 합니다. 오늘은 어떤 숨어있는 귀한 뜻을 만날 수 있을까요?
위에 소개된 글은 위 책 속에 '어린이의 친구, 큰스님'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글의 첫머리입니다. 성철스님의 제자 원택스님이 성철스님 곁에서 23년 동안 시봉생활을 했는데, 그때 지켜보았더니 성철스님이 아이를 무척 좋아하셨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요, 성철스님은 성격이 급하고 격해서 스님이 계시던 가야산(합천 해인사)을 따서 '가야산 호랑이'로 불리던 분입니다. 뒤로 눕지도 졸지도 않는 장좌불와(長坐不臥) 8년, 동구불출(洞口不出) 10년! 이처럼 철두철미한 수행 정진으로 세상을 놀라게 한 분입니다.
성철스님이 선방에 들이닥칠 때는 늘 한 손에 죽비를 들고 있었다.
방에 들어서자마자 상판(윗자리), 하판(아랫자리) 구분할 것 없이 조는 사람의 등줄기를 사정없이 내리쳤다.
- 「성철스님 시봉 이야기」 중에서
이렇게 엄한 성철스님은 의외로(!) 아이들을 매우 좋아하셨다고 하네요. 이렇게 말씀하시면서요.
숨김없이 지 생각나는 대로 반응하는 것이 어린애 아니냐
그게 얼마나 좋냐
- 「성철스님 시봉 이야기」 중에서
성철스님이 좋아하신 동심이네요. 아직 세상의 이런저런 때가 묻지 않은 순수한 마음 말입니다. 천진난만(天眞爛漫)! 하늘에서(天) 생긴 그대로(眞) 빛나게(爛) 넘쳐흐르는(漫) 것 말이에요. 말이나 행동에 아무 꾸밈이 없이 그대로 나타날 만큼 순진하고 천진함을 말합니다.
성철스님은 29세에 깨달음을 얻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가보지 못한 깨달음의 세계는 어떤 세계일까요?
도를 배우는 사람도 갓난아기와 같아져서
영욕과 공명과 거슬리는 감정과 좋은 경계가 그를 동요시키지 못하며
눈으로 색을 보되 맹인과 같고 귀로 소리를 듣되 귀머거리와 같으며
어리석고 어리석은 것 같아서 그 마음이 동요하지 아니함이 수미산과 같아야 한다.
「성철스님 화두참선법」(원택 엮음, 김영사) 중에서
성철스님은 위 책에서 벽암록에 나오는 이 구절을 인용하면서 갓난아기를 깨달음을 얻은 사람에 비유했습니다. 성철스님이 도달했던 대무심지의 세계는 아이들의 순진무구한 세계와 얼마나 가까운 것이었을까를 생각해 봅니다.
3. 성철스님,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그런데 큰스님은 아이들을 보면 꼭 장난을 건다.
과자를 맛있게 먹고 있는 아이의 볼을 꼬집거나 머리에 꿀밤을 먹이곤 했다.
- 「성철스님 시봉 이야기」 중에서
성철스님은 이렇게 장난꾸러기인 것만 같습니다. 짓궂은 개구쟁이 아이요.
어쩐 일인지 걱정 끝에 큰맘 먹고 문을 벌컥 열었는데,
성철스님과 청담스님이 웃통을 벗어던진 채 한참 레슬링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무슨 큰 난투극이 벌어졌나 걱정하고 문을 열었는데
두 큰스님이 서로 이기겠다고 방바닥을 뒹굴며
한창 죽인다, 살린다 하며 고함을 쳤다가 웃었다가 (중략)
그렇게 집이 무너질 듯이 해대던 레슬링이 끝나면
지붕이 들썩거릴 정도로 무엇이 좋은지 박장대소를 그치지 않았다.
- 「성철스님 시봉 이야기」 중에서
두 노스님이 웃통을 벗고 엎치락뒤치락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셔요. 참말로 개구쟁이 아이들 같지 않은지요.
위 책 113쪽에는 성철스님이 아이와 함께 앉아있는 흑백사진이 있습니다. 아이는 수박을 먹고 있고, 성철스님은 왼손으로 아이의 뒷머리를 쓰다듬으며 우리 쪽을 보고 계십니다. 아주 인자한 할아버지 표정입니다. 그 표정에 아이의 모습이 어른거리는 것만 같네요. 그 따듯한 할아버지에게 빗방울이네가 물었습니다.
큰스님, 우리는 어떻게 하면 아이의 마음을 사랑하며, 닮으며, 또 되찾아 큰스님처럼 천진난만 행복하게 살 수 있을지요?
문득 '불기자심(不欺自心)'이라는 말이 떠오르네요. 자기 마음을 속이지 말라는 뜻입니다. 성철스님이 붓으로 쓴 이 네 글자를 내방객들에게 선물하곤 했다고 합니다. 성철스님은 '어떻게 살면 좋습니까?' 하고 물어오는 중생들에게 이렇게 대답하신 겁니다.
'不欺自心'
그리고 성철스님은 미욱한 중생들에게 이렇게 덧붙여 말씀하시는 것만 같습니다.
니 자신을 속이면 괜찮을 줄 알았제?
니 자신을 속인 일을 다른 사람은 모르니 다 된 줄 알았제?
사실과 다르게 말하고, 말을 번드르르하게 꾸미고,
말을 과장하고, 말을 축소하고,
할 말 안 하고, 안 할 말을 하고 ···.
그게 아닌 줄 알면서, 니 스스로는 잘못된 것을 알면서
모르는 척 자신을 속인 채 그렇게 해도 괜찮을 줄 알았제?
그러면 자꾸 니 마음에 얼룩이 생기는 거라.
아이 같은 순수한 마음이 시커멓게 멍드는 거라.
세월이 가면서 마음에 그런 얼룩이 자꾸자꾸 덮이면 우찌 되겠노?
글 읽고 마음목욕하는 블로그 '독서목욕'에서 어린이 마음의 소중함을 노래한 시 한 편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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