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병 시인님의 시 '아기 욱진'을 만납니다. 아이 같은 시인님이 쓴 아이처럼 순진무구한 시입니다. 시를 읽으며 시인님이 퍼올려주는 동심의 우물물로 저마다 마음을 맑히는 독서목욕을 하십시다.
1. 천상병 시 '아기 욱진' 읽기
아기 욱진
- 천상병(1930~1993, 일본 출생, 창원 성장)
시화전 관계로 부산에 내려왔다
다정한 친구 정용해 씨 집에 머무는데
정용해 씨의 손자 욱진에게
그만 미칠 지경으로 반해버렸다.
만 이 년 보름 된 욱진은
어른을 공경할 줄 알고
축구도 야구도 할 줄 알고
텔레비 영향인지 못하는 것이 없다.
할머니보고
할아버지 탯지하라고 조르는 아이
나는 그만 반해 버렸다.
부산은 지세가 좋아서
이런 아이가 태어나는가 보다.
- 「천상병 전집 - 시」(평민사, 1996년 1쇄, 2007년 12쇄) 중에서
2. '그만 미칠 지경으로 반해버렸다'
1986년 10월 10일부터 일주일 동안 부산 에덴공원 안에 있는 솔바람 야외음악당에서 천상병 시인님의 야외 시화전이 열렸습니다. 그때 경기도 의정부에 살던 천상병 시인님은 5년 만에 부산에 내려왔고, 온 걸음에 부산일보사에 들렀습니다.
당시 부산일보 기사(1986.10.13)를 읽어보니, 천상병 시인님이 "이거 문화면에 좀 실어주시오"하면서 불쑥 던지고 원고료를 미리 달라고 했던 시가 있습니다. 바로 '아기 욱진'입니다. 부산일보는 이 기사 속에 이 시를 소개해주었네요. 원고료도 미리 드렸겠지요?
시화전 관계로 부산에 내려왔다 / 다정한 친구 정용해 씨 집에 머무는데
- 천상병 시 '아기 욱진' 중에서
당시 시화전에는 천상병 시인님의 시에 부산의 화가들이 그림을 그린 시화 25점과 시인님의 시를 새긴 붓통 20여 점이 전시됐습니다.
그런데 정용해 님은 누구일까요?
정용해와 천상병은 6.25 전란 중에 서울의 한 음악실에서 처음 만나 우정의 싹을 틔웠다.
정용해는 "대한민국 시인 가운데 천상병만큼 음악을 깊이 아는 시인이 없기 때문에 천상병과 친하게 되었다."라고 했고,
천상병은 "대한민국 군인 가운데 정용해만큼 음악을 깊이 아는 군인이 없기 때문에 정용해와 친하게 되었다."라고 말했다.
- 「샘이 깊은 물」에 실린 최화수의 '시인이 버린 시인'(1986.12) 중에서
국제신문 기자 출신인 최화수 님이 쓴 위의 글에 따르면, 이 시화전은 부산을 떠난 천상병 시인님을 위한 고별 시화전이었다고 합니다. 이 시화전을 연 주역이 바로 시인이자 음악인인 해병대 출신 정용해 님이고요.
음악감상실에서 브람스 교향곡 4번을 들으며 많이 울기도 했다는 천상병 시인님, 그리고 어느 곡이든 도입부만 들으면 곡명과 작곡가, 그리고 곡의 사연까지 줄줄이 꿰던 '음악 백과사전' 정용해 시인님. 두 분은 음악과 문학이 맺어준 '솔메이트'였네요.
정용해 씨의 손자 욱진에게 / 그만 미칠 지경으로 반해버렸다
- 천상병 시 '아기 욱진' 중에서
절친인 정용해 시인님 집에 묵게 된 천상병 시인님은 그 '손자 욱진에게 그만 미칠 지경으로 반해버렸다'라고 합니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을, 예전에 미처 보지 못했습니다. 그 아기 참 예쁘더라, 참 귀엽더라, 이런 표현이 일반적인데, 시인님이 이렇게 아이 마음이 되어 '미칠 지경으로 반해버렸다'라고 하시니, 우리도 시인님처럼 마냥 아이 마음이 되어 같은 지경이 되어버렸네요.
