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길택 시인님의 시 '거울 앞에 서서'를 만납니다. 탄광마을에 교사로 근무하던 시인님이 아이들의 순수한 눈으로 쓴 시입니다. 함께 읽으며 마음을 맑히며 독서목욕을 하십시다.
1. 임길택 시 '거울 앞에 서서' 읽기
거울 앞에 서서
- 임길택
아버지 하시는 일을
외가 마을 아저씨가 물었을 때
나는 모른다고 했다
기차 안에서
앞자리의 아저씨가
물어왔을 때도
나는 낯만 붉히었다
바보 같으니라구
바보 같으리라구
집에 돌아와
거울 앞에 서서야
나는 큰 소리로 말을 했다
우리 아버지는 탄을 캐십니다
일한 만큼 돈을 타고
남 속이지 못하는
우리 아버지 광부이십니다
- 임길택 시집 「탄광마을 아이들」(정문주 그림, 실천문학사, 1990년 1쇄, 2016년 24쇄) 중에서
임길택 시인님(1952~1997)은 전남 무안 출신으로 강원도 탄광마을 등에서 15년 가까이 교사로 재직하며 어린이들을 가르쳤습니다. 시집 「탄광마을 아이들」 「할아버지 요강」 「똥 누고 가는 새」 「산골 아이」 「나 혼자 자라겠어요」, 동화집 「산골마을 아이들」 「느릅골 아이들」 「탄광마을에 뜨는 달」 「수경이」, 수필집 「하늘 숨을 쉬는 아이들」 「나는 우는 것들을 사랑합니다」 등이 있습니다.
2. 아이 눈으로 본 탄광마을의 삶과 희망
오늘 만나는 시 '거울 앞에 서서'가 실려있는 임길택 시인님의 시집 「탄광마을 아이들」에는 모두 71편의 시가 실려있습니다. 이 시들은 시인님이 목포교육대학을 졸업한 뒤 강원도 탄광마을 산골마을 학교에서 교사생활을 하면서 쓴 것입니다. 1976년 강원도 정선군 임계면 도전초등학교 분교에서 교사생활을 시작했고 1990년 이 시집이 나왔습니다.
이 시집을 읽다 보면 시인님의 눈이 얼마나 따뜻한 지 알 수 있습니다. 얼마나 순수한 아이 눈인지를요. 아이의 눈, 아이의 마음이 되려면 아이가 되어야 할 텐데요, 아이가 된 시인님의 시를 어서 만나봅시다.
시인님은 지금 탄광마을 아이가 되었습니다. 이 아이는 지금 어떤 마음일까요?
아버지 하시는 일을 / 외가 마을 아저씨가 물었을 때 / 나는 모른다고 했다
기차 안에서 / 앞자리의 아저씨가 물어왔을 때도 / 나는 낯만 붉히었다
- 임길택 시 '거울 앞에 서서' 중에서
아버지 뭐 하시노? 누군가 이렇게 아이에게 물었네요. 아이는 모른다고 했고, 또 말하지 않고 낯만 붉혔다고 하네요. 말할까 말까 망설이다가 결국 말하지 못했네요. 아이는 아버지의 직업을 알고 있지만 왠지 말하기가 주저되었나 봅니다. 아이는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바보 같으니라구 / 바보 같으니라구
- 임길택 시 '거울 앞에 서서' 중에서
이렇게 나중에서야 후회합니다. 아이 아버지는 석탄을 캐는 광부입니다. 아버지의 직업을 아이는 자랑스럽게 말하지 못했네요. 광부의 일이 떳떳하지 않을 리가 있겠는지요. 특정 직업에 어른들이 씌워놓은 굴레가 아이를 이렇게 주눅 들게 하였네요.
집에 돌아와 / 거울 앞에 서서야 / 나는 큰 소리로 말을 했다
우리 아버지는 탄을 캐십니다 / 일한 만큼 돈을 타고
남 속이지 못하는 / 우리 아버지 광부이십니다
- 임길택 시 '거울 앞에 서서' 중에서
뒤늦게 후회한 아이는 거울 앞에서 소리쳤습니다. 아버지는 탄을 캐는 광부라고요. 일한 만큼 돈을 타는 광부라고요. 마지막 행에서 우리는 울컥해집니다. 거울 앞에서 소리치면서 아이는 아버지의 이미지 하나를 생각해 냈군요. 남을 속이지 못하는 착한 아버지라고요. 이런 자식이라면 아버지는 얼마나 든든하겠는지요.
