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춘수 시인님의 시 '달개비꽃'을 만납니다. 이 시는 '꽃의 시인' 김춘수 시인님의 마지막 시집 제목이기도 합니다. 어떤 삶의 비의(秘義)를 품고 있을까요? 시인님이 건네준 달개비꽃의 포르스름한 빛깔로 마음을 맑히며 독서목욕을 하십시다.
1. 김춘수 시 '달개비꽃' 읽기
달개비꽃
- 김춘수
울고 가는 저 기러기는
알리라,
하늘 위에 하늘이 있다.
울지 않는 저 콩새는 알리라,
누가 보냈을까,
한밤에 숨어서 앙금앙금
눈 뜨는,
- 김춘수 시집 「달개비꽃」(현대문학, 2004년) 중에서
김춘수 시인님(1922~2004)은 경남 통영 출신으로 1946년 「해방 1주년 기념 사화집」에 '애가'를 발표하면서 문단활동을 시작했습니다. 1948년 첫 시집 「구름과 장미」를 비롯 「늪」 「기(旗)」 「인인(隣人)」 「꽃의 소묘」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 「의자와 계단」 「거울 속의 천사」 「쉰한 편의 비가(悲歌)」 등 25권의 시집과 시선집을 냈습니다. 이와 함께 7권의 시론집과 7권의 산문집을 냈습니다. 소월시문학상 특별상, 청마문학상, 인촌상, 대산문학상, 경상남도문화상, 은관문화훈장 등을 수상했습니다.
2. 마지막 시집은 왜 ‘달개비꽃’일까?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 그는 다만 /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 김춘수 시 '꽃' 중에서
이 시구로 유명한 김춘수 시인님의 시 '꽃'은 우리들이 가장 많이 애송하는 시의 하나입니다.
이렇게 우리 시문학의 '우뚝한 봉우리' 김춘수 시인님은 모두 25권의 시집과 시선집을 남겼는데요, 그의 마지막 시집은 어떤 시집일까요?
바로 「달개비꽃」입니다. '꽃의 시인'답게 「달개비꽃」이라는 제목의 시집을 우리에게 마지막으로 건네주었네요.
시인님은 2004년 8월에 쓰러져 11월에 돌아가셨는데, 그전에 자신의 마지막 시집이 될 「달개비꽃」을 손수 편집해 두었다고 합니다. 결국 출판된 시집을 못 보고 돌아가셨네요. 이 시집은 그해 12월에 나왔으니 유고시집이 되었네요.
그런데요, 이 시집 속에 '달개비꽃'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시집 제목이 된 이 시는 시집의 맨 마지막 페이지에 실려 있네요. 시인님이 쓰러지기 전 시집 편집을 다 해두었다고 했으니 이 같은 시의 배치는 시인님의 의중이겠습니다. 그만큼 시인님 스스로 '달개비꽃'이라는 시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눈짓이네요.
이 눈짓의 의미는 무얼까요? 이 짧은 시를 통해 무엇을 우리에게 말하고 싶었을까요? 그것은 시인님의 시력을 통해 깨닫게 된 어떤 삶의 비의(秘義)가 아닐까요?
달개비꽃
자신의 생애 마지막 시집으로 예감했을지도 모를 이번 시집에 '달개비꽃'이라는 제목을 붙인 걸 보면 아마도 김춘수 시인님이 가장 좋아했던 풀꽃이 달개비꽃이 아니었을까 짐작해 봅니다.
하늘처럼 포르스름한 꽃잎 두장은 신령스러운 푸른 나비 같고요, 그 아래로 길게 앞으로 뻗어있는 두 가닥의 수술은 코끼리의 엄니(상아;象牙) 같기도 합니다. 길가에 흔하게 피어 있지만 바쁜 사람들 눈에 잘 안 보이는 신묘한 풀꽃.
시로 가는 길은 여러 갈래이겠지요? ‘독서목욕’의 오솔길을 따라 시 속으로 갑니다.
울고 가는 저 기러기는 / 알리라, / 하늘 위에 하늘이 있다
이 구절에서 빗방울이네는 ‘알리라’에 눈길이 머무네요. 하늘 높이 나는 기러기는 ‘하늘 위에 하늘이 있다’는 것을 안다는 말인데, 시인님도 그 사실을 알고 있다는 말이네요. 그곳은 과연 어떤 곳을 말하는 걸까요?