만 이 년 보름 된 욱진은 / 어른을 공경할 줄 알고
축구도 야구도 할 줄 알고 / 텔레비 영향인지 못하는 것이 없다
- 천상병 시 '아기 욱진' 중에서
두 살 배기가 못하는 것이 없었네요. 시인님은 이 집에서 일주일 동안 아기와 축구도 하고 야구도 하면서 아기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지냈나 봅니다.
할머니보고 / 할아버지 탯지하라고 조르는 아이 / 나는 그만 반해 버렸다
- 천상병 시 '아기 욱진' 중에서
할아버지 좀 때려주라고 아이가 할머니를 조르는 모습에 시인님은 '나는 그만 반해 버렸다'라고 합니다. 아기에게 얼마나 빠져버렸는지 두 번이나 강조하시네요. 참말로요.
부산은 지세가 좋아서 / 이런 아이가 태어나는가 보다
- 천상병 시 '아기 욱진' 중에서
시화전 때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을 텐데 그런 세속적인 일에는 관심도 없는 듯, 정용해 님이 자기 집에서 지내라고 배려해 준 일과 그 집 아기가 너무 귀여워서 그만 반해버렸던 일을 시로 남겨두었네요.
그런데요, 시인님이 아기에게 '반해 버렸다'라고 한 것은 아기가 예쁘고 아기를 좋아한 시인님 성품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아기의 할아버지인 절친 정용해 님과 그 좋은 가족의 진실되고 따뜻한 환대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그 환한 가족 속의 아기는 얼마나 더 환했겠는지요.
3. '나는 조금도 심심할 때가 없었었다'
천상병 시인님은 절친 정용해 님의 부고를 듣고 이 시를 남깁니다.
곡(哭) 정용해(鄭龍海)
- 천상병
부산의 문화계 인재
정용해 형님이
드디어 타계(他界)했단다.
1986년도에
내가 에덴공원에서
시화전(詩畵展)을 열었을 때
에덴공원 가까이 자기 집이 있다고
자기 집에 있으라고
강요한 정용해 형님!
그 호의(好意)에 못 이겨
그만 일주일간
정용해 형님댁에서 묵었었다.
정용해 형의 손자 욱진이가
어찌나 귀엽고 개구장인지
나는 조금도 심심할 때가 없었었다.
정용해 씨는 이렇게
문화계의 왕초 같았던
부산의 명인이었다.
아 이제 갔으니
어찌하랴.
다리가 아픈 나는
장례식에도 못 가겠으니
아내를 대신 보낼까 한다
정용해 형!
저승에서도
거물노릇 하시오.
- 「천상병 전집-시」(평민사, 1996년 1쇄, 2007년 12쇄) 중에서
1986년에 열린 시화전에 대해 시인님은 이렇게 두 가지 선명한 기억을 가지고 있었네요. 정용해 님이 일주일 동안 자기 집에 있으라고 한 일(천상병 시인님의 부인 목순옥 여사님과 함께), 아기가 귀여워 같이 놀았던 일 말입니다.
시인님 뇌리에 얼마나 깊이 각인됐으면 그 사연을 이렇게, 한 편도 아니고 두 편의 시 속에 풀어놓았을까요? 가식 없고 따뜻한 인간, 솔직하고 천진난만한 천사성에 대한 시인님의 끌림이 그만큼 강력했기 때문이었을까요?
부산일보사 편집국에서 시 '아기 욱진'을 불쑥 내놓았던 그날, 천상병 시인님은 기자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나는 시의 진실을 찾는 사람입니다.
진실은 시의 본질입니다.
쉬운 말로 체험한 그대로를 씁니다.
솔직하게 씁니다.
- 부산일보 '진실은 시의 본질'(1986.10.13) 중에서
천상병 시인님은 '쉬운 말로 체험한 그대로를' 시로 쓴다고 합니다. 그런 솔직하고 해맑은 시로 언제나 우리를 흔들어 솔직하고 해맑게 씻어주시는 시인님.
저 높은 하늘에서 절친인 '음악 박사' 정용해 님과 조우하셨겠지요? 브람스 교향곡 4번을 들으면 지금도 우실까요? 아이처럼 순진무구했던 시인님, 보고 싶습니다!
글 읽고 마음 목욕하는 블로그 '독서목욕'에서 천상병 시인님의 시 '난 어린애가 좋다'를 만나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