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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고 스미기

박목월 시 바람소리 읽기

by 빗방울이네 2023. 5.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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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목월 시인님의 시 '바람 소리'를 만납니다. 이 시를 읽으면 자식은 어버이를 떠올리며, 또 어버이는 자신을 돌아보며 눈물이 핑 돌지도 모릅니다. 그 뜨거운 여운의 여울에 함께 마음을 적셔 맑히며 독서목욕을 하십시다. 
 

1. 박목월 시 '바람 소리' 읽기

 
바람 소리
 
- 박목월
 
늦게 돌아오는 아이를 근심하는 밤의 바람 소리.
댓잎 같은 어버이의 정(情)이 흐느낀다.
자식이 원술까.
그럴 리야.
못난 것이 못난 것이
늙을수록 잔 정(情)만 붙어서
못난 것이 못난 것이
어버이 구실을 하느라고
귀를 막고 돌아 누울 수 없는 밤에
바람 소리를 듣는다.
적막(寂寞)한 귀여.
 

- 「박목월 시전집」(이남호 엮음·해설, 민음사) 중에서

 
박목월 시인님(1916~1978)은 경주 출신으로 1933년 대구 계성중학교 재학 중 동시 '통딱딱 통딱딱'이 「어린이」지에, '제비맞이'가  「신가정」지에 당선되는 등 어릴 때부터 뛰어난 문재(文才)를 발휘했습니다. 1940년 정지용 시인님의 추천을 받아 「문장」지에 시 '길처럼'을 발표하여 등단했습니다.
시인님은 박두진 조지훈 시인님들과의 합동시집 「청록집」을 비롯, 개인시집 「산도화」 「난·기타」 「청담」 「경상도의 가랑잎」 등을, 수필집 「밤에 쓴 인생론」 「친구여 시와 사랑을 이야기하자」 「그대와 차 한 잔 나누며」 등을, 동시집 「산새알 물새알」 등을 냈습니다.
한국시인협회장, 한양대 문리대학장, 「심상」 발행인 등을 역임했고, 아시아자유문학상, 서울시문화상, 대한민국문예상, 예술원상 등을 수상했습니다.
 

2. 아들이 들려주는 아버지 박목월의 모습

 
이 시는 1968년 1월 「사상계」에 발표된 시입니다. 박목월 시인님이 52세 때이네요. 시인님 슬하에 주렁주렁 아이들이 있을 때이네요.
 
박목월 시인님의 큰아들인 서울대학교 박동규 교수님의 특강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이날 강연에서 박 교수님은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언젠가 자신의 어머니께 물었답니다. 어머니는 지금껏 살아오시면서 언제 제일 행복하셨습니까? 그랬더니 어머니가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언젠가 내가 큰 수술을 받고 막 깨어났을 때,
병실 밖에 네 아버지가 시든 장미 한 송이 들고
나 죽을까봐 벌벌 떨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을 때."
 
이 에피소드에서 우리는 온순하고 다정다감한 박목월 시인님의 성정(性情)을 느낄 수 있습니다. 병 중에 있는 아내가 깨어나기를 기다리며 '벌벌 떨고 있는' 시인님 좀 보셔요. 얼마나 오래 기다렸던지, 아내 깨어나면 기분 좋게 해 주려고 손에 쥐고 있던 장미는 시들어 고개를 푹 숙였네요.  
 
이런 시인의 모습이 오늘의 시 '바람 소리'에서도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못난 것이 못난 것이 / 어버이 구실을 하느라고

- 박목월 시 '바람 소리' 중에서

 
빗방울이네는 시를 읽어 내려가다가 이 구절에서 콧등이 찡했답니다. '못난 것이 못난 것이 어버이 구실을 하느라고'. 이 구절은 얼마나 큰 연민이 가는지요? 한 가정의 가장, 아이들의 아버지의 역할을 하는 일이 갈수록 힘이 드는 시간인 것 같습니다. 남들처럼 잘 먹이지도 잘 입히지도 못해 늘 미안한 아버지입니다.
 
박동규 교수님은 이날 특강시간에 자신의 어린 시절 집안이 몹시 가난했다고 했습니다. 하루는 학교서 미술시간에 쓸 크레용을 가져오라고 했답니다. 그래서 어머니에게 말씀드렸더니 어머니가 어린 동규의 손을 꼭 잡고 이러셨다고 합니다. "원래 글 쓰는 집은 크레용 못 사준다." 빗방울이네는 이처럼 멋진 변명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박 교수님은 어머니 말씀대로 글 쓰는 집은 원래 가난한 줄 알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결국 크레용을 가져가지 못했겠네요. 교수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린 시절 가난에 찌들어 살았지만 가난 때문에 힘들지 않았다. 가난했지만 찬란한 빛을 보며 살았던 거 같다."라고요.
 

박목월시바람소리중에서
박목월 시 '바람 소리' 중에서.

 

 

 

 

3. 온 우주를 꽉 채우는 바람 같은 어버이의 근심

 
박목월 시인님은 어린 자식에게 크레용을 못 사줄 정도로 가난한 아버지였네요. 그런 '못나고 못난 것이 어버이 구실을 하느라고' 밤늦게까지 집에 들어오지 않고 있는 자식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얼마나 가슴을 졸였을까요? 이만큼입니다. 
 
늦게 돌아오는 아이를 근심하는 밤의 바람 소리

- 박목월 시 '바람 소리' 중에서

 
빗방울이네는 근심의 크기를 이렇게 무한대로 비유한 문장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밤의 바람 소리 = 어버이의 근심입니다. 바람은 온 우주 공간을 채우겠네요. 그런 바람만큼의 근심이니 어버이의 내면세계는 늦게 집에 돌아오지 않고 있는 자식에 대한 근심으로 가득 차 있네요. 온 우주 공간을 채우듯이요. 이 얼마나 다정한 어버이 사랑이겠는지요? 
 
글 읽고 마음 목욕하는 블로그 '독서목욕'에서 박목월 시인님의 시 한 편을 더 읽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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