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주위에 부쩍 이 시를 인용하는 사람이 많아졌습니다. 어느 예식장에서 사회가 읽어주며 예식을 시작하기도 하고, 강연에서 강연자가 인용하기도 하고, 라디오 진행자가 읊어주기도 합니다.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이라는 시입니다. 사람을 만나기 전에 읽으면 좋은 시입니다. 오늘은 이 시를 함께 읽으며 마음목욕을 했으면 합니다.
1. 사람을 만난다는 것의 의미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만난다는 것의 의미를 이 시처럼 간략하고도 절절하게 노래해 준 시는 드물 것입니다. 먼저 천천히 음미하며 함께 읽어보시죠.
방문객
- 정현종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 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 정현종 시선집 「섬」 (정현종 지음, 열림원 발간) 중에서
여러분은 어느 구절이 먼저 마음에 들어오는지요? 아무래도 첫 구절의 에너지가 굉장하게 느껴집니다. 시인은 나에게 방문객이 오는 일을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라고 규정합니다. 저는 이 구절에서 바짝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네요. 왜 그렇게 어마어마한 일이지?라고 스스로 물어보면서요.
2. 누구나 부서지는 마음이다
그러면서 시인은 다음 구절에서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등 단어와 구만으로 아주 짧게 행을 갈라놓았습니다. 이는 의도적인 배치입니다. 그만큼 독자들은 짧은 행 하나하나에 주목하며 음미하지 않을 수 없겠습니다. 보아라,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가 함께 오기 때문이다, 라면서 또박또박 행마다 힘을 주는 시인의 목소리가 곁에서 들리는 것만 같습니다.
자, 그다음 의미 단락이 아주 흥미롭습니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는 것인데, 그 일생이란 것이 바로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저는 여기서 의사 선생님이 아픈 저의 손을 내밀어 잡아주시는 듯 안심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마음이란 것이 모두 부서지기 쉽고 그래서 부서지기도 한다는 시인의 정의에 마음이 놓였습니다. 나만 부서지는 게 아니구나, 하면서요.
그러면서 '그 갈피를'이라는 말을 앞의 구절과 하이픈(-)으로 연결했습니다. 그러니까 마음의 어느 곳에 갈피 내어서 하이픈으로 찔러두고 잠시 벌려 놓은 것 같지요? 그래서 부서지기 쉬운 마음,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의 틈이 보이는 것만 같습니다.
그 시각적인 효과를 다음 구절이 배가시켜 줍니다. 그런 빈 틈을, 빈 갈피를 바람은 속속들이 더듬어볼 수 있었겠지요? 그러므로 내 마음이 그 바람처럼 방문객의 마음을 헤아려주고 더듬어 주면 얼마나 좋을까요? 최고의 환대가 되겠지요.
3. 그 바람의 흉내를 내어보자
이 짧은 시를 A4 용지에 3편씩 두 줄로 앉혀서 인쇄하면 모두 6편이 나옵니다. 하나씩 자릅니다. 그러면 시 한 편 크기가 핸드폰 크기 만해집니다. 저는 새로 부임해 오는 신입 직원 환영식이 있을 때, 출력한 이 시를 한 편씩 나누어 주고 이 시를 읽어주곤 했습니다.
어느 날 한 직원의 책상을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책상 앞에 제가 그때 나누어준 시가 붙어있었습니다. 그는 아마도 이 시를 가까이하면서 자신을 찾아오는 사람을 향해 '아, 어마어마한 일이다'라고 마음을 준비하겠지요. 한 사람의 일생이 통째로 오는 것이다, 하면서요. 바람의 흉내를 내며 그 사람의 마음을 헤아려보려고 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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