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삼 시인님의 시 '북치는 소년'을 만납니다. 이 시는 우리에게 이렇게 묻고 있는 것만 같네요. '지금 잘 살고 있습니까?' 쿵! 쿵!··· 시인님이 치는 북소리에 마음을 맑히며 독서목욕을 하십시다.
1. 김종삼 시 '북치는 소년' 읽기
북치는 소년
- 김종삼
내용 없는 아름다움처럼
가난한 아희에게 온
서양 나라에서 온
아름다운 크리스마스 카드처럼
어린 양(羊)들의 등성이에 반짝이는
진눈깨비처럼
- 김종삼 시집 「십이음계(十二音階)」(삼애사, 1969) 중에서
김종삼 시인님(1921~1984년)은 황해도 은율 출신으로 1947년 가족과 함께 월남해 극단 '극예술협회' 연출부 음악 담당, 국방부 정훈국 방송과 음악담당 등으로 일했고, 1963년부터 동아방송에서 음악 연출을 담당하다 1976년 퇴임했습니다.
1953년 「신세계」에 '원정(園丁)'을 발표한 이래 김광림 전봉건 님과 3인 시집 「전쟁과 음악과 희망과」(1957년) 등을, 1969년 첫 시집 「십이음계(十二音階)」를 냈습니다. 「시인학교」(1977년),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1982년) 등 3권의 개인시집을, 「북치는 소년」(1979년), 「평화롭게」(1984년) 등의 2권의 시선집을 발간했습니다. 제2회 현대시학 작품상, 한국시인협회상, 대한민국문학상 등을 수상했습니다.
2. 북치는 소년처럼!
김종삼 시인님의 시 '북치는 소년'은요, '우리 현대시가 내장한 최고의 감동 중 하나'(「김종삼 전집」, 권명옥 해설, 나남출판)로 꼽힙니다. 그대는 어떻게 읽으셨는지요? 좀 어렵다고요?
북치는 소년!
빗방울이네에겐 시인님이 제목을 통해 ‘북치는 소년처럼 살아가리!’라고 말하는 듯 들리네요. 이 시는요, 윤동주 시인님의 '서시'나 서정주 시인님 '자화상' 같은 서시의 성격을 띠는 것으로 보입니다. 김종삼 시인님 자신의 '시의 길' '삶의 길'을 함축해 놓은 시 말입니다.
시인님의 첫 시집 「십이음계(十二音階)」(1969년)를 찾아보니 시 ‘북치는 소년’은 시집 속의 여섯번째 시로 실려 있네요. 그러다 시인님이 두 번째 시집 「시인학교」(1977년)를 낸 뒤 1979년 시선집을 내면서 책 제목을 아예 「북치는 소년」으로 정합니다. 그러니까 시간이 지날수록 시 '북치는 소년'이 시인님을 대표하는 시로 떠오른 양상입니다. '북치는 소년'은 어떤 보석을 품고 있을까요?
우리 모두 좋아하는 크리스마스 캐럴 '북치는 소년(The little drummer boy)'에서, 가난한 소년은 이렇게 말합니다.
Shall I play for you, pa rum pum pum pum, On my drum?
아기예수님, 제가 당신께 연주를 해드려도 될까요? 제 드럼으로 말이에요.
시인님은 '북치는 소년'이 되고 싶었을까요? 아기예수가 태어나 다른 사람들이 선물을 들고 축하하러 갈 때, 가난해서 선물을 사지 못하고, 선물 대신 북을 쳐주는 가난하고 가난한 '북치는 소년'이 되고 싶었을까요?
그(김종삼 시인님)가 온몸으로 빠져들었던 것은 술과 서양 고전음악을 듣는 일이었다.
- 「김종삼 전집」(권명옥 엮음/해설, 나남출판) 중에서
평생 음악과 더불어 산 시인님이네요. 그래서 시인님은 세상 일일랑 한 발짝 떨어진 듯 살다가 가끔 때가 되면 쿵쿵 세상에 박자를 맞춰주는 '북치는 소년'이 되고 싶었을까요? 그러면서 자주 박자도 틀려서 악단 선생님께 혼나기도 하는 그런 개구쟁이 소년이 되고 싶었을까요? 어른 말고요. 다 커버린 어른 말고요. 늘 천진난만한 소년, '북치는 소년' 말이에요.
