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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고 스미기

정지용 시 호수 2 읽기

by 빗방울이네 2023. 3.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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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용 시인님의 시 '호수 2'를 만납니다. 이 시는 참으로 신묘한 시입니다. 그대가 이 시를 자꾸 읽다 보면 스멀스멀 목이 간지러워질지도 모릅니다. 시인은 이 시에 무슨 마법을 걸어둔 것일까요? 정지용 시인님이 파놓은 시의 호수에 함께 마음을 담그고 독서목욕을 해보십시다.
 

1. 정지용 시 '호수 2' 읽기

 
호수 2
 
- 정지용
 
오리 모가지는
호수를 감는다.
 
오리 모가지는
자꾸 간지러워.
 

- 「정지용 전집 · 시」 (권영민 엮음, 민음사) 중에서

 
대표 시 '향수'로 유명한 정지용 시인님(1902~1950)은 충북 옥천 출생으로 일본 도시샤대학 영문과를 졸업했습니다. 모교인 휘문고등보통학교 교사로 근무하다 이화여자대학교 교수로 문학과 라틴어를 강의했고 경향신문 주간 등을 역임했습니다. 
 
1930년 김영랑 박용철 시인님 등과 「시문학」 동인으로 본격 작품활동을 했고, 첫 시집 「정지용시집」(1935) 이후 「백록담」(1941) 「지용시선」(1946) 등을 펴냈습니다. 한국전쟁 때 납북되었으며 1950년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2. 자맥질하는 오리를 오래 보고 있으면

 
정지용 시인님의 4행짜리 짧은 시 ‘호수 2’에 젖어들기 위해 ‘나’는 한 마리 오리가 됩시다.  호수나 연못, 조용한 강에서 자맥질을 하는 오리가 됩시다.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움직이는, 오리인 ‘내’가 앞으로 헤엄칠 때, ‘내’ 목 언저리로 물결이 양쪽으로 일렁이며 퍼져나갑니다. 빨리 나아갈수록 물결은 더 세게 일렁이며 ‘나’의 목을 목도리처럼 휘감습니다. 그러면 ‘나’는 온몸이 간지러워 연방 고개를 흔들며 깃털의 물기를 털어내기도 하고, 앙증맞은 부리로 ‘내’ 몸을 쿡쿡 쑤시며 깃털을 다듬기도 합니다. 생명은 얼마나 귀여운지요.
 
눈을 감고 다시 오리가 되어 이 광경을 천천히 복기하다 보면 다시 목 주위에서 물결이 일렁이듯 스멀스멀 간지러운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글자에 불과한 4행짜리 문장이 우리에게 실재의 생생한 느낌을 일으켜준다는 점이 이 시의 첫 번째 신비로움입니다. 그럼 두 번째 신비로움은 무얼까요?
 

정지용시호수2
정지용 시 '호수 2' 전문

 

 

3. 정지용 시인님 '호수 2'에 숨겨져 있는 이야기

 
'호수 2'는 '호수 1'과 함께 연결시켜 감상해야 합니다. '호수 1'만 외따로이 시비(詩碑)에 새겨져 있다면 , 그것은 정지용 시인님의 '호수' 연작을 반쪽만 감상하는 것이라고, 이 빗방울이네는 생각합니다. 왜 그럴까요?
 
처음 발표됐을 때, 이 두 편의 시는 '호수'라는 같은(!) 제목으로 1930년 5월 「시문학」 2호의 11쪽에 나란히 실렸습니다. 이후 1935년 정지용 시인님의 첫 시집 「정지용 시집」에 각각 '호수 1', '호수 2'로 제목이 붙여져 한쪽씩 실렸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두 편의 시는 완전히 다른 내용인데, 정지용 시인님은 왜 이처럼 끝까지 둘을 딱 붙여둔 것일까요? 그만큼 '호수 1'과 '호수 2'는 서로 떨어져 읽힐 수 없는 밀접한 시라고, 시인님이 눈짓하고 있네요. 그러면 두 시는 어떻게 연결되어 있을까요?
 
호수 1
 
- 정지용
 
얼굴 하나야
손바닥 둘로
폭 가리지만,
 
보고 싶은 마음
호수만 하니
눈 감을밖에.
 

- 「정지용 전집 · 시」 (권영민 엮음, 민음사) 중에서

 
두 편의 시 제목이 모두 호수이니, 두 시 모두에게 중요한 시적 오브제는 호수입니다. 호수는 무얼 상징할까요? 바로 그리움입니다. 호수는 물이 고여 있는 곳입니다. 보고 싶어 애타는 마음, 그리움도 흘러가지 않고 시인님의 마음속에 고여 있습니다. 호수는 그리움이 가득 고여 있는 그리움, 그리움, 그리움의 심연이네요.
 
정지용 시인님은 ‘호수 1'에서 눈을 감을 수밖에 없는 간절한 그리움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호수 2'에서는 아무 것도 모르는 척 오리 이야기를 풀어놓습니다. 이 오리는 그리움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요?
 
맞습니다. 시인님은 '호수 1'을 그리움의 심연으로 만들어 놓고나서, '호수 2'에 풍덩 뛰어들어 자맥질하는 한 마리의 오리가 되고 말았군요! 그리움의 깊고 짙은 심연 속을 하염없이 헤어 가는 가여운 생명이 되고 말았군요. 자, 이렇게 '호수 1'과 '호수 2'의 연결은 아주 자연스러워졌습니다. 아니, 아주 경이로워졌습니다.
 
빗방울이네는 정지용 시인님의 '호수 2'를 알레고리(allegory) 수사법의 전범(典範)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이야기를 통째로 하나의 은유로 감추는 기법입니다. 정지용 시인님은 '그리움'이라는 주제를 말하기 위해 '오리'를 데려왔네요. 은유의 옷을 입은 시는 이렇게 100년이 다되도록 다이아몬드처럼 반짝거리고 있습니다.
 
어떠셨는지요? 평소 '호수 2'를 읽으면서 '호수 1'과는 무슨 관계가 있지? 하던 궁금증이 좀 풀렸는지요?
 
그렇다면 그대도 그리움에 자맥질하고 있는 한 마리 오리일 수 있겠네요. 빗방울이네도 어서 호수로 가 오리를 만나고 싶습니다. 오리들과 함께 그리움 속을 자맥질하면서 헤어 가면서 하염없이 그리워하고 싶습니다.
 
오리 모가지는 자꾸 간지러워

- 정지용 시 '호수 2' 중에서'

 
뜨거움이, 그리움이 목을 휘감아 온몸이 자꾸 사물사물해집니다. 그대는 어떤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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