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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신유 시 한가하다 읽기

by 빗방울이네 2023. 7.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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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신유 시인님의 시 '한가하다'를 만납니다. 시인님은 재주 없는 일이 다행이라고 하네요. 어떻게 된 일일까요? 시인님이 파 놓은 사유의 우물물로 마음을 맑히며 함께 독서목욕을 하십시다.
 

1. 홍신유 시 '한가하다' 읽기

 
한가하다

- 홍신유

담 모퉁이 회화나무는
땅바닥 여기저기 꽃을 뿌리고
억세던 구름장이 걷혀
하늘도 모처럼 활짝 갰다.
태평성대 사람인 양
비스듬히 누워 보니
남쪽 하늘 별 사이로
달도 함께 배회한다.

하늘 밖이라 끝없이
동해바다 넘실댄다.
이 세상 그 어디에
서울이란 데가 있나?
재주 있는 사람치고
바쁘지 않은 자 있을까?
다행히도 재주 없어
나만 홀로 한가롭다.

閒中 效鍾伯敬江行俳體 한중 효종백경강행배체
墻角槐花灑地斑 장각괴화쇄지반 晴空一解駁雲頑 청공일해박운완
人方偃臥羲皇上 인방언화희황상 月亦徘徊斗牛間 월역배회두우간
天外無邊東海水 천외무변동해수 人間何處漢陽山 인간하처한양산
有才豈有不忙客 유재기유불망객 惟喜無才我獨閒 유희무재아독한


- 「다행히도 재주 없어 나만 홀로 한가롭다」(안대회 지음, 산처럼) 중에서


위 시의 지은이인 홍신유 시인님(洪愼猷, 1724~?)은 조선 영조 때 중인 출신 문관으로 호는 백화자(白華子)로 불립니다. 일찍이 문과에 급제하여 도적(圖籍, 또는 도서)의 수장(收藏)과 출납 관리를 하는 성균관의 정 6품 관직인 전적(典籍)을 역임했습니다.
 
위 책의 지은이인 안대회 작가님은 성균관대학교 한문학과 교수로 고전의 가치와 의미를 독자들에게 전하는 연구와 저술활동을 활발히 해오고 있습니다. 저서로는 「궁극의 시학」 「문장의 품격」 「벽광나치오」 「담바고 문화사」 「내 생애 첫 번째 시」 등이 있고, 번역서로는 「한국산문선」(공역) 「완역정본 택리지」(공역) 「소화시평」 「완역정본 북학의」 등이 있습니다. 제34회 두계학술상과 제16회 지훈국학상을 수상했습니다.


2. 재주 없음이 다행이라고요?


 「다행히도 재주 없어 나만 홀로 한가롭다」라는 책은 성균관대 안대회 교수님이 152편의 한시를 골라 각각의 시에 해설을 단 책입니다. 교수님이 뽑은, 고려시대부터 20세기 현대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시인들이 쓴 아름답고 빼어난 작품들입니다.
 
그중에서 오늘은 이 책의 제목이 되기도 한 홍신유 시인님의 시 '한가하다'를 만납니다.
 
다행히도 재주 없어 나만 홀로 한가롭다

- 홍신유 시 '한가하다' 중에서


빗방울이네가 처음 이 책의 제목을 보았을 때 내심 놀랐답니다. '다행히도 재주 없어 나만 홀로 한가롭다'니요? 보통은 재주가 많기를 원하며 재주를 갈고닦고 그 재주(스펙)를 바탕으로 세상의 더 빛나고 높은 길로 나아가기 위해 저마다 애면글면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다행히도 재주 없어 나만 홀로 한가롭다' 하니, 참으로 무슨 일인지요?
 
이 책을 지은 안대회 교수님의 해설에 따르면, 홍신유 시인님은 '부산에 내려와 몇 년 동안 머물렀다'라고 합니다. 부산 광안리나 송정이나 죽성 또는 일광 해변쯤 되었을까요? 
 
하늘 밖이라 끝없이 / 동해바다 넘실댄다
이 세상 그 어디에 / 서울이란 데가 있나

- 홍신유 시 '한가하다' 중에서

 
동해 바닷물이 하늘 너머까지 펼쳐져 있다고 하네요. 치열한 생존경쟁이 펼쳐지는 서울이 진정 이 땅에 있단 말인가? 시인님 스스로 그렇게 의심이 들 정도로 평온한 시간을 보내고 있네요. 내가 무슨 영화를 보려고, 삶에서 무엇을 찾으려고 그 권모술수의 진흙탕에서 뒹굴었단 말인가!
 
태평성대 사람인 양 / 비스듬히 누워 보니
남쪽 하늘 별 사이로 / 달도 함께 배회한다

- 홍신유 시 '한가하다' 중에서

 
보름밤이었을까요? 비스듬히 누워 밤하늘을 보니 별 사이로 달이 지나간다고 합니다. 시인님은 서울에서 멀리 떠나와 부산에서 한가로움을 만끽하고 있네요.
 

홍신유시한가하다중에서
홍신유 시 '한가하다' 중에서.

 

 

3. 재주 없다, 한가롭다, 다행이다

 
재주 있는 사람치고 / 바쁘지 않은 자 있을까?
다행히도 재주 없어 / 나만 홀로 한가롭다

- 홍신유 시 '한가하다' 중에서

 
이 구절이 절창입니다. 임금 가까이 벼슬을 하던 시인님은  어떤 일로 하늘 밖 멀리, 한양에서 천리길인 부산으로 오게 되었던 걸까요? 정말 재주가 없어서 밀려난 걸까요? 그보다는 어떤 일로 이렇게 멀리 오게되고 보니, 그동안 재주 때문에 이런 한가로움을 느끼지 못했다는 걸 깨닫게된 것 같네요. '재주 있는 사람치고 바쁘지 않은 자 있을까?'에서는 냉소적 분위기가 느껴지기도 하네요. 여기서의 '재주'에서는 능력보다 처세술이라는 뉘앙스가 느껴집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다행히도 재주 없어 나만 홀로 한가롭다'고요. 재주 없으면 한가롭다고 하네요. 그것이 다행(!)이라고 합니다.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시인님! 그것은 빗방울이네도 지향하는 바입니다.
 
삶의 어느 모퉁이쯤 와서는 정말 있는 재주도 없는 척 뒤로 물러설 줄도 알아야겠네요. 그래야 다른 사람들도 도전해 보고 경험해 보는 기회를 가질 테니까요. 그래야 '나'도 나의 삶에 집중하며 살 수 있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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