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해 시인님의 시 '부모로서 해줄 단 세 가지'를 만납니다. 부모의 역할에 대한 소중한 팁을 주네요. 함께 읽으며 마음을 맑히며 독서목욕을 하십시다.
1. 박노해 시 '부모로서 해줄 단 세 가지' 읽기
부모로서 해줄 단 세 가지
- 박노해(1957~, 전남 함평)
무기 감옥에서 살아나올 때
이번 생에는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내가 혁명가로서 철저하고 강해서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허약하고 결함이 많아서이다
하지만 기나긴 감옥 독방에서
나는 너무 아이를 갖고 싶어서
수많은 상상과 계획을 세우곤 했다
나는 내 아이에게 일체의 요구와
그 어떤 교육도 하지 않기로 했다
미래에서 온 내 아이 안에는 이미
그 모든 씨앗들이 심겨져 있을 것이기에
내가 부모로서 해줄 것은 단 세 가지였다
첫째는 내 아이가 자연의 대지를 딛고
동무들과 마음껏 뛰놀고 맘껏 잠자고 맘껏 해보며
그 속에서 고유한 자기 개성을 찾아갈 수 있도록
자유로운 공기 속에 놓아두는 일이다
둘째는 '안 되는 건 안 된다'를 새겨주는 일이다
살생을 해서는 안 되고
약자를 괴롭혀서는 안 되고
물자를 낭비해서는 안 되고
거짓에 침묵동조해서는 안 된다
안 되는 건 안 된다! 는 것을
뼛속 깊이 새겨주는 일이다
셋째는 평생 가는 좋은 습관을 물려주는 일이다
자기 앞가림은 자기 스스로 해나가는 습관과
채식 위주로 뭐든 잘 먹고 많이 걷는 몸생활과
늘 정돈된 몸가짐으로 예의를 지키는 습관과
아름다움을 가려보고 감동할 줄 아는 능력과
책을 읽고 일기를 쓰고 홀로 고요히 머무는 습관과
우애와 환대로 많이 웃는 습관을 물려주는 일이다
그러니 내 아이를 위해서 내가 해야 할 유일한 것은
내가 먼저 잘 사는 것, 내 삶을 똑바로 사는 것이었다
유일한 자신의 삶조차 자기답게 살아가지 못한 자가
미래에서 온 아이의 삶을 함부로 손대려 하는 것
결코 해서는 안 될 월권행위이기에
나는 아이에게 좋은 부모가 되고자 안달하기보다
먼저 한 사람의 좋은 벗이 되고
닮고 싶은 인생의 선배가 되고
행여 내가 후진 존재가 되지 않도록
아이에게 끊임없이 배워가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그저 내 아이를
'믿음의 침묵'으로 지켜보면서
이 지구별 위를 잠시 동행하는 것이었다
- 박노해 시집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느린걸음, 2010년 1쇄, 2021년 53쇄) 중에서
2. 아이를 자유로운 공기 속에 놓아두는 일
시 '부모로서 해줄 단 세 가지'는 2010년 발간된 박노해 시인님의 세 번째 시집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에 실려 있습니다.
이 시집 앞쪽에 있는 시인님 약력에 이런 문구가 눈에 있네요.
'적은 소유로 기품 있게' 살아가는
삶의 공동체 <참사람의 숲>을 꿈꾸며
- 박노해 시집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중에서
이 짧은 문장, '적은 소유로 기품 있게'는 시인님 삶의 지향점이기도 할 것입니다. 이런 힌트를 가슴에 안고 시를 만납니다.
나는 내 아이에게 일체의 요구와 / 그 어떤 교육도 하지 않기로 했다
미래에서 온 내 아이 안에는 이미 / 그 모든 씨앗들이 심겨져 있을 것이기에
- 박노해 시 '부모로서 해줄 단 세 가지' 중에서
이 구절은 우리의 교육 현실을 떠올리게 합니다. '내 자식만 잘 되면 된다'는 이기심에 저마다 얼마나 힘든 경쟁의 나날을 보내야 하는지요.
일전에 '독서목욕'에서 함께 읽은 퇴계 이황 님의 시 '자식 교육'이 생각나네요.
많이 가르치는 것은 싹을 뽑아 북돋는 짓이요
- 퇴계 이황 '자식 교육' 중에서
우리 아이들 요즘 너무 바쁩니다. 음악학원에 체육학원에 외국어에. 이렇게 많이 가르치는 것은 빨리 자라라고 묘목을 손으로 쑥 뽑아 올리는 것과 같다고 합니다.
시인님은 아이 속에 이미 모든 것이 심겨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래라저래라 요구하지 않고 교육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네요. 그런데 부모로서 단 세 가지는 해주려 한다고 합니다.
