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옥 시인님의 시조 '사향(思鄕)'을 만납니다. 고향을 그리워하는 애절한 마음이 담겨있는 시조, 저마다의 고향으로 데려다주는 시조입니다. 함께 읽으며 마음을 맑히는 독서목욕을 하십시다.
1. 김상옥 시조 '사향(思鄕)' 읽기
사향(思鄕)
김상옥(1920~2004, 경남 통영)
눈을 가만 감으면 구비 잦은 풀밭 길이
개울물 돌돌돌 길섶으로 흘러가고
백양(白楊) 숲 사립을 가린 초집들도 보이구요
송아지 몰고 오며 바라보던 진달래도
저녁노을처럼 산(山)을 둘러 퍼질 것을
어마씨 그리운 솜씨에 향그로운 꽃 찌짐!
어질고 고운 그들 멧남새도 캐어 오리
집집 끼니마다 봄을 씹고 사는 마을
감았던 그 눈을 뜨면 마음 도로 애젓하요
▷「김상옥 시선」(김상옥 지음, 최종환 엮음, 지식을만드는지식, 2012년) 중에서
김상옥 시인님은 1920년 경남 통영 출신으로 1939년 「문장」지에 시 '봉선화'가 이병기 님의 추천으로 당선되고, 동아일보 시조공모에 '낙엽'이 당선되면서 문단에 데뷔했습니다.
1947년 첫 시조집 「초적(草笛)」을 출간한 것을 비롯 시집 「고원(古園)의 곡(曲)」, 「이단(異端)의 시(詩)」, 「의상(衣裳)」, 「목석(木石)의 노래」, 「삼행시육십오 편」, 「묵(墨)을 갈다가」, 「향기 남은 가을」, 「느티나무의 말」 등이, 시조선집 「촉촉한 눈길」, 동시집 「석류꽃」, 「꽃 속에 묻힌 집」 등이, 산문집 「시와 도자」 등이 있습니다.
통영문인협회장 등을 역임했고, 충무시문화상, 삼양문화상 등을 수상했습니다.
2. 첫 창작집의 첫 시조는 '사향(思鄕)'
김상옥 시인님의 시조 '사향(思鄕)'은 1947년에 나온 시인님의 첫 창작집 「초적(草笛)」에 실린 작품입니다.
이 시조집의 첫 시조로 실려 있습니다.
1939년에 「문장」지를 통해 데뷔한 지 8년 만에 낸 첫 창작집의 첫 작품으로 고향을 애절하게 그리워하는 시로 장식해 두었네요.
우리도 시인님처럼 눈을 감고 저마다의 고향으로 들어갑니다.
'눈을 가만 감으면 구비 잦은 풀밭 길이 / 개울물 돌돌돌 길섶으로 흘러가고 / 백양(白楊) 숲 사립을 가린 초집들도 보이구요'
이런 정경의 마을을 고향으로 가진 이라면 얼마나 행복할까요?
시인님은 눈을 감고 고향을 떠올리면, 구불구불한 풀밭길이 먼저 보이나 봅니다.
그런 풀밭길 옆(길섶)을 따라 나 있는 작은 개울에는 개울물 흐르는 소리가 돌돌돌 들리고요.
그 개울에서 개구리를 성가시게 하며 놀다가 물뱀을 만나 놀라기도 했겠지요?
백양나무는 키가 큽니다. 시인님의 고향은 그런 백양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마을이네요.
이 나무들이 대문(사립)을 가려주어서 편안한 초가집(초집)들이 옹기종기 앉은 마을이네요.
'초집들도 보이구요'. '보이구요'라는 구절에서 우리는 두 손을 앞으로 모으게 되네요.
지금 고향을 그리는 시인님은요, 고향의 품이 너무 그리운 아이인 것만 같습니다.
3. '어마씨 그리운 솜씨에 향그로운 꽃 지짐!'
'송아지 몰고 오며 바라보던 진달래도 / 저녁노을처럼 산(山)을 둘러 퍼질 것을 / 어마씨 그리운 솜씨에 향그로운 꽃 찌짐!'
한창 진달래가 피어나는 봄날이네요.
진달래가 저녁노을처럼 산을 둘러 퍼진다는 시인님의 발견에 박수를 보내고 싶네요.
그래서 붉은빛을 머금은 진달래꽃과 저녁노을이 겹쳐져서 우리는 봄산의 몽환적인 분위기에 젖게 되네요.
'꽃 찌짐!'.
느낌표(!)까지 딱 찍었네요.
얼마나 간절히 그리운 '어마씨' 맛이겠는지요.
'어머니'의 방언인 '어마씨'를, '지짐이'의 방언인 '찌짐'을 써서 고향 말투 가득한 정겨운 공간에 있는 듯한 느낌입니다.
'어마씨'가 들기름에 부쳐주는 그 '향그로운 꽃 찌짐'은 진달래꽃 찌짐이었을까요?
'어질고 고운 그들 멧남새도 캐어 오리 / 집집 끼니마다 봄을 씹고 사는 마을 / 감았던 그 눈을 뜨면 마음 도로 애젓하요'
산나물(멧남새)은 봄의 선물입니다.
취나물, 냉이, 달래, 산두릅, 엉개순, 제피순, 뽕잎, 가죽나물 ···
그 추운 겨울을 견뎌낸 산나물이니 거기에는 얼마나 좋은 힘이 가득하겠는지요?
'집집 끼니마다 봄을 씹고 사는 마을'
끼니마다 보약 같은 취나물, 냉이, 달래, 산두릅, 엉개순, 제피순, 뽕잎, 가죽나물 같은 '멧남새'를 '씹고 사는 마을'이라고 합니다.
'어질고 고운 그들'이 캐온 '멧남새'라고 합니다.
그렇게 '끼니마다' '멧남새'를 씹으며 자연과 하나 되어 살았으니 고향사람들은 '멧남새'처럼 어질고 고와졌을까요?
'감았던 그 눈을 뜨면 마음 도로 애젓하요'에서 '애젓하요'가 가슴을 울리네요.
'애젓하다'는 말은 국어사전에 없는 말입니다.
이 또한 시인님의 고향말이겠지만, 우리는 이 구절에서 견디기 어렵도록 애가 타는, '애절한' 시인님의 마음을 다 느낄 수 있겠네요.
그런데요, '애젓하오'가 아니고 '애젓하요'입니다.
이 구절을 여러 번 읽다 보면, '애젓하요'는 '애젓하오'보다 더 '애젓한' 느낌이랄까요?
'애젓하요'.
가고 싶지만 갈 수 없는 고향을 애절하게 그리워하는 시인님의 표정은 '애젓하요'에 이르러 조금은 울먹이는 표정이랄까요?
그 마음은 시조 '사향(思鄕)'을 읽고 고향에 가고 싶어진 우리네 마음이기도 하겠지만요.
언제나 그리운 우리 마음속 고향을 이렇게 정답게 복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시인님!
글 읽고 마음 목욕하는 블로그 '독서 목욕'에서 봄에 대한 시를 더 만나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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