이 시를 읽는 아이들이라면 누가 “아버지 뭐하시노?” 물으면 “아버지는 광부이십니다.”라고 큰소리로 답하겠네요. 시인님은 이렇게 따뜻한 시로 아이들을 가르치며 북돋아주었네요.
예전보다 광산 문을 많이 닫았지만, 지금도 석탄을 캐는 광부들이 열심히 지하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대한석탄공사 산하에 강원도 태백의 장성광업소, 삼척의 도계광업소, 전남 화순광업소 등이 대표적인 탄광입니다. 요즘은 기술이 발달해 지하 1,000미터 이상 깊이에 있는 석탄도 캐고 있다고 합니다. 탄광의 근로자들, 가족들 모두의 안전과 행복을 기원합니다.
3. 오늘의 사는 우리에게 힘을 주는 시
이 시집에서 임길택 시인님의 시 한 편 더 만납니다.
밤 열한 시 / 바람이 불고 / 비가 내리치고 있었다
아프시다는 / 고향의 할머니 걱정만 하다가 / 아버지는 밥도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마루 끝에 앉아 / 아버지가 장화를 신는 동안 / 어머니는 우산을 펴 들었다
"잘 다녀오세요." / "염려 말고 잘 자."
라면 두 개를 가방에 넣고 / 아버지가 저벅저벅 마당을 나섰다
일하면서도 아버지는 / 아프시다는 할머니 생각만 하시겠지
불을 끄고 누웠는데도 / 잠이 오지 않았다
- 임길택 시 '아버지 일 가실 때' 전문
아버지는 광부여서 밤 열한 시에 탄을 캐러 막장으로 내려가야 하네요.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치는 밤인데도요. 땅속 깊은 곳에서 야참으로 먹을 라면 두 개를 가방에 넣고요. 그런데 아버지는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낮에 고향 할머니가 아프시다는 전갈을 받았기 때문이죠. 그래서 아이는 생각합니다. '일하면서도 아버지는' '할머니 생각만 하시겠지'라고요.
그런데요, 아이는 '불을 끄고 누웠는데도' '잠이 오지 않았다'라고 하네요. 아버지는 자신의 어머니 걱정하고 아들은 아버지 걱정 중이네요. 부전자전이네요. 얼마나 뭉클한지요.
임길택 시인님은 강원도 정선 사북 등 탄광마을 일대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면서 탄광마을 아이들의 동심을 꾸밈없이 시에 담아 세상에 편지로 띄웠네요.
날마다 깊은 지하로 일하러 가는 아버지 뒷모습을 보며 인사하고, 잠에서 깨어나면 위험한 곳에서 밤새워 일하는 아버지를 걱정하고 불안해하는 탄광마을 아이들.
시인님의 시는 그런 아이들에게 힘을 주고, 이 시를 읽는 우리를 일깨워주네요. 그대가 모르는 사이 땅 속 깊은 곳에서 이렇게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고, 이렇게 맑은 아이들이 자라고 있다고 말하네요. 우리도 힘이 납니다, 시인님!
시인님은 1997년 폐암으로 투병하다 안타깝게도 마흔여섯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생전에 아이들과 함께 지냈던 강원도 정선군 화암면에 세워진 시인님의 시비(詩碑)에는 '아버지 걸으시는 길을'이라는 제목의 시인님 시가 새겨져 있네요. 비뚤비뚤한 아이의 글씨로요.
빗물에 파인 자국 따라 / 까만 물 흐르는 길을 / 하느님도 걸어오실까요
골목길 돌고 돌아 산과 맞닿는 곳 / 앉은뱅이 두 칸 방 우리 집까지 / 하느님도 걸어오실까요
한밤중 / 라면 두 개 싸들고 / 막장까지 가야 하는 아버지 길에 / 하느님은 정말로 함께 하실까요
- 임길택 시 '아버지 걸으시는 길을' 전문
글 읽고 마음 목욕하는 블로그 '독서목욕'에서 박목월 시인님의 시 '바람소리'를 만나보세요.
'읽고 쓰고 스미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문태준 시 개복숭아나무 읽기 (92) | 2023.08.31 |
---|---|
백석 시 칠월 백중 읽기 (97) | 2023.08.30 |
정태춘 노래 고향집 가세 부르기 (96) | 2023.08.28 |
달라이 라마의 행복론 읽기 (79) | 2023.08.27 |
함형수 시 해바래기의 비명 읽기 (85) | 2023.08.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