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이 보살이다'라는 문장을 만납니다. 입이 왜 보살일까요? 우리의 정신은 신체(입)를 통제할 수 있을까요? '입이 보살이다'라는 문장의 결을 따라가며 마음을 맑히며 독서목욕을 하십시다.
1. 이런 생활신조 어떤가요?
지난 토요일이었어요. 빗방울이네는 단골 미용실 팔걸이의자에 앉아 머리를 맡기고 있었지요. 미용실 사장님은 개와 고양이와 야구를 좋아합니다. 구조된 길양이는 미용실 안에서 손님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죠. 개와 고양이와 야구 이야기 끝에 불현듯 이 문장이 나왔지요.
입이 보살이다!
빗방울이네 머리를 깎아주던 미용실 사장님이 한 말입니다. 미용실 거울 앞에 처세술 관련 책이 있어, "어려운 책 읽으시네요."라고 했더니, 미용실 사장님이 그 책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가 이렇게 말한 겁니다.
마음 다스리며 잘 살아보려고
처세술에 대한 책도 읽고 강연도 가보고 했는데,
우리 '속담'만큼 유익한 거 없더라고요.
예를 들어 '일체유심조'에 대해 설명을 듣고 이를 잘 이해한다 해도
금방 잊어먹게 돼요.
그래서 행동 지침 같은 게 있어야 하는데
그게 바로 '입이 보살이다.'였지요.
그렇네요. 미용실 사장님의 요즘 생활신조가 '입이 보살이다.'이네요.
실천해 본 결과 효과가 있었을까요? 아주 만족한다고 합니다. '입이 보살이니 항상 말조심하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실천했더니 생활 속에서 크고 작은 실수가 줄어들고, 마음이 편해지고 대인관계도 좋아지는 것을 느낀다고 하네요.
2. 입이 왜 보살일까요?
입이 보살이다!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는 이 문장의 뜻은 '말을 한 대로 이루어지니 말을 조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함부로 한 말이 현실로 나타날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뜻요. 그런데 왜 '보살'이 이 문장에 끼어 있을까요? 이는 '예지력'과 관련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지금은 불가에서 여성 신도를 부르는 호칭으로 통하고 있지만, 원래 '보살'은 위로는 보리(깨달음)를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제도하는 대승불교의 이상적 수행자상을 말합니다. 고승을 높여 부르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보살은 지혜가 충만한 선지자를 의미하네요. 지금의 행위가 미래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지를 아는 연기적 관점의 존재 말입니다.
그런데요, '입이 보살이다'라는 문장에는 부정적인 면이 느껴지네요. 보살의 예지력은 부정적인 것이 아닌데 말입니다. 왜 그럴까? 하고 고민하고 있는데 빗방울이네 짝지인 풀잎이 옆에 있다가 이렇게 거드네요.
(풀잎) "그런 상황에서 하게 되는 말들이 모두 부정적인 걱정과 염려의 말이어서 그런 게 아닐까요?"
(빗방울이네) "???"
(풀잎) "이럴 테면, '이번 중간고사 기간에 나 감기 걸리면 어쩌지?' 하고 누군가 쓸데없는 걱정을 하면, 옆에서 '입이 보살이야, 그러다 진짜로 감기 걸린다' 하고 말하죠."
(빗방울이네) "..."
(풀잎) "그런데 보통 '이번 중간고사 기간에 나 감기 걸리지 않을 거야!' 하고 긍정적인 다짐 같은 건 하지 않는다는 거죠."
(빗방울이네) "!!!"
정말 동의합니다, 짝지 풀잎님! 속이 시원하네요. 고맙습니다!
오늘 빗속에서 우산이 뒤집어지면 어쩌지?
계단 내려올 때 넘어질라!
식당에서 새 신발 잃어버리는 거 아닐까?
저 돌길을 가다가 넘어지기라도 하면?
이처럼 대부분 화자의 입이 촉새같이 가벼워서 화를 부를 수 있는 불길한 말들이 대부분이네요.
아무튼 입으로 그런 걱정/염려를 밖으로 말로 내뱉는 순간, 말이 원인(씨앗)이 되어 그 일이 정말 일어날 수도 있다는 경고이니, 입단속 잘해야겠네요.
3. '입'을 제어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그런데요, 그대의 입을 스스로 '단속/제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요? 자신이 말하고 싶은 것만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요? 또는, 말하다가 지금쯤 말을 끊어야지 한다고 끊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요? 말에 대한 말이 나온 김에 한 걸음 더 들어갑니다.
말은 상상의 일부이므로, 즉, 우리는 신체의 어떤 상태에 의해 기억 속에서의 말들이 되는 대로 합성됨에 따라 많은 개념들을 만들어내므로, 말도 우리가 매우 조심하지 않으면, 상상과 마찬가지로, 많고도 중대한 오류들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 「에티카」(스피노자 지음, 황태연 옮김, 비홍출판사) 중에서
맙소사, 매우 조심하지 않으면 우리 머릿속에 든 '상상'이 주르르 밖으로 흘러나올 수 있다고 스피노자는 우리에게 경고하네요. 만약 그대가 상상하는 것이 제어가 되지 않고 입을 통해 흘러나온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네요.
만일 침묵하는 것이나 말하는 것이 똑같이 인간의 능력 안에 있다면, 인간사는 훨씬 더 만족스럽게 이루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경험은 혀를 억제하는 것이나 욕망을 제어하는 것만큼 인간의 능력 범위를 벗어나는 것도 없다는 것을 풍부한 사례로써 보여준다.
- 위 같은 책 중에서
'혀'라는 신체를 억제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다고 하네요. 우리는 신체를 정신의 하위에 두는 습관이 있어서 언제나 나의 정신으로 신체를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어떤가요? 스피노자의 말처럼, 화가 났을 때 욕이 튀어나오는 것을 억제할 수 있을까요? 한참 말하고 있는데 이것까지는 말하지 말아야지 한다고 그 말하기가 멈춰지던가요? 거짓말은 얼마나 제 멋대로 입 밖으로 자동 발사되던가요? 정신의 통제를 벗어나서 말입니다.
상황이 이 지경이니, '입이 보살이다'라는 문장을 항상 말풍선처럼 들고 다니며 입을 조심하는 일에 젖 먹던 힘까지 내야 될 것만 같습니다. 오늘 이 이야기를 제가 평소 존경하는 분에게 했더니, 동양철학을 전공하신 이 분은 이렇게 조언하시네요.
'입이 보살이다'를 생활신조로 삼는 사람의 경우
이 문장을 떠올릴 때마다, 이 사람의 뇌는 말을 적게 하라고 명령할 것입니다.
말을 적게 하게 되면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게 됩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말을 잘 들어주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그러면 쌍방 모두 행복해집니다.
글 읽고 마음 목욕하는 블로그 '독서목욕'에서 삶의 팁을 주는 글 한 편 더 읽어 보세요.
'읽고 쓰고 스미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성철스님 시봉 이야기 - 어린이의 친구 (49) | 2023.07.02 |
---|---|
박팔양 시 그 누가 저 시냇가에서 (48) | 2023.06.30 |
박두진 시 묘지송 읽기 (44) | 2023.06.28 |
박재삼 시 울음이 타는 가을 강 읽기 (48) | 2023.06.27 |
이육사 시 청포도 읽기 (46) | 2023.06.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