3. ‘아름다움 없는 내용’과 ‘내용 없는 아름다움’
내용 없는 아름다움처럼
- 김종삼 시 '북치는 소년' 중에서
지금 '아름다움 없는 내용'이 도처에 너무 넘쳐나는 건 아닌지요? 사람들은 불꽃같은 욕망을 쫓아다니는 나방처럼 사는 것만 같습니다. 세상은 얼마나 많은 물질로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는지요? 그 속에서 정신은 바스락거리고 육신은 물질에 가득 차 부풀어 오르는 것만 같습니다.
이렇게 '아름다움 없는 내용'이 가득한 세상에서 '내용 없는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시인님이 외로워 보이기도 하네요.
시인님이 추구하는 아름다움은 정신적인 아름다움인 것 같습니다. 세속에 물들지 않는 순수한 삶을 추구하는 사람의 눈에만 보이는 아름다움 말입니다. 삶의 신성함 같은 것 말입니다. 시인님은 물질적인 아름다움이 아니라 정신적인 아름다움이야말로 세상을 지탱하게 하는 '바른 힘'이라고 믿는 것만 같습니다.
가난한 아희에게 온 / 서양 나라에서 온 / 아름다운 크리스마스 카드처럼
- 김종삼 시 '북치는 소년' 중에서
어렸던 빗방울이네 처음 크리스마스 카드를 받았을 때, 얼마나 신기했던지요. 친구가 보내준 카드였는데, 처음에는 쿵쾅거리던 가슴 며칠 내내 스멀거렸지요. 그 속에 그려진 그림은 얼마나 환상적이던지요. 세상이 온통 꿈속 같았던 시간이었어요. 카드를 상자 속 깊이깊이 넣어두었지요. 그 행복한 상상 날아가버릴까봐요.
시인님은 삶이란 이렇게 크리스마스 카드 한 장 같은 것이면 족하다고 말하네요. 삶이란 거대한 성공을 이루어야하는 시간만이 아니라고요. 가난한 이의 외로움을 잠시나마 눌러주고, 멀고 낯선 세계를 머릿속에 그리며 꿈꾸게 하는 카드 한 장 같은 것이면 된다고요.
어린 양(羊)들의 등성이에 반짝이는 / 진눈깨비처럼
- 김종삼 시 '북치는 소년' 중에서
빗방울이네도 어린 양들의 등마루에서 반짝이며 녹는 진눈깨비가 되고 싶습니다. 콩닥거리는 어린 양들의 숨결 속으로 천천히 스미고 싶습니다. 추위에 떠는 어린 양들을 따뜻한 집으로 데려가줄 진눈깨비가 되고 싶습니다.
The ox and lamb kept time, pa rum pum pum pum
I played my best for him, pa rum pum pum pum
- 'The little drummer boy' 중에서
가난한 북치는 소년이 아기예수님 앞에서 정성을 다해 북을 칠 때 송아지와 어린 양도 장단을 맞추어주었다고 하네요. 이 얼마나 정다운지요?
Then He smiled at me, pa rum pum pum pum
Me and my drum
- 'The little drummer boy' 중에서
오, 아기예수님이 가난한 북치는 소년을 보며 웃어주셨네요. pa rum pum pum pum! 손에 쥘 것 없는 그 북소리 선물에 행복해하셨네요. '내용 없는 아름다움'에 웃어주셨네요. 소년은 얼마나 행복했을까요?
'북치는 소년'이 되리라 했던 '김종삼 소년'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요?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천상병 시인님이 「현대문학」(1985.2)에 게재한 추모시입니다.
종삼 형님 가시다 / 그렇게도 친했고 / 늘 형님 형님으로 부르던 / 종삼 형이 드디어 가시다
언제나 고전음악을 좋아했고 / 사랑한 종삼 형은 / 너무나 선량하고 순진하던 / 우리의 종삼 형이 천국에 가셨다
내가 늘 신세 졌고 / 가르침을 주시던 종삼 형 / 참으로 다감하고 다정했던 종삼 형
말없던 그 침묵의 사나이 / 언제 내가 죽어서 다시 만나랴?
- 천상병 '김종삼 씨 가시다' 전문(「김종삼의 시를 찾아서」, 이숭원, 태학사) 중에서
누구라도 사후에 이만한 추모라면, 마음 가난히 북 칠 만하지요? 다른 가난한, 텅 빈 마음에 둥둥 북소리 채워주며 살 만하지요? 우리, 북을 칠 준비가 되었나요? 아무 것도 없는 빈 손의 소년처럼요.
글 읽고 마음 목욕하는 블로그 '독서목욕'에서 삶의 비의를 알려주는 시 한 편 더 읽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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