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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고 스미기

백석 시 칠월 백중 읽기

by 빗방울이네 2023. 8.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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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 시인님의 시 '칠월 백중'을 만납니다. 여름휴가에 대한 시입니다. 그대도 여름휴가를 보내셨나요? 옛사람들의 휴가에서 우리는 무엇을 생각할 수 있을까요? 함께 읽으며 마음을 맑히며 독서목욕을 하십시다.

1. 백석 시 '칠월(七月) 백중' 읽기


칠월(七月) 백중
 
- 백석(1912~1995, 평북 정주 출생)
 
마을에서는 세불 김을 다 매고 들에서
개장취념을 서너 번 하고 나면
백중 좋은 날이 슬그머니 오는데
백중날에는 새악시들이
생모시치마 천진푀치마의 물팩치기 껑추렁한 치마에
쇠주푀적삼 항라적삼의 자지고름이 기드렁한 적삼에
한끝나게 상나들이옷을 있는 대로 다 내 입고
머리는 다리를 서너 켜레씩 드려서
시뻘건 꼬둘채댕기를 삐뚜룩하니 해 꽂고
네날백이 따배기신을 맨발에 바꿔 신고
고개를 몇이라도 넘어서 약물터로 가는데
무썩무썩 더운 날에도 벌길에는
건들건들 씨연한 바람이 불어오고
허리에 찬 남갑사 주머니에는 오랜만에 돈문이 들어 즈벅이고
광지보에서 나온 은장두에 바눌집에 원앙에 바둑에
번들번들하는 노리개는 스르럭스르럭 소리가 나고
고개를 몇이라도 넘어서 약물터로 오면
약물터엔 사람들이 백재일 치듯 하였는데
봉가집에서 온 사람들도 만나 반가워하고
깨죽이며 문주며 섭가락 앞에 송구떡을 사서 권하거니 먹거니 하고
그러다는 백중물을 내는 소내기를 함뿍 맞고
호주를하니 젖어서 달아나는데
이번에는 꿈에도 못 잊는 봉가집에 가는 것이다
봉가집을 가면서도 칠월(七月) 그믐 초가을을 할 때까지
평안하니 집살이를 할 것을 생각하고
애끼는 옷을 다 적시어도 비는 씨원만 하다고 생각한다 

- 「정본 백석 시집」(백석 지음, 고형진 엮음, 문학동네, 2007년 1쇄, 2019년 32쇄) 중에서

2. 백중날 차려입고 가는 곳은?


백중은 '정월대보름', '추석'과 함께 우리 민족의 3대 명절로 음력 7월 15일을 말합니다. 공들여 농사를 지어놓고 곡식이 자라는 사이 잠시 쉴 수 있는 시간입니다. 농민들에게 황금휴가인 셈인데요, 시 ‘칠월 백중’은 농민들의 흥겨운 휴가 풍경을 보여주고 있네요. 이 시를 야금야금 음미하면서 지친 우리도 함께 그 휴가에 참여해 봅시다.

마을에는 세불 김을 다 매고 들에서 / 개장취념을 서너 번 하고 나면 / 백중 좋은 날이 슬그머니 오는데

- 백석 시 ‘칠월 백중’ 중에서


처서가 지나면 풀도 자라기를 멈춥니다. 이 즈음, 벼를 심은 논에 세 번째의 마지막 김매기를 했네요. 그게 ‘세불 김’입니다. 한여름에 빠졌던 원기를 돋우기 위해 여럿이 돈을 걷어(추렴) 보신탕을 먹었네요. 서너 번이나요. 이웃 친지들과 냇가에 커다란 솥을 걸어놓고 냇물에 발 담그고 보신탕 한 그릇 먹고 노래하고, 또 한 그릇 먹고 목욕하는 정다운 풍경이 눈에 보이는 것만 같습니다.

백중날에는 새악시들이 / 생모시치마 천진푀치마의 물팩치기 껑추렁한 치마에
쇠주푀적삼 항라적삼의 자지고름이 기드렁한 적삼에 / 한끝나게 상나들이옷을 있는 대로 다 내 입고
머리는 다리를 서너 켜레씩 드려서 / 시뻘건 꼬둘채댕기를 삐뚜룩하니 해 꽂고
네달백이 띠배기신을 맨발에 바꿔 신고 / 고개를 몇이라도 넘어서 약물터로 가는데

- 백석 시 ‘칠월 백중’ 중에서


백중 휴가 때는 여인들이 쫙 꾸미는 날이군요. 중국 천진이나 소주에서 생산된 베(포)로 만든 치마와 저고리로 멋을 냈네요. 중국산이 고급이던 시절입니다. 거기 자줏빛 옷고름도 기다랗게 늘였네요. 우리도 좋은 곳에 갈 때 입으려고 아껴놓은 옷, ‘상나들이 옷을 있는 대로 다 내 입고’ 함께 백중 휴가를 갑시다.

참, ‘물팩치기’는 무릎까지 내려온다는 뜻인데요, 경상도에서도 무릎을 ‘무르팍’ ‘물팍’이라고 발음하기도 합니다. 평북 정주가 고향인 백석 시인님과 경상도가 고향인 빗방울이네가 이렇게 같은 말을 사용하고 있었네요. 왠지 정다운 느낌이네요.

