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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고 스미기

박팔양 시 그 누가 저 시냇가에서

by 빗방울이네 2023. 6.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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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팔양 시인님의 시 '그 누가 저 시냇가에서'를 만납니다. 사랑에는 왜 슬픔이 깔려있을까요? 시인님이 건네주는 슬픔의 힘에 마음을 맑히며 독서목욕을 하십시다.


1. 박팔양 시 '그 누가 저 시냇가에서' 읽기


그 누가 저 시냇가에서

- 박팔양

그 누가 저 시냇가에서
저렇게 쓸쓸한 휫파람을 붑니까?
그도 아마 나와 같이 근심이 많아
밤하늘 우러러보며 슬프게 부나 봅니다.

그리고 또 저 언덕 우에서는
누가 저렇게 슬픈 노래를 부릅니까?
그도 아마 나와 같이 이 밤이 외로워
이 별 많은 밤이 외로워 우나 봅니다.

인생은 진실로 영원한 슬픔의 나그내
포도빛 어둠이 고요히 고요히 밀려와서
별들이 총총, 하늘 우에 반짝일 때면
의로운 사람들의 슬픈 노래 여기저기서 들립니다.


- 「박팔양 시선」(추선진 엮음, 지식을만드는지식) 중에서


박팔양 시인님(필명 여수, 1905~1988)은 경기도 수원 출신으로 「요람」 동인으로 활동했고 1923년 '신(神)의 주(酒)'로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하여 등단(작가명 박승만)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1925년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KAPF)에 가입했고, 그 후 그 대척점에 있던 구인회에 가담하는 등 현실과 서정이 조화된 시 창작을 지향했습니다. 동아일보 기자, 중앙일보 사회부장, 만주 만선일보 사회부장 겸 학예부장 등으로 활동했습니다. 해방 이후 신의주에서 평북신보와 바른말신문사 편집부장 등을 역임했고, 김일성종합대학교 조선어학부 교원과 신문학강좌장 등을 맡았습니다. 1940년 첫 시집인 「여수시초」, 1947년 「박팔양 시선집」, 1956년 「박팔양 선집」 등을 발간했습니다. 


2. '자비'라는 단어에 슬픔이 있는 이유


'자비'라는 단어 속에 '슬픔'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놀란 적이 있습니다. 우리가 '자비를 베푼다', 또는 '자비의 손길'이라는 말을 자주 듣고 하게 되는데, 그 속에 '슬픔'이 있을 줄 생각하지도 못했습니다. '자비'는 한자로 '慈悲'입니다. 사랑 자(慈), 슬플 비(悲)요.

'자비를 베푼다'라고 했을 때, 사랑을 베푼다는 것은 이해되지만, 슬픔을 그렇게 한다는 건 좀 이상하지 않은지요? '자비의 손길'이라고 했을 때 '사랑의 손길'이면 되는데, 그 손길이 '슬픔의 손길'이라면 되겠는지요? 무언가 깊은 뜻이 있을 것만 같네요.

그래서 더 파봅니다. 자비의 '자慈'는 실타래 더미의 모습()에서 '무성하다'는 뜻이 나왔고, 아래의 '心'이 더해져 '무성한 마음', 즉 모든 걸 다 수용하고 베푸는 넉넉한 마음(사랑)을 말합니다. '비悲'는 '마음(心)이 영 아니다(非)'는 의미에서 슬픈 감정을 표현하는 글자로 쓰입니다. 그러므로 자비(慈悲)는 사랑하는 감정과 슬퍼하는 감정을 함께 가지는 것을 말하네요.

상대방을 깊이 사랑하고 가엾게 여기는 것이 바로 자비네요. 상대방의 처지를 슬퍼할 줄 아는 것이 자비라는 뜻으로 새깁니다. 자비는 참 특별한 단어네요.

자, 슬픔에 대한 이런 인식을 지니고 오늘의 시로 들어갑시다. 이 시의 하이라이트는 이 구절입니다.

