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에 대한 시를 읽으려 합니다. 외로움에 대한 시이지만, 읽는 이의 외로움을 가만히 어루만져주는 시입니다. 외로움도 함께 하면 마음 목욕이 된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시입니다. 우리 함께 모락모락 외로움의 수증기가 피어오르는 시에 마음을 푹 담가보십시다.
1. 외로움을 달래주는 시
외로움을 달래주는 시, 바로 정호승 시인의 '수선화에게'입니다. 이 시에는 외롭다는 말이 여러 번 나옵니다. 헤어보니 무려 일곱 번이나 나옵니다. 그런데 그 외로움을 따라가다 보면 신기하게도 외로움이 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천천히 함께 읽겠습니다.
수선화에게
- 정호승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검은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 퍼진다
- 정호승 시선집 '내가 사랑하는 사람'(정호승 지음, 김영사) 중에서
'수선화에게'라는 제목을 단 이 시는 '외로우니까 사람이다'라는 구절로 더 잘 알려진 시입니다. 여러분은 어느 구절이 좋은가요? 여러분도 '외로우니까 사람이다'가 좋은가요?
처음 이 시를 읽었을 때 저는 '갈대숲에서 가슴검은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라는 구절에서 눈가가 뜨거워짐을 느꼈습니다.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를 가슴검은도요새도 '나'를 보고 있구나! 그렇게 생각하니, 어떤 근원 모를 외로움이 진정되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시의 제목은 '수선화에게'인데, 이 시 본문에는 어디에도 수선화가 나오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이 때문에 이 시를 읽고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 갑론을박이 생깁니다. 이 시에서 수선화는 외로움의 상징으로 쓰이고 있는 것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2. 왜 수선화가 나오지 않나요?
수선화는 영어로 'Narcissus'입니다. 나르시스라는 미소년이 등장하는 그리스 신화의 한 장면이 떠오르시죠? 그는 연못 속에 비친 자기 얼굴에 반해서 물속에 빠져 죽게 됩니다. 그 자리에서 수선화가 피었다고 합니다. 미소년이 수선화로 환생한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 자신에 애착하는 일을 나르시시즘이라고 합니다. 프로이트에 의하면 타인과의 관계에 문제가 생겨 누구도 사랑할 수 없는 위기 상태, 그래서 유아기처럼 자기 자신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상태에 이른 것을 나르시시즘이라고 합니다. 어떻습니까? 어떤 형용할 수 없는 진한 외로움이 느껴지시나요?
그러면 이 시를 쓰신 정호승 시인님은 어떤 생각으로 제목을 '수선화에게'라고 붙였을까요?
정 시인님이 그 까닭을 직접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수선화에게' 시에 수선화라는 꽃이 등장하지 않는 까닭을요. 어느 대학의 특강에서였습니다. 저도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는 외로움은 과연 어떤 빛깔일까를 생각하다가 수선화의 연노랑 빛깔이 외로움의 빛깔이 아닐까 해서 제목을 '수선화에게'로 붙이게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수선화를 보면 그 꽃대가 매우 가늘고 기다랗습니다. 그 꽃대 위에 연노랑 꽃이 피어 있습니다. 그것도 언제나 꽃대마다 딱 한 송이가 얹어져 있습니다. 이런 연노랑 수선화 모습은 매우 외로운 형상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그런데 수선화가 정말로 외로울 리 있을까요? 수선화는 그 자체로 완전한 아름다움인데요. 수선화가 외로운 것이 아니라 이런 수선화를 만났던 시인이 그때 매우 외로웠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 '수선화에게'라는 제목은 시인의 감정이 숨겨져 있는 메타포가 아닐까요? 그 때문에 이 시의 의미망이 한층 넓어져 독자들에게 더 신비롭게 읽히는 것이 아닐까요?
저는 '수선화에게'라는 제목이 나르시시즘과의 연관성보다 시인이 감추어놓은 '숨은 그림'이라는 점에 더 공감이 갑니다. 여러분 생각은 어떠십니까?
3. 나도 외롭다고 속삭여주는 시
외로움을 견디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이 시에서 깊은 위안을 얻습니다. 그것은 왜일까요? 내가 외롭다고 했을 때 이 시는 "그래, 많이 외롭구나. 그런데 사실 나도 많이 외로워."라고 속삭여 주기 때문이 아닐까요?
곁에서 누가 외롭다고 하면, 당신은 어떻게 하시나요? 산보를 해라, 친구를 만나라, 이런 방법을 말해주기보다 그냥 이 시처럼 "그래, 많이 외롭구나, 나도 그래." 하고 말해주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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