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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고 스미기

안도현 시 공양 읽기

by 빗방울이네 2023. 9.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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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현 시인님의 시 '공양'을 만납니다. 이 시는 어떤 삶의 풍경을 우리에게 보여줄까요? 마음의 옷을 벗고 함께 시를 읽으며 독서목욕을 하십시다.
 

1. 안도현 시 '공양' 읽기

 
공양

- 안도현(1961~ , 경북 예천)

싸리꽃을 애무하는 산(山) 벌의 날갯짓소리 일곱 근

몰래 숨어 퍼뜨리는 칡꽃 향기 육십 평

꽃잎 열기 이틀 전 백도라지 줄기의 슬픈 미동(微動) 두치 반

외딴집 양철지붕을 두드리는 소낙비의 오랏줄 칠만 구천 발

한 차례 숨죽였다가 다시 우는 매미울음 서른 되


- 안도현 시집 「간절하게 참 철없이」(창비, 2008년) 중에서
 

2. 시를 만나기 전에 살펴보는 몇 가지


이 시는 안도현 시인님의 시집 「간절하게 참 철없이」에 첫 번째 시로 실려 있습니다. 시집 속의 첫 시는 시인님의 찡긋 하는 눈짓 인사입니다. 독자에게 처음 내미는 시, 시인님 마음은 얼마나 떨리겠는지요? 이 시 3행의 ‘꽃잎 열기 이틀 전 백도라지 줄기의 슬픈 미동’처럼요.

그래서 그중에서도 가장 잘 생긴 시를, 모두 잘 생겼지만 그래도 대표선수를 고르려 애썼을 겁니다. 너무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시, 전체 시집의 분위기를 감지할 수 있는 시, 시인님이 요즘 걷고 있는 시의 오솔길 풍경을 보여줄 수 있는 시, 그런 점에서 시 ‘공양’이 딱 맞겠다 하셨겠네요. 이 선수면 독자님들도 반가워하실 거야, 그리고 그 반가움으로 두 번째 세 번째 시도 읽어주실 거야,라고 하셨겠네요.

그렇게 시집 제목처럼 '간절하게 참 철없이', 간절하게 참 천진난만하게 시를 건네주시는 시인님의 애틋한 마음을 느끼며 시인님의 대표선수 ‘공양’을 만나봅니다.

그런데요, 우리는 이 시를 마주하면서 시의 제목이 얼마나 중요한 지 새삼 절감하게 됩니다. 제목은 그냥 장식처럼 시에 씌우는 예쁜 모자가 아니라는 것을요. 만일, 그대가 제목을 모른 채 이 시를 읽었다면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인가?' 하고 어리둥절한 나머지 시를 떠나버렸을지도 모릅니다. 또 이 시의 제목이 만일 '여름'이라고 한다면, 여름날 벌어지는 풍경 다섯 개를 단순히 나열하고 있는 시가 되어 별 감흥을 주지 못할 것입니다.

제목이 중요하다고 해도 본문만큼 중요할까요? 네, 중요합니다. 이 시 '공양'은 시 본문에 버금가는 중요 임무를 제목이 하고 있습니다. 단어 하나('공양')가 본문 다섯 줄에 버금간다는 말입니다. 단어 하나의 위력이 엄청나네요.

제목을 몰라도 이해할 수 있는 시도 있지만, 이 시는 제목을 모르면 이해할 수 없는 시입니다. 그리하여 제목 '공양'은 다섯 개의 명사구가 딴 길로 달아나지 않게 딱 잡아주고 있네요. 그러므로 제목은 오케스트라 지휘자처럼 본문이 딴청을 부리지 못하도록 한 곳으로 수렴합니다.

또 한 가지. 제목과 본문의 연관성입니다. 외견상으로 이 시는 제목과 본문이 전혀 상관이 없는 것으로 보이네요. 본문에는 공양이라는 말이나 이를 짐작할만한 희미한 힌트도 없습니다. 시에 시인님의 전략이 숨어있는 거네요. 얼마나 고도한 전략일까요? 

안도현시공양중에서
안도현 시 '공양' 중에서.

 


3. ‘간절하게 참 철없이’ 하는 세상 공양 이야기

 
싸리꽃을 애무하는 산(山) 벌의 날갯짓소리 일곱 근

- 안도현 시 ‘공양’ 중에서


시의 첫 줄은 신이 내려준다고 했던가요? 그만큼 중요합니다. 첫 줄이 독자의 눈과 마음을 확 잡아야 하니까요. 시를 읽기 시작한 독자는 첫 줄에서 '시인님은 어떻게 이런 멋진 생각을 했을까?' 하면서 그 경이로움에, 흥미로움에, 낯섦에, 간지러움에, 엉뚱함에 매료되어야 합니다.