인생은 진실로 영원한 슬픔의 나그내
- 박팔양 시 '그 누가 저 시냇가에서' 중에서

'나그내'는 '나그네'의 옛말입니다. 이 구절에 슬픔이 등장하네요. 화자는 '인생은 진실로 영원한 슬픔의 나그네'라고 합니다. 우리는 슬픔의 덩어리를 숙명처럼 짊어지고 멀고 먼 사막을 건너가고 있는 낙타인 것만 같습니다. 이 구절에는 어떤 의미가 들어 있을까요.

박팔야시그누가그시냇가에서중에서
박팔양 시 '그 누가 저 시냇가에서' 중에서.

 

 


3. 진실로 인생을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은 슬프다


백석 시인님이 이 시가 든 박팔양 시집(「여수시초」)의 서평형식의 수필을 썼다는 사실이 이채롭습니다. '시인들의 시인'으로 꼽히는 백석 시인님이 다른 시인의 시집에 대해 이러저러하다는 감상을 쓴 수필은 이 글이 유일합니다. 과연 어떤 내용일까요?
 
높은 시름이 있고 높은 슬픔이 있는 혼은 복된 것이 아니겠습니까?
진실로 인생을 사랑하고 생명을 아끼는 마음이라면
어떻게 슬프고 시름차지 아니하겠습니까.

- 「백석 문학전집 2」(김문주 등 엮음, 서정시학)의 백석 시인 글 '슬픔과 진실' 중에서 

 
백석 시인님이 오늘 우리가 읽고 있는 박팔양 시인님 시 '그 누가 저 시냇가에서'를 언급하며 쓴 글입니다. 「만선일보」 1940년 5월 9일 자에 '슬픔과 진실'이라는 제목으로 게재됐습니다.
 
'인생은 진실로 영원한 슬픔의 나그내'라고 한 박팔양 시인님을 '높은 시름이 있고 높은 슬픔이 있는' 복된 혼이라고 백석 시인님이 말하네요.

 

이어서 '슬픔의 이유'가 나옵니다. 진실로 인생을 사랑하고 생명을 아끼는 마음이기에 슬프다고 하네요. 우리가 앞에서 읽었던 '자비(慈悲)'가 떠오르네요. 슬픔이 있는 사람, 슬퍼할 줄 아는 혼을 가진 이는 복된 사람, 자비로운 사람이라고 새겨봅니다. 그이가 바로 박팔량 시인님이라고 백석 시인님이 말하고 있네요.
 
의로운 사람들의 슬픈 노래 여기저기서 들립니다

- 박팔양 시 ' 그 누가 저 시냇가에서' 중에서


박팔양 시인님은 일제강점기를 살았습니다. 진실로 인생을 사랑하고 생명을 아끼고 민족의 평온을 위했기에 가혹한 식민지 수탈의 현실 속에서 느꼈을 시인님의 절망과 고뇌를 생각해 봅니다. 그러나 슬픔 속의 시인님은 결코 좌절하지 않네요. '의로운 사람들'이 여기저기 있다고 하네요. 가엾이 여겨 다가가 어루만지고 안아주며 상처를 치유하려는 슬픈 의인들 말입니다. 시인님도 그중 한 사람이겠지요.
 
시인은 슬픈 사람입니다.
세상의 온갖 슬프지 않은 것에 슬퍼할 줄 아는 혼입니다.

- 「백석 문학전집 2」(김문주 등 엮음, 서정시학)의 백석 시인 글 '슬픔과 진실' 중에서 

 
왜 슬플까요? 세상을, 세상 온갖 것을 사랑하니까요. 진실로 진실로 사랑하게 되면, 그 가슴 속 깊은 바탕에서 올라오는 감정은 기쁨보다는 슬픔 아니겠는지요. 

그대는 요즘 무엇을 사랑하고서 종래 슬퍼하고 있는지요?
 
글 읽고 마음 목욕하는 블로그 '독서목욕'에서 김현승 시인님의 시 '슬픔'을 읽고 슬픔 샤워를 해보세요.

 

김현승 시 슬픔 읽기

김현승 시인님의 시 '슬픔' 속으로 빠져봅니다. 이 시는 우리에게 슬픔이 어떤 것인지를 깊이 생각하게 해주는 금강석 같은 시입니다. 그 환한 빛으로 저마다의 마음을 맑히고 밝히며 독서 목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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