울지 않는 저 콩새는 알리라, / 누가 보냈을까, / 한밤에 숨어서 앙금앙금 / 눈 뜨는,
- 김춘수 시 '달개비꽃' 중에서
달개비는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꽃잎을 접는 꽃입니다. 그러니 한밤에 숨어서 ‘앙금앙금’ 온다는 거네요. 이 부사는 작은 동작으로 느리게 걷거나 기는 모양을 말합니다. 그렇게 신비롭게 오는 포르스름한 꽃잎. 그걸 누가 보냈을까요? 사람 눈에 잘 띄지 않는 콩새는 안다고 하네요. 우리는 모르는데요. 시인님과 콩새는 아는 모양이네요.
3. ‘언제 어디서나 누군가 보고 있다’
김춘수 시인님이 참으로 좋아했던 릴케 시인님의 전언대로 ‘해석된 세계’에 사는 우리는 모르고 있는 것이 너무 많은 것 같습니다. 해석되지 않은 세계 말입니다. 인간의 언어로, 인간의 사유로는 도저히 닿을 수 없는 것들 말입니다. 이를테면 하늘 위에 하늘이 있다는 것, 그리고 달개비를 보낸 이에 대한 것. 보통 이런 것에 대해 잘 생각하지도 않지만요.
시인님은 이런 것들에 대해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 인간은 모르지만 기러기나 콩새는 알고 있다고 하네요. 시인님의 이런 생각은 우리를 매우 의아하게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편안하게 하네요. 우리는 우리의 오감을 통과하는 것밖에 알지 못하므로 하늘 빛깔의 달개비꽃을 어디에서 누가 보내주는지 도무지 알지 못합니다. 그런데 기러기와 콩새는 하늘 위의 하늘에서 한밤에 조용히 보내준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하니, 그런 세계가 있다고 하니 얼마나 신묘한지요?
때로는 한 발짝 앞이 캄캄한 어둠으로 보이면서도 끝없이 펼쳐진 하늘 한 자락이 더없이 가깝게 느껴지기도 한다.
저승이란 바로 거긴가 싶어지는 때가 있다.
한 발짝 건너면 저승이다.
그러니까 한 발짝 저쪽은 캄캄한 어둠인데 웬일일까?
저승이 때로는 밝게 갠 가을 하늘이 되어 내 곁에 다가서기도 한다.
우리가 죽으면 가는 곳이 그렇게 두렵고 정답다.
- 김춘수 대표 에세이 「왜 나는 시인인가」(남진우 엮음, 현대문학) 중에서
시 '달개비꽃'에서 말한 '하늘 위의 하늘'은 시인님이 위의 수필에서 두렵고 정다운 곳이라고 한 '저승'일까요? '한밤에 숨어서 앙금앙금' 달개비처럼 오는 것은 죽음일까요? 죽음을 앞둔 시인님의 감성이 지극하게 응결된 시가 '달개비꽃'인 것만 같습니다. 이 깊은 슬픔을 어떡해야 할까요?
왜 나는 시인인가?
존재하는 것의 슬픔을 깊이 느끼고 이해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나는 시인이다.
그중에서도 사람이란 더없이 슬픈 존재다.
사람으로 태어난 슬픔을 아름다움으로 승화시켜야 한다고 깊이깊이 느끼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는 시인이다.
- 김춘수 대표 에세이 「왜 나는 시인인가」(남진우 엮음, 현대문학) 중에서
김춘수 시인님은 슬픔을 아름다움으로 승화시켜야 한다고 느끼기 때문에, 끊임없이 아름다움을 추구하기 때문에 시인이라고 말합니다. '하늘 위의 하늘이 있다'는 것을 안다면 슬픔 속에 주저앉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인님의 전언대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일이 오늘을 사는 의미가 될 것입니다.
언제나 투명하고 순수한 시혼으로 창작열을 불태웠던 시인님은 그런 '하늘 위의 하늘'에서 '언제 어디서나 누군가 보고 있다’고 말합니다. 이를 어떡해야겠는지요?
억울하면 먼저 수신을 하라.
언제나 어디서나 누군가 보고 있다.
이 감각이 마비되면 될수록 사이비는 논리의 이름으로 어떤 진실을 덮어버릴 것이다.
- 김춘수 대표 에세이 「왜 나는 시인인가」(남진우 엮음, 현대문학) 중에서
글 읽고 마음 목욕하는 블로그 '독서목욕'에서 김춘수 시인님의 시 '꽃'을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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