이 첫 줄, 그대는 어떻게 읽으셨나요?
 
빗방울이네는 안도현 시인님이 참 엉큼하시다는 생각이 불쑥 들어 마음이 간지러웠습니다. 싸리꽃에 산벌이 앉아 꿀을 빨면서 날갯짓을 하고 있는 장면입니다. 산벌은 꿀을 빨려고 접근하면서 자신의 입을 꽂아야 할 목표 지점을 정하기 위해 잠시 공중에 체공(滯空)을 합니다. 꽃과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요. 그러면 그 바르르 떨리는 날개가 어디에 닿겠는지요? 꽃잎에요. 시인님은 그 장면을 애무라고 했네요. ‘엉큼 도현님’이시네요. 그런데 이 애무라는 단어가 없었다면 ‘엉큼 그대’는 과연 이 시를 더 읽어 내려갔을까요?

몰래 숨어 퍼뜨리는 칡꽃 향기 육십 평

- 안도현 시 ‘공양’ 중에서


‘간절하게 참 철없이’가 이 시집의 제목입니다. 만약 간절하지 않고 철이 가득 든 시인이라면 어떻게 이런 표현을 할 수 있겠는지요? 칡나무는 여름 무성한 수풀 속에 숨어있다는 점, 칡꽃 향기를 퍼뜨리고 자신도 슬금슬금 기어가서 급기야 들판을 온통 점령하고 만다는 정밀한 관찰 없이 어떻게 몰래 숨어 퍼뜨린다는 문장을 생각할 수 있었겠는지요? 칡나무의 입장이 되어보지 않고서요. 

꽃잎 열기 이틀 전 백도라지 줄기의 슬픈 미동(微動) 두치 반

- 안도현 시 ‘공양’ 중에서


참말로 시인님도요, 어째 이리 여리실까요? 시인님은 이번에는 백도라지가 되었네요. 이틀 후 꽃을 피워야 하는 백도라지요. 꽃을 피우면 백도라지는 어떨까요? 시인님은 도라지의 개화가 몸살처럼 아플 것만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슬픈 미동'을 생각했을까요? 파르르 떨리는 몸짓요. 성장은 '슬픈 미동'을 동반할까요?

외딴집 양철지붕을 두드리는 소낙비의 오랏줄 칠만 구천 발

- 안도현 시 ‘공양’ 중에서

 
오랏줄(오라)은 나쁜 사람을 묶을 때 쓰이는 줄입니다. 아시죠? '이리 와서 내 오라를 받아라!' 하늘에서 오랏줄이 줄줄이 내려오네요. 이 오랏줄이 외딴집의 나쁜 외로움을 다 묶어버리네요. 투둑투둑 투두둑 ···. 아, 경쾌한 양철지붕 연주회가 시작되었습니다.

한 차례 숨죽였다가 다시 우는 매미울음 서른 되

- 안도현 시 ‘공양’ 중에서


이 구절을 읽으면서 그대는 왜 매미울음을 쌀됫박으로 한 되 두 되 되고 있었는지요? 정말 그랬다면, 아니 그럴 수밖에 없었겠지만, 그대도 '간절하게 참 철없이' 사는 사람이네요. '간절하게 참 철없이' 사는 그대가 아니면, 그런 연둣빛 마음 아니면 어찌 이 시를 여기 끝까지 읽어왔겠는지요? '간절하게 참 철없이' 사는 천진난만한 시인님을, 그리고 그대를 사랑합니다.
 
그런데요, 이 많은 걸 대체 누구에게 공양하는 걸까요? 이제 우리는 시인님이 본문과 상관없는 듯 툭 던져놓은 제목, '공양'이 가리키는 쪽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공양은 생명을 더 생명답게 하려 생명에게 바치는 것입니다. 이 시에 나오는 많은 공양을 받아 세상이, 여름이, 자연이, 그 속에 있는 모든 생명이 더 생명답게 살아갈 수 있네요. 세상 일, 공양 아닌 것이 없네요. 삶이란 서로 공양하며 공양받으며 서로의 생명을 살려주며 가는 거네요. 이 얼마나 아름다운 간절함인지요? 이 얼마나 천사같은 철없음인지요?
 
글 읽고 마음 목욕하는 블로그 '독서 목욕'에서 안도현 시인님의 시 '너에게 묻는다'를 만나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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