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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고 스미기

이호우 시조 살구꽃 핀 마을

by 빗방울이네 2024. 4.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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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우 시인님의 시조 '살구꽃 핀 마을'을 만납니다. 저마다의 고향이 그리워지고 아름다운 추억에 젖게 되는 시조입니다. 함께 읽으며 마음을 맑히는 독서목욕을 하십시다.
 

1. 이호우 시조 '살구꽃 핀 마을' 읽기

 
살구꽃 핀 마을
 
이호우(1912~1970, 경북 청도)
 
살구꽃 핀 마을은 어디나 고향 같다
만나는 사람마다 등이라도 치고 지고
뉘 집을 들어서면은 반겨 아니 맞으리.
 
바람 없는 밤을 꽃그늘에 달이 오면
술 익는 초당마다 정이 더욱 익으려니
나그네 저무는 날에도 마음 아니 바빠라.
 

▷「현대시조 100인 선집」(이지엽 책임편집, 태학사, 2006년) 중에서

 

2. '뉘 집을 들어서면은 반겨 아니 맞으리'

 
'꽃이 피네 한 잎 한 잎 / 한 하늘이 열리고 있네'로 시작되는 시조 '개화', 잘 아시지요?
 
'개화'의 시인, 이호우 시인님의 또 다른 대표 시조 '살구꽃 핀 마을'을 만납니다.
 
이호우 시인님의 '살구꽃 핀 마을'은 어디일까요?
 
시인님의 고향은 경북 청도입니다.
 
운문사가 있고요, 씨 없는 감인 '반시(槃枾)'가 있고요, 와인터널도 있고요. ‘새마을운동’ 발상지이기도 하네요.
 
이호우 시인님의 동생 이영도 님도 시조 시인입니다.
 
그래서 청도는 이호우 이영도 오누이의 문학적 향기를 기려 '오누이 시조문학제'를 열고 있기도 합니다.
 
두 사람의 생가가 있는 청도읍 내호리에는 '시조공원'이 있고요, 거기에 이호우 시인님의 시조 '살구꽃 핀 마을', 이영도 시인님의 시조 '달무리' 시비가 있네요.
 
시인님의 고향, '살구꽃 핀 마을'로 함께 가봅시다.
 
'살구꽃 핀 마을은 어디나 고향 같다 / 만나는 사람마다 등이라도 치고 지고 / 뉘 집을 들어서면은 반겨 아니 맞으리'
 
살구꽃이 피었으니 4월인가 봅니다.
 
살구꽃은 연분홍이네요.
 
매화나 벚꽃처럼 생겼는데 언뜻 보면 잘 구분하기 힘들 정도랍니다.
 
왜 '살구꽃 핀 마을은 어디나 고향 같다'라고 했을까요?
 
시인님의 어린 시절을 뒤덮었던 고향의 꽃이 살구꽃이었네요.
 
어린 시절의 사물은 이처럼 강인하게 우리네 뇌리에 각인되나 봅니다.
 
그렇게 고향과 나와 연결된 살구꽃은 정말 친숙하고 다정해서 살구꽃을 보면 그 다정한 마음이 되살아나는 거네요.
 
그래서 그 살구꽃이 핀 마을이라면, 거기서 만나는 사람이라면 등이라도 치고 싶어 진다고 합니다.
 
고향사람 만난 듯 허물없이 등을 툭 치며 반가워 하는 장면이 동영상처럼 보이는 것만 같네요.
 
'뉘 집을 들어서면은 반겨 아니 맞으리'.
 
지금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 되어버리고 말았네요.
 
그러나 분명 우리에게 이런 날이 있었습니다.
 
이웃 간에 허물없이 지내던 시절요.
 
남의 집에 숟가락 숫자까지 알고 지내던 시절요.
 
저녁에 맛있는 봄나물 무치면 옆집에 한 접시 나눠주던 시절요.
 
저녁쌀이 떨어지면 옆집에 금방 달려가 빌려오던 시절요.
 
외출복이 마땅치 않으면 옆집 좋은 옷 빌려 입던 시절요.
 
그렇게 아무 집에나 불쑥 들어서도 반겨주는 시절!
 
이런 시간이 다시 올까요? 
 
정말 이런 시간이 다시 올까요?
 
시인님은 이런 시간을 간절히 그리워하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등이라도 치고 지고" - 이호우 시조 '살구꽃 핀 마을' 중에서.

 

 

 

3. '나그네 저무는 날에도 마음 아니 바빠라'

 
'바람 없는 밤을 꽃그늘에 달이 오면 / 술 익는 초당마다 정이 더욱 익으려니 / 나그네 저무는 날에도 마음 아니 바빠라'
 
앞의 1연이 낮이라면, 2연은 밤의 풍경입니다.
 
밤, 꽃그늘, 달, 술, 나그네!
 
이런 단어들은 얼마나 우리 마음을 뛰게 하는지요?
 
'바람 없는 밤', 아주 조용하고 편안한, 아무 걱정 없는 봄밤입니다.
 
'꽃그늘에 달이 오면'. 실제로는 환하게 달이 뜨니 꽃그늘이 생겼겠지만요, 그렇게 말하면 얼마나 심심하겠는지요?
 
'꽃그늘에 달이 오면'. 이 상황은 달이 살금살금 기어서 향기로운 꽃그늘로 온다는 이야기여서 우리는 얼마나 그 꽃그늘이 궁금해지겠는지요?
 
얼마나 우리는 그 꽃그늘로 가고 싶겠는지요?
 
이 조용한 봄밤의 살구꽃 그늘에서 벌어지고 말 일들로 인해 우리는 얼마나 설레겠는지요?
 
초가집(초당)마다 술이 익어가는 봄밤입니다.
 
술이 익어가고 정이 더욱 익어간다고 합니다.
 
술이 익어가면 마음도 푸근해지고 넉넉해진다고 합니다.
 
향기로운 술이 익어가는 시간, 무엇을 더 바라겠는지요?
 
등이라도 치고 싶은 정다운 사람만 옆에 있으면 되지 않겠는지요?
 
'나그네 저무는 날에도 마음 아니 바빠라'. 날은 저무는데 나그네는 마음이 하나도 바쁘지 않다고 하네요.
 
왜냐고요?
 
술이 익어가니까요. 
 
그런 술이 있는 아무 집에라도 들어서면 반갑게 맞아 줄 테니까요.
 
우리에게 이토록 다정한 시간이 있었네요.
 
이처럼 포근한 시간이 다시 올까요?
 
이런 꿈같은 시간이 우리에게요.
 
이 조용한 봄밤, 시인님은 살구꽃 달빛 그늘에서 한 잔 걸치셨을까요?
 
옛적 '살구꽃 핀 마을'의 시간을 애절하게 그리워하고 있네요.
 
우리도 저마다의 '살구꽃 핀 마을'을 떠올려봅니다.
 
이제는 갈 수 없는 그 시간과 공간, 우리 마음도 아릿해지네요.

이 봄밤, 어쩔 수 없는 우리 ‘술 익는 초당’으로 가야겠어요!
 
글 읽고 마음 목욕하는 블로그 '독서목욕'에서 이호우 시인님의 시 '개화'를 만나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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