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육 시인님의 시 '사랑의 물리학'을 읽습니다. tvN 로맨스 판타지 '도깨비'에 등장해 많은 사랑을 받은 시입니다. 시인님이 호명해 준 첫사랑의 여울에 마음을 맑히며 독서목욕을 하십시다.
1. 김인육 시 '사랑의 물리학' 읽기
사랑의 물리학
- 김인육
질량의 크기는 부피와 비례하지 않는다
제비꽃같이 조그마한 그 계집애가
꽃잎같이 하늘거리는 그 계집애가
지구보다 더 큰 질량으로 나를 끌어당긴다,
순간, 나는
뉴턴의 사과처럼
사정없이 그녀에게로 굴러 떨어졌다
쿵 소리를 내며, 쿵쿵 소리를 내며
심장이
하늘에서 땅까지
아찔한 진자운동을 계속하였다
첫사랑이었다.
- 김인육 시집 「사랑의 물리학」(문학세계사, 2016년) 중에서
김인육(金寅育) 시인님은 1963년 울산 출신으로 2000년 <시와생명> 신인상으로 등단했습니다. 시집 <사랑의 물리학> <다시 부르는 제망매가> <잘 가라 여우> 등이 있습니다. 서울대학교 사범대 강사를 거쳐 현재 서울 양천고 교사, 계간 <미네르바>와 월간 <가족이야기> 편집위원, 서울교육발전협의회 의원 등으로 활동 중입니다. 2001년 교단문예상을 수상했습니다.
2. '사정없이 그녀에게로 굴러 떨어졌다'
‘도깨비’를 봤습니다. 환상 가득한 로맨스 판타지입니다. tvN 16부작 드라마입니다.
2016년 방영됐는데요, 빗방울이네 최근에야 넷플릭스로 정주행을 했습니다. 아주 재밌게 봤습니다. 아, 우리에겐 가끔 환상이 필요해, 우리를 일상에서 떨어진 먼 곳으로 데려다주는 멋진 환상이 필요해, 이러면서요.
이 드라마를 쓴 김은숙 작가님은 정말 신통방통합니다. 그 이야기 내용과 대사는요, 차지고 또 차집니다. '파리의 연인' '시크릿 가든' '태양의 후예' 등에서 이미 증명되었듯이, 그이의 머릿속엔 어떤 도깨비가 사는지 물어보고 싶을 지경입니다.
배우 공유 님이 '도깨비'입니다. 배우 김고은 님이 '도깨비 신부'고요. 이 두 사람의 로맨스인데, 도깨비는 고려의 무신으로 가슴에 검이 꽂힌 채 현재까지 939년을 불멸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이 검을 뽑아야 고통을 끝내고 소멸되는데 그 검을 뽑을 수 있는 사람은 도깨비 신부뿐입니다. 그런데요, 그렇게 찾아 헤매던 도깨비 신부를 찾게 된 도깨비는, 불멸을 끝내고 소멸하려던 도깨비는요, 아, 첫사랑에 빠지고 맙니다.
이렇게요.
가을날 잔디광장이네요.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가 보이고요, 마른 잔디 위로 낙엽이 뒹굴어요. 도깨비는 그 잔디밭 의자에 앉아 시집을 읽고 있네요. 시집 속 '사랑의 물리학'이라는 시가 화면에 나타날 때, 어디론가 편지를 부치고 온 도깨비 신부는 건널목 저편에서 '아저씨~!' 하고 도깨비를 부릅니다. 그 순간, 특유의 매력적인 저음으로 도깨비 공유 님이 시 '사랑의 물리학'을 낭송하는 목소리가 흐릅니다.