이리 곱게 차려입은 여인들 ‘헤어’ 좀 보셔요. 머리숱 많아 보이게 다리(딴머리)를 서너 개씩이나 받쳐 넣고 빨간 댕기를 꽂았고요, 평소 안 신는 곱게 삼은 고급스러운(?) 짚신(띠배기신)도 신었다네요. 이렇게 마을 색시들이 한껏 멋을 부려 가는 곳, 시내 ‘클럽’일까요? 약물터라네요. 동네사람들의 소통과 교류의 공간 약수터 말입니다. 이 얼마나 정다운지요.

무썩무썩 더운 날에도 벌길에는 / 건들건들 씨연한 바람이 불어오고
허리에 찬 남갑사 주머니에는 오랜만에 돈문이 들어 즈벅이고
광지보에서 나온 은장두에 바눌집에 원앙에 바둑에
번들번들하는 노리개는 스르럭스르럭 소리가 나고
고개를 몇이라도 넘어서 약물터로 오면

- 백석 시 ‘칠월 백중’ 중에서


음력 7월 15일이면 양력으론 8월 말쯤이네요. 더운 공기 속에 시원한 바람이 들어있는, 여름과 가을이 임무교대를 서로 니밀락내밀락 하는 시간입니다.

그대도 백중 휴가비 좀 챙겼나요? 이 여인들도 남색의 고급비단(남갑사) 주머니에 오랜만에 휴가비를 두둑이 넣어 동전들이 즈벅즈벅 소리를 내고 있네요.

여인들의 광주리 보자기(광지보)에서 나온 노리개들 좀 보셔요. 은장도와 바늘집(이런 것도 챙겼네요!), 수놓은 원앙과 바둑 노리개를 들고 다녔네요. 핸드폰은 안 보여요.

백석시칠월백중중에서
백석 시 '칠월 백중' 중에서.

 

 

 

3. 백중날 축제의 대미는 옷 다 젖어 시원한 ‘흠뻑쇼’


약물터엔 사람들이 백재일 치듯 하였는데 / 봉가집에서 온 사람들도 만나 반가워하고
깨죽이며 문주며 섭가락 앞에 송구떡을 사서 권하거니 먹거니 하고
그러다는 백중물을 내는 소내기를 함뿍 맞고 / 호주를하니 젖어서 달아나는데

- 백석 시 ‘칠월 백중’ 중에서


약물터에 흰 옷 입은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어요. 멀리서 본 그 풍경이 마치 햇빛 가리려고 하얀 천(백차일)을 공중에 친 것처럼 보인다네요.
‘봉가집’은 ‘본가집’을 말합니다. 시집갈 때까지 살던 친정집입니다.
 
백중날엔 신경통에 좋다고 물맞이를 하려고 약물터에 모입니다. 그래서 친정집 사람들과도 오랜만에 만났네요. 얼마나 반가울까요?

이런 축제에 먹거리가 빠질 수 없죠. 문주는 부꾸미인데 팥을 넣은 반달모양의 떡입니다. 섭가락은 쇠고기를 다져 구운 산적일까요? 송구떡은 송진을 우려낸 소나무 속껍질로 만든 떡입니다. 이렇게 소나무 속껍질까지 먹었던 시절이 우리에게 있었습니다.

이렇게 먹고 마시는 축제의 대미는 물맞이네요. 소나기 같은 물을 후줄근하게 맞고 사람들은 흩어지네요. 문득, 관중들에게 사방에서 물을 뿌리는 싸이 가수님의 독창적인 콘서트 ‘싸이 흠뻑쇼’를 연상케 하는 장면입니다.

이번에는 꿈에도 못 잊는 봉가집에 가는 것이다 / 봉가집을 가면서도 칠월(七月) 그믐 초가을을 할 때까지
평안하니 집살이를 할 것을 생각하고 / 애끼는 옷을 다 적시어도 비는 씨원만 하다고 생각한다 

- 백석 시 ‘칠월 백중’ 중에서


이제 편안한 친정집에 갑니다. 시가집의 농사일과 시집살이에서 벗어나 친정집에서 휴가를 보내려고요. 얼마나 홀가분하겠는지요? 집살이는 ‘방콕’을 말하겠지요? 아무 일도 안 하고 집안에서 오랜만에 엄마 아빠의 울타리 안에서 편안하게 뒹굴거리는 모습이 연상되네요. 어리광도 부리면서요. 칠월 보름(백중)에서 칠월 그믐(초가을걷이)까지 15일 동안의 휴가네요.

이런 꿀맛 같은 휴가를 생각하니 내 가장 아끼던 ‘상나들이 옷’이 다 젖는다 해도 그게 무슨 대수이리오. 이리 온몸 흠뻑 젖어야 친정집에 갈 수 있다면 백번도 더 맞으리!

가난이란 무얼까요? 약수터 축제에 참석하려고 '상나들이 옷'을 꺼내 입고, 온갖 노리개(바늘집까지!) 다 챙기고, 평소 잘 못 먹던 맛있는 음식(소나무 속껍질 떡까지!) 먹고, 신경통에 좋다는 물을 흠뻑 맞으며 시원하다고 깔깔깔 흩어지는 사람들, ‘꿈에도 못 잊는’ 저마다의 둥지(친정집)로 가며 세상 다 얻은 듯 좋아하는 여인들, 과연 이 사람들이 가난한 걸까요?

이 시에 등장하는 옛사람들의 삶에서 속이 꽉 차오르는 느낌이 드는 것은 오늘의 삶이 허한 탓일까요? 가족들로부터, 공동체로부터, 자연으로부터 우리는 얼마나 멀리 와 있는 걸까요? 시인님이 묻고 있는 것만 같네요.

글 읽고 마음 목욕하는 블로그 ‘독서 목욕’에서 백석 시인님의 시를 더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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