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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고 스미기

모비딕 - 무지는 공포의 아버지

by 빗방울이네 2023. 1.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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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먼 멜빌의 「모비딕」(또는 「백경」)을 읽으며 마음목욕을 하는 시간입니다. 지난번 우리는 이 <독서목욕> 블로그에서 주인공 이스마엘이 포경선을 타려고 부두에 왔다가 여인숙에 들게 되었는데, 식인종 퀴퀘그라는 사나이와 조우하는 장면을 읽었습니다(이 글의 맨 아래에 링크). 오늘은 이 소설의 두 번째 장면 속으로 풍덩 뛰어들어가 보십시다.

1. 한밤중에 만난 두개골 든 사나이


오늘 우리는 지난번 장면에서 앞 페이지로 잠깐 가려고 합니다. 이스마엘은 북아메리카 포경 중심지인 매사추세츠주 항구도시인 뉴베드퍼드에 도착합니다. 포경업의 발상지인 낸터킷으로 가는 연락선이 끊겨 뉴베드퍼드에서 하룻밤을 머물러야 하는 상황입니다.

이스마엘은 여인숙에 방이 없어 퀴퀘그라는 사나이와 같은 침대를 써야할 처지가 되었습니다. 특히나 상대는 자신이 아는 일반적인 모습의 사람이 아닙니다. 이스마엘은 퀴퀘그의 겉모습을 보고 너무 무서워 벌벌 떨고 있는 중입니다. 퀴퀘그는 기름을 잔뜩 바른 두개골을 들고 다니며 파는 두개골 장수이기도 합니다.

공포에 휩싸인 그는 이렇게 독백합니다.

무지는 공포의 아버지다. 이 사나이에 대해서 완전히 혼미해지고 경악한 결과로써, 나는 지금 이 한밤중에 내가 있는 방으로 들이닥친 이 사나이를 악마처럼 무서워했다는 걸 고백한다. 너무도 무서워 덜덜 떨고 있던 나는 그 순간 그에게 말을 걸어 너의 기괴한 정체가 무엇이냐고 물어볼 용기조차 없었던 것이다.
- 「백경1」(허먼멜빌 지음, 현영민 옮김, 신원) 중에서

2. 무지는 공포의 아버지다


자, 상황을 다시 정리해봅니다. 이스마엘은 혼자 침대에 들어있었는데, 밤늦게 퀴퀘그가 방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때 이스마엘은 희미한 불빛에 비친 퀴퀘그의 모습을 처음 보게 됩니다. 퀴퀘그는 보랏빛 얼굴에 온몸이 문신투성이입니다. 한밤중에 혼자 있는 방에 이런 기괴한 사나이가 등장한다면 얼마나 공포스러웠을까요? 그가 도대체 어떤 인물인지 모르기 때문에 공포는 배가되었을 것입니다.

이 장면에서 이 소설의 작가인 허먼 멜빌은 우리 삶의 비의(秘義) 한 가지를 던져줍니다. '무지는 공포의 아버지다.'라는 문장입니다. 이 소설의 영어 원문에는 'Ignorance is the parent of fear.'로 돼 있습니다.

'무지는 공포의 아버지다'. 모르면 무섭다는 말입니다.

밖에서는 안이 보이지 않는 어떤 검은 상자에 손을 넣어 무언가 물컹한 것을 만졌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그것은 단지 물렁물렁한 성질을 가진 아이 장난감 같은 것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공포를 더 느끼게 됩니다.

귀신에 대한 공포도 귀신이 무엇인지 우리가 모르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허먼 멜빌은 특히 공포감에 휩싸이면 실체를 정확히 파악하려는 노력조차 무력해진다고 말합니다. '완전히 혼미해지고 경악한 결과로써 (중략) 너의 기괴한 정체가 무엇이냐고 물어볼 용기조차 없었던 것이다.'라는 그의 문장을 곱씹어봅니다.

무지는공포의아버지다
무지는 공포의 아버지다. 허먼 멜빌 모비딕에 나오는 대사.

 


3. 공포심을 없애려면?


여기서 우리는 소중한 삶의 팁 하나를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대상에 대해 느끼고 있는 두려움이나 공포심을 없애기 위해서는 우선 그것이 무엇인지, 그 실체를 잘 파악하면 되겠네요.

처음 만나는 낯선 사람, 처음 가보는 곳, 처음 들어보는 소리, 처음 맡아보는 향, 처음 먹어보는 음식, 처음 느끼는 촉감. 그런 대상들이 우리에게 공포감이나 거부감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럴 때는 최대한 그 공포감이나 거부감을 누르면서 그 대상이 어떤 것인지부터 알아보려는 노력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내면에 호기심의 불빛을 반짝거리면서요.

자, 우리의 주인공 이스마엘은 이 공포를 어떻게 극복했을까요? 다음 편에서 두 사나이, 이스마엘과 퀴퀘그가 한 침대에서 어떻게 하룻밤을 보내게 되었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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