첫째는 내 아이가 자연의 대지를 딛고 / 동무들과 마음껏 뛰놀고 맘껏 잠자고 맘껏 해보며
그 속에서 고유한 자기 개성을 찾아갈 수 있도록 / 자유로운 공기 속에 놓아두는 일이다
- 박노해 시 '부모로서 해줄 단 세 가지' 중에서
아이를 자유롭게 놓아두는 일은 얼마나 어려운지요? 아이가 조금만 집 밖을 벗어나도 걱정입니다. 아이에겐 아이 스스로 헤쳐나가며 살아야 할 자기 몫의 삶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 아이와 좀 떨어져 지켜볼 수 있지 않을까요?
벼농사를 하는 사람이나 과수원을 운영하는 사람들은
주어진 몇 가지 책임만 담당하면 된다.
적당한 양의 비료를 주고 잡초를 제거하고 병충해를 예방해 준다.
그 이상의 더 큰 책임은 자연이 감당해 준다.
- 김형석 수필집 「백 년을 살아보니」 중에서
이 문장도 '독서목욕'에서 읽었던 것입니다. 자녀를 올바르게 키우는 일을 식물 키우기에 비유한, 올해 105세 철학자 김형석 교수님의 전언입니다.
3. 아이를 위해 내가 해야 할 유일한 것 - 내 삶을 똑바로 사는 것!
둘째는 '안 되는 건 안 된다'를 새겨주는 일이다 / 살생을 해서는 안 되고
약자를 괴롭혀서는 안 되고 / 물자를 낭비해서는 안 되고 / 거짓에 침묵동조해서는 안 된다
- 박노해 시 '부모로서 해줄 단 세 가지' 중에서
‘살생을 해서도 안 되고 약자를 괴롭혀서도 안 되고’. 「달라이라마의 행복론」에 나온 문장이 떠오릅니다.
할 수만 있다면 다른 사람과
다른 생명 가진 존재들을 도와주라.
만일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적어도 그들을 해치지 말라.
- 달라이 라마·하워드 커틀러의 「달라이 라마의 행복론」 중에서
생명 가진 모든 존재들에 의해 내가 살아갈 수 있다는 점을 새깁니다. 그러므로 타자를 도우며 행복하게 하는 길이야말로 나를 행복하게 하는 길이겠습니다.
셋째는 평생 가는 좋은 습관을 물려주는 일이다
자기 앞가림은 자기 스스로 해나가는 습관과 / 채식 위주로 뭐든 잘 먹고 많이 걷는 몸생활과
늘 정돈된 몸가짐으로 예의를 지키는 습관과 / 아름다움을 가려보고 감동할 줄 아는 능력과
책을 읽고 일기를 쓰고 홀로 고요히 머무는 습관과 / 우애와 환대로 많이 웃는 습관을 물려주는 일이다
- 박노해 시 '부모로서 해줄 단 세 가지' 중에서
'아름다움을 가려보고 감동할 줄 아는 능력'이라는 구절이 가슴에 와닿네요. 아름다움은 얼마나 우리를 높은 곳에 데려다주는지요. 예술작품에서든 일상에서든 미추(美醜)를 구분할 줄 아는 능력이라면 우리는 부유하지 않아도 참된 부(富)를 누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웃는 습관'이라는 말도 눈에 쏙 들어옵니다. 웃는다는 것은 공감하는 것이며, 공감하려면 '우애와 환대'가 선행되어야 하겠네요.
그러니 내 아이를 위해서 내가 해야 할 유일한 것은 / 내가 먼저 잘 사는 것, 내 삶을 똑바로 사는 것이었다
- 박노해 시 '부모로서 해줄 단 세 가지' 중에서
이 구절이 이 시의 솟대인 것 같습니다. '내 삶을 똑바로 사는 것'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아이에게 '삶을 똑바로 사는 것'을 가르치려 한다면 설득력이 생길 수 없겠지요.
나는 아이에게 좋은 부모가 되고자 안달하기보다
먼저 한 사람의 좋은 벗이 되고 / 닮고 싶은 인생의 선배가 되고
행여 내가 후진 존재가 되지 않도록 / 아이에게 끊임없이 배워가는 것이었다
- 박노해 시 '부모로서 해줄 단 세 가지' 중에서
아이는 끊임없이 성장한다는 것을 알겠습니다. 아이는 늘 새로운 것을 배우는 새로운 시대의 사람입니다. 스마트폰, 컴퓨터 등 신기술들은 아이가 더 잘합니다. 천진난만한 웃음과 놀라운 생각도 아이가 더 잘합니다.
아이는 날마다 창의적인 존재다, 아이에게 배워야 할 것이 많다는 점을 깊이 생각해 봅니다. 자신의 방식대로 아이를 가르치고 이끄는 부모가 아니라 아이에게 '좋은 벗' '닮고 싶은 인생의 선배'가 되는 길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그리하여 나는 그저 내 아이를 / '믿음의 침묵'으로 지켜보면서
이 지구별 위를 잠시 동행하는 것이었다
- 박노해 시 '부모로서 해줄 단 세 가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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