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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고 스미기

문태준 시 개복숭아나무 읽기

by 빗방울이네 2023. 8.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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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태준 시인님의 시 '개복숭아나무'를 만납니다. 알고 지내는 개복숭아나무가 있나요? 이 시를 읽고 나면 그 나무를 꼭 안아주고 싶을 겁니다. 함께 읽으며 마음을 맑히며 독서목욕을 하십시다.
 

1. 문태준 시 '개복숭아나무' 읽기

 
개복숭아나무
 
- 문태준(1970년 ~, 경북 김천)
 
아픈 아이를 끝내 놓친 젊은 여자의 흐느낌이 들리는 나무다
처음 맺히는 열매는 거친 풀밭에 묶인 소의 둥근 눈알을 닮아갔다
후일에는 기구하게 폭삭 익었다
윗집에 살던 어름한 형도 이 나무를 참 좋아했다
숫기 없는 나도 이 나무를 좋아했다
바라보면 참회가 많아지는 나무다
마을로 내려오면 사람들 살아가는 게 별반 이 나무와 다르지 않았다
 

- 문태준 시집 「맨발」(창비, 2004년 1쇄, 2005년 4쇄) 중에서
 

2. 왜 여자의 흐느낌이 들리는 나무일까요?

 
오늘 만나는 시 '개복숭아나무'는 문태준 시인님의 두 번째 시집 「맨발」에 실린 작품입니다. 어떤 시일까요?
 
시의 제목이 '개복숭아나무'이므로 열매보다는 그 열매를 맺고 키우는 '나무'를 떠올리면서 시를 만나봅니다.
 
아픈 아이를 끝내 놓친 젊은 여자의 흐느낌이 들리는 나무다

- 문태준 시 '개복숭아나무' 중에서

 
첫 행을 만나면서 어리둥절해집니다. 시인님, 개복숭아나무와 '아픈 아이를 끝내 놓친 젊은 여자'는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인가요? '아픈 아이를 끝내 놓친 젊은 여자'의 슬픔은 참혹한 슬픔이네요. 그런 여자의 흐느낌이 이 나무에서 들린다고 합니다. 이 나무에 무슨 일이 있는 걸까요?
 
처음 맺히는 열매는 거친 풀밭에 묶인 소의 둥근 눈알을 닮아갔다

- 문태준 시 '개복숭아나무' 중에서

 
개복숭아 열매를 보셨나요? 약간 옆으로 둥그런 모양인데 정말 소의 눈알처럼 생겼습니다. '거친 풀밭에 묶인 소'의 눈알이니, 거기서 슬픈 눈빛이 느껴지네요. 시인님이 개복숭아 풋열매를 보고 느꼈던 감정이 슬펐다는 말이겠지요. 왜 슬펐을까요?
 
후일에는 기구하게 폭삭 익었다

- 문태준 시 '개복숭아나무' 중에서

 
그 슬픈 느낌이 나는 열매가 나중에는 '기구하게 폭삭 익었다'라고 합니다. 험하고 허망하게 익어버렸네요. 험하고 허망한 까닭은 아무도 이 열매를 거들떠보지 않았기 때문이네요. 이 열매는 작고 볼품없는 열매이니까요. 그래서 이름조차 개복숭아였네요. 어디 팔려가지도 못하고 나무에 오래도록 달려있다가 저 홀로 익어 저절로 나무 아래로 툭 떨어지고 말았네요.
 
이제야 우리는 이 나무에서 '아픈 아이를 끝내 놓친 젊은 여자의 흐느낌'이 들린다고 한 이유를 알겠네요. 열매는 아무 쓰임도 없이 폭삭 익어버렸던 것입니다.
 
윗집에 살던 어름한 형도 이 나무를 참 좋아했다

- 문태준 시 '개복숭아나무' 중에서

 
참 반갑네요. 어름하다는 말! 빗방울이네가 자란 경상도 지방에서 사용하는 말입니다. '어리숙하다'는 의미인데, 그런데 '어리숙하다'로는 표현할 수 없는 어떤 착함이 묻어있는 말이라고 할까요? 자신의 잇속을 잽싸게 챙기지 못해 항상 2등을 하면서도 그걸 힘들어하지 않고 빙그레 웃어넘기는 그런 사람에게 어울린달까요? 그런 '어름한 형', 주위에 꼭 있어요. 그런데 이런 '어름한 형'이 없다면 우리네 삶은 너무 빡빡할 것만 같네요. '어름한 형'은 우리네 '삶의 빈터' 같은 사람이라고 할까요?
 
숫기 없는 나도 이 나무를 좋아한다

- 문태준 시 '개복숭아나무' 중에서

 
'어름한 형'이 좋아했다는 이 나무를 '숫기 없는 나도' 좋아한다고 하네요. 시의 화자인 '나'는 부끄러움이 많은 사람이네요. 다른 사람 앞에 나서지 못하고 항상 뒷줄에 있는 사람일까요? 구석에 있어도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요. 
 
'어름한 형'이 좋아하고, '숫기 없는 나'가 좋아하는 이 나무, 개복숭아나무입니다. 그러니 이 세 주체는 모두 비슷비슷한 처지라는 것이네요. 크게 자랑할 것 없는, 그저 소소한 생(生)이라고 할까요? 
 

문태준시개복숭아나무중에서
문태준 시 '개복숭아나무' 중에서.

 

 

 

3. 개복숭아나무를 안아주어야겠어요!

 
바라보면 참회가 많아지는 나무다

- 문태준 시 '개복숭아나무' 중에서

 
그리하여 시의 화자는 개복숭아나무의 생(生)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군요. '개복숭아나무'라는 이름은 인간의 욕망이 명명(命名)한 것입니다. '개~'는 '야생 상태의' '질이 떨어지는' '흡사하지만 다른'의 의미를 더하는 접두사입니다. '헛된' '쓸데없는'의 뜻도 있습니다. 
 
인간이 없는 자연에서라면 이 작은 열매를 맺는 복숭아나무는 그저 때가 되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한그루의 자연스러운 복숭아나무일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인간의 욕망에 따라 사물의 귀함과 천함을 재단합니다. 자기에게 좋으면 탐하고, 별 소용이 없으면 외면하고 무시합니다. 그러면서 얼마나 많은 소중함들이 소외되겠는지요?
 
마을로 내려오면 사람들 살아가는 게 별반 이 나무와 다르지 않았다

- 문태준 시 '개복숭아나무' 중에서

 
시의 화자는 개복숭아나무에 우리의 삶을 비추어보고 있습니다. 우리도 '살아가는 게 별반 이 나무와 다르지 않았다'라고 하네요. 개복숭아나무처럼 우리네 삶도 평범하거나 또는 모자라고 어리숙하더라고 하네요. 실수와 실패 투성이고요, 기구하게 폭삭 익어버리는 일도 많고요. '어름한 형'처럼요, '숫기 없는 나'처럼요. 그대는 어떤가요?
 
아, 어서 개복숭아나무를 보러 가야겠어요! 소의 눈알처럼 둥근 열매를 달고 서 있겠지요? 작고 볼품없어도 괜찮다고 말해주어야겠어요! 수고했다고, 다정히 안아주어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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