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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고 스미기

정호승 시인의 최애시 산산조각 읽기

by 빗방울이네 2023. 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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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자신의 작품 모두 소중한 자식같은 존재일 것입니다. 그래도 그 중에서 유난히 눈에 밟히는 시가 있습니다. 우리 모두 사랑하는 정호승 시인은 자신의 시 중에서 어떤 시를 가장 좋아할까요? 오늘은 정호승 시인의 최애시를 함께 읽으며 마음목욕을 할까 합니다.

1. '산산조각'에 대하여


정호승 시인은 올해 데뷔 51년차의 시인입니다. 그는 그동안 <슬픔이 기쁨에게> <서울의 예수>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 등 모두 13권의 시집을 냈습니다. 무려 1,000편이 넘는 시를 발표한 것입니다. 이 중에서 정호승 시인이 가장 좋아하는 시는 무엇일까요?

정호승 시인은 어느 대학의 강연에서 자신의 마음에 가장 남는 시로 '산산조각'을 꼽았습니다. 저도 그 강연 현장에 있었는데, 그때 무대에서 이 시를 직접 읽어주던 그의 낭랑한 목소리가 옆에서 들리는 듯합니다. 함께 들어보시죠.

산산조각

- 정호승

룸비니에서 사온
흙으로 만든 부처님이
마룻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다
팔은 팔대로 다리는 다리대로
목은 목대로 발가락은 발가락대로
산산조각이 나
얼른 허리를 굽히고
무릎을 꿇고
서랍 속에 넣어두었던
순간접착제를 꺼내 붙였다
그때 늘 부서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불쌍한 내 머리를
다정히 쓰다듬어주시면서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을 얻을 수 있지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으로 살아갈 수 있지

- 정호승 시선집 <내가 사랑하는 사람>(김영사) 중에서

2. 맑디 맑은 시인의 마음


사건이 진행되는 시간 순으로 기술된 평범한 흐름이지만 뒤로 갈수록 의미심장한 분위기를 가진 시입니다. 시인은 이날 강연에서 붓다가 탄생한 네팔의 룸비니를 여행하면서 흙으로 만든 자그마한 부처님 조각상을 기념으로 사왔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책상 위에 두었던 그 조각상을 잘못 건드려 바닥으로 떨어뜨려 그만 조각상이 깨지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조각상이 깨어지고 난 뒤의 시인의 행동을 보십시오. '얼른 허리를 굽히고/ 무릎을 꿇고'라고 기술하면서, 깨어진 부처님에게 황송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시인의 맑디 맑은 마음인 것 같습니다. 부처님을 깨뜨려서 너무나 죄송스러웠던 거지요.

그 때 반전이 일어납니다. 불현듯 부처님 말씀이 떠오른 것입니다.

부처님이 하신 수많은 말씀 가운데 핵심은 '무아(無我)'입니다. 우리가 모두 있다고 집착하는 '나'라는 존재는 없다는 것입니다. 시인이나 우리나 늘 부서지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부서지지 않으려고 한다는 것은 '자아'에 집착한다는 의미이겠네요. 있지도 않은 존재에 집착하면서 그 자아를 지키기 위해 질투하고 분노하고 욕망하는 일, 시인은 그것을 떠올린 것 같습니다.

정호승시인의시산산조각의한구절
정호승 시인의 최애시 산산조각의 한 구절

 

 

3.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으로


이 시의 마지막에서 부처님은 산산조각 나지 않으려고 애쓰는 ‘불쌍한’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을 얻을 수 있고 산산조각으로 살 수 있는데 왜 그리 무서워하느냐고요. 이 말은 부처님의 입을 빌린 정호승 시인의 말씀이겠지요?

어떤 식으로든 변화가 생기면 그 변화대로 새로운 세계가 열리게 될 것입니다. 고통은 고통대로 기쁨은 기쁨대로 우리에게 새로운 세계를 보여줄 것입니다. 현재의 모습을 지키려고 너무 집착하지 않고, 변화된 장면 속에서 나는 어떤 의미를 발견할 것인가 하는 인식이 더 중요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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