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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고 스미기

황동규 시 즐거운 편지 읽기

by 빗방울이네 2023. 3.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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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동규 시인님의 사랑시 '즐거운 편지'를 그대에게 배달합니다. 사랑의 열병에 빠진 이의 편지를 우리 함께 읽으며, 황동규 시인님의 따뜻한 어깨에 기대어 함께 독서목욕을 해봅시다.
 

1. 황동규 시 '즐거운 편지' 읽기

 
즐거운 편지
 
- 황동규
 
1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背景)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 보리라.
 
2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 버린 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 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姿勢)를 생각하는 것 뿐이다. 그 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 황동규 시선 「三南에 내리는 눈」 (민음사) 중에서

 
1938년 평안남도 숙천 출생인 황동규 시인님은 대학 2학년 때인 1958년 서정주 시인님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했습니다. 이해 2월 시 '시월'이, 같은 해 11월에 '동백나무' '즐거운 편지'로 추천 완료됐습니다.
 
단편소설 '소나기'의 황순원 작가님 아들인 황동규 시인님은 1961년 첫시집 「어떤 개인날」을 시작으로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 「사는 기쁨」 「겨울밤 0시 5분」 「오늘 하루만이라도」 등 등단 65년 동안 20 여권의 시집과 시선집을 냈으며, 김종삼문학상, 이산문학상, 대산문학상, 미당문학상, 만해대상문학부문, 김달진문학상, 구상문학상, 호암상 예술상 등을 수상했습니다.
 

2. 한국 서정시의 대표시인 황동규 시인 최초의 시

 
오늘 함께 읽을 시 '즐거운 편지'는 황동규 시인님이 고등학교 3학년 때인 방년 18세에 쓴 시로 교지에 실렸던 작품입니다. 황 시인님은 어느 글에서 이 작품이 첫 시집에 실린 작품 가운데 최초로 쓰인 작품이라고 소개한 바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시는 한국 서정시의 대표시인으로 꼽히는 황동규 시인님의 '시의 씨앗'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황동규 시인님의 시 '즐거운 편지'를 읽어보니 어떤가요?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고 홀로 남은 이의 지독한 가슴앓이가 느껴집니다. 떠나간 사람을 향해 여전히 사랑을 호소하고 있군요. 우리의 사랑이 그렇게 호락호락하던가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나를 사랑하지 않으니 언제나 그것이 야단입니다.

그대는 이 시의 어떤 구절이 가슴으로 들어왔는지요? 첫구절부터 절절합니다.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 황동규 시 '즐거운 편지' 중에서

 
시의 화자는 해가 지고 바람 부는 일이 사소하다고 하네요. 그대도 사랑에 빠져보았으니 이 구절이 가슴에 스며들 것입니다. 사랑은 눈을 멀게 하니까요. 그이 말고는 뭐가 대수던가요?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 보리라

- 황동규 시 '즐거운 편지' 중에서

 
얼마나 참고 기다려야 그이가 나에게 올까요? 얼마나 나를 낮추어야 그이에게 다가갈 수 있을까요? 그리움에 말라 시의 화자는 정말 하나의 작은 점으로 증발해버리고 말 것만 같습니다. 사랑하는 이가 멀어지면서 자신은 점점 작아지는 하나의 소실점이 되어 버렸지만, 그래도 그 선의 끝에서 끝까지 기다리겠다고 합니다.

황동규시즐거운편지중에서
황동규 시 '즐거운 편지' 중에서

 

 

3. 대자연의 섭리 속에서 기다리는 마음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 황동규 시 '즐거운 편지' 중에서

 
시의 화자는 시간이 지나면 눈이 그치듯 자신의 사랑도 그칠 것이라는 것을 예상하고 있습니다. 1연에서는 그렇게 애타게 매달리는 모습이었는데, 2연에서는 이별을 생각하고 있네요.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그 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 황동규 시 '즐거운 편지' 중에서

 
사랑도 이별도 대자연의 섭리 속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말하네요. 눈이 오고 꽃이 피고 낙엽이 지고 비가 오고 바람이 부는 것처럼 사랑도 이별도 기쁨도 슬픔도 그렇게 자연의 법칙 속에서 인연에 따라 일어나고 사라진다는 것을, 오랜 기다림 속에서 시의 화자는 깨닫게 되었네요.

 

그런 깨달음 속에서 화자는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며 한없이 기다린다고 고백합니다. 그대를 기다릴 수 있는 사실만으로도 얼마나 다행인지요. 그대와 이 지상에 함께 있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즐거운지요.

 

이렇게 ‘즐거운 편지’가 그대에게 배달되었네요. 자, 이제 답장을 해주세요.
 
글 읽고 마음목욕하는 블로그 <독서목욕>에서 불멸의 사랑을 염원하는 마종기 시인의 시를 읽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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