질량의 크기는 부피와 비례하지 않는다
- 김인육 시 ‘사랑의 물리학’ 중에서
뭐지, 물리학 교과서에나 나올 문구인데? 하고 생각하는 사이, 김고은 님이 건널목을 통통거리며 건너옵니다. 얼마나 귀여운지요. 그녀의 하얀 운동화조차 상큼하네요. 그녀는 멀리서 앳된 미소를 지으며 공유 님을 바라봅니다. 그리고는 탁구공처럼 통통 오네요. 그런 귀여운 모습은 얼마나 편안한 사랑스러움인지요. 그런데 왜 질량 이야기를 했을까요?
제비꽃같이 조그마한 그 계집애가 / 꽃잎같이 하늘거리는 그 계집애가 / 지구보다 더 큰 질량으로 나를 끌어당긴다
- 김인육 시 ‘사랑의 물리학’ 중에서
그랬군요. 부피는 제비꽃만한데 지구보다 더 큰 질량으로 느껴진다고 하네요. 시의 구절 때문에 더욱 슬픈 눈빛이 된 그는 지구보다 더 큰 질량으로 당기는 제비꽃 같은 그녀에게 끌려들어 가네요. 그녀의 머리카락은 햇살에 반짝이며 휘날리고요. 그녀를 바라보는 그의 얼굴은 참으로 그윽하고 다정하고요. 이 속수무책 사랑의 물리학!
순간, 나는 / 뉴턴의 사과처럼 / 사정없이 그녀에게로 굴러 떨어졌다 / 쿵 소리를 내며, 쿵쿵 소리를 내며
- 김인육 시 ‘사랑의 물리학’ 중에서
이 구절이 공유 님의 목소리로 흐르는 사이, 과거 자신이 숨질 때의 장면이 화면에 나타납니다. 그는 전쟁에서 승승장구해 백성들에게 신이라 불렸던 장수였는데, 왕의 질투로 목숨을 잃게 됩니다. 자신이 지키던 주군에 의해 심장에 검이 꽂힌 채 피를 흘리며 죽어가네요. 이때 이미 그는 먼 훗날 그녀에게로 굴러 떨어지게 되어 있었네요. 사정없이요. 필연적으로요. 이때 이미 이렇게 정해져 있었겠네요, 우리네 사랑은요.
심장이 / 하늘에서 땅까지 / 아찔한 진자운동을 계속하였다 / 첫사랑이었다
- 김인육 시 '사랑의 물리학' 중에서
이 구절을 타고 그녀가 그에게 다가옵니다. 하늘과 땅을 오가는 진자처럼 흔들리면서요. 과거의 회상에 잠긴 그는 넋이 나간 채 그녀를 바라보고만 있습니다. 그는 이 모든 것이 첫사랑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939년 만의 첫사랑! 그 가슴떨림, 참으로 우주적이네요. 그대의 첫사랑 떨림도 우주적이었겠지요?
3. '힘이 불끈한다 하니, 그럼 되었다'
그런데요, ‘사랑의 물리학’으로 서로에게 굴러 떨어진 지 이미 오래인 빗방울이네와 짝지 풀잎은 이렇게 한 달 넘게 '도깨비'에 홀려 지내는 사이, 그만 도깨비 말투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주인공 도깨비는 고려시대 사람이기 때문에 특유의 고어체 대사를 사용합니다. 그런데 드라마를 보는 사이 그만 그 고어체가 입에 붙어버렸네요.
이런 식입니다. 빗방울이네가 귀갓길에 조각 피자 하나를 사서 사진을 찍어 카톡으로 보냅니다. 이 조각 피자를 먹게될 짝지 풀잎에게요.
- 힘내면 좋을 듯하여.
그러면 아직 직장에서 일하고 있는 풀잎이 답합니다.
- 사진만 봐도 힘이 불끈하여.
빗방울이네 또 이렇게 덧붙입니다.
- 힘이 불끈한다 하니, 그럼 되었다.
이런 류의 대화 속에 미소 짓다 보니 정말 빗방울이네가 도깨비, 짝지 풀잎은 도깨비 신부인 것만 같습니다. 거참.
누구라도 첫사랑의 애틋함은 지나갔을지라도 '끝사랑'의 다정함은 쭈욱 계속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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