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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고 스미기

이조년 시조 다정가 이화에 월백하고

by 빗방울이네 2024. 4.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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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조년 님의 시조 '이화에 월백하고'를 만납니다. 제목이 '다정가(多情歌)'로 알려진 옛시조입니다. 함께 읽으며 마음을 맑히는 독서목욕을 하십시다.
 

1. 이조년 시조 '다정가' 읽기

 
다정가(多情歌)
 
이조년(李兆年, 1268~1342)
 
이화(梨花)에 월백(月白)하고 은한(銀漢)이 삼경(三更)인제
 
일지춘심(一枝春心)을 자규(子規)야 알랴마는 
 
다정(多情)도 병(病)인 양하여 잠 못 들어하노라 
 

▷「청구영언(靑丘永言) 해의(解義)-상(上)」(김영호 편저, 삼강문화사, 1994년) 중에서

 

2. 고려시조의 백미 '다정가(多情歌)'에 담긴 뜻은?

 
고려시조 가운데 문학성이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는 고(古) 시조 한 수를 만납니다.
 
고려시대 명신(名臣)이며, 대학자(大學者)인 이조년(李兆年, 1268~1342) 님의 작품입니다.
 
제목이 '다정가(多情歌)'로 알려진 시조입니다.
 
우리 선인들이 남긴 고전 시조집의 하나인 「청구영언(靑丘永言)」에 실려 전해진 작품입니다.
 
「청구영언」은 1728년 영조 4년에 김천택(金天澤) 님이 구전으로 전승되고 있던 고시조들을 발굴해 모은 책입니다. 
 
「청구영언(靑丘永言)」에는 이 작품의 제목이 따로 없습니다.
 
후대에 이 작품의 마지막 결구에 등장하는 ‘다정(多情)’이라는 글자를 제목으로 취해서 '다정가(多情歌)'로 붙여진 것으로 보입니다.
 
시조 속으로 들어갑니다.
 
'이화(梨花)에 월백(月白)하고'
 
이화(梨花)는 배꽃, 월백(月白)은 달이 환하게 비친다는 의미입니다.
 
'白'은 '희다, 깨끗하다'의 뜻과 함께 '밝다, 밝아지다, 빛나다' 등의 뜻이 있습니다.
 
그러니 '이화(梨花)에 월백(月白)하고'는 하얀 배꽃에 달이 비춰 주위가 온통 하얗다는 말이겠습니다.
 
이로 보아 지금은 봄밤입니다.
 
그것도 달밤입니다.
 
하얀 배꽃이 만발하고 눈부신 달빛도 가득하여 아주 환한 봄날의 달밤이네요.
 
이런 봄밤에 어찌 잠을 이룰 수 있겠는지요.
 
'은한(銀漢)이 삼경(三更)인제'
 
'은한(銀漢)'이 무슨 말일까요?
 
은 '銀'에 한수 '漢'입니다. 이 '漢'에 '한수, 한나라, 물의 이름' 등의 뜻이 들어있습니다.
 
그러니 물의 이름 '漢'자를 쓴 '은한(銀漢)'은 물 '河'를 쓴 '은하(銀河)'와 글자 구성이 같네요.
 
바로 '은한(銀漢)'은 '은하(銀河)', 즉 '은하수(銀河水)'를 말합니다.
 
'삼경(三更)'은 하룻밤을 오경(五更)으로 나눈 셋째 부분, 즉 밤 열한 시에서 새벽 한 시 사이를 말합니다.
 
그러면 삼경(三更)은 아주 '한밤중'을 말하네요.
 
'은한(銀漢)이 삼경(三更)인제'는 무슨 뜻일까요?
 
'은하수를 보니 아주 한밤중이더라'라는 말이네요.
 
이 시가 쓰인 때는 고려시대, 지금으로부터 700여 년 전입니다. 
 
그 시대의 밤에는 은하수의 위치를 보아 시(時)를 가늠하였네요.
 
몇 시 몇 분 몇 초까지는 아니었겠지만, 대강의 시간을 알아차렸겠네요.
 
'밤하늘 은하수의 위치를 보아하니 지금은 삼경 즈음이구나'라고요.
 
분초를 다투며 살아가는 우리도 이 대목에서 참으로 느릿느릿 여유롭고 또 여유롭네요. 
 
지은이는 지금 달밤에 봄밤에 뜰에 나왔습니다.
 
뒷짐을 지고 뜰을 거닐고 있었을까요? 하얀 배꽃이 피었고요, 배꽃에 쏟아지는 달빛이 환상적이네요.
 
지금 몇 시쯤이 되었나? 하며 시간이 궁금해 스마트폰이 아니라 밤하늘을 올려다봅니다.
 
은하수의 흐름으로 보아 삼경이라고 합니다.
 
이 한밤중에 지은이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네요.
 
만물에 연둣빛 물이 오르는 봄날, 누구라도 잠을 이룰 수 있겠는지요.
 
'일지춘심(一枝春心)을 자규(子規)야 알랴마는'
 
'일지춘심(一枝春心)'은 글자 그대로라면 '한 가지에 서린 봄의 마음' 정도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 구절은 뒤의 구절과 연동해 읽어야 제뜻이 드러나겠습니다.
 
'자규(子規)야 알랴마는'. '자규(子規)'는 두견이, 또는 접동새라고도 합니다. 
 
이 새의 울음소리는 하도 구슬퍼서 외로움과 한(恨), 슬픔의 상징 소재로 예로부터 문학작품 속에 자주 등장합니다.
 
'일지춘심(一枝春心)을 자규(子規)야 알랴마는'
 
두견이가 '일지춘심(一枝春心)'을 알고 그리 구슬피 울겠느냐는 의미로 다가오네요.
 
'일지춘심(一枝春心)'을 두견이도 모른다는 말입니다.
 
두견이도 내 마음을 모른다는 의미로 다가오네요. 
 
그러니 '일지춘심(一枝春心)'은 지은이 마음속에 일고 있는 한 자락 애틋한 춘심(春心)을 말하겠습니다.
 
그 '춘심(春心)'은 연인 간의 사랑일 수도 있고, 형제나 친구 간 우애, 부모에 대한 효심, 군주에 대한 충정심, 또는 나라의 현실을 걱정하는 애국심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 '춘심(春心)'을 '두견이가 알고 그리 처절하게 울겠느냐'라는 맥락에서 보면, 그 춘심(春心)은 두견이 울음소리처럼 슬프고 외롭고 고독한 화자의 마음이겠습니다.
 

"다정도 병" - 이조년 시조 '다정가' 중에서.

 

 

3. 봄날에 달밤에 한밤중에 그대는 무얼 하시나요?

 
봄날에 달밤에 한밤중에 화자는 이렇게 슬픔과 고독 속에서 하얀 배꽃이 만발한 뜰을 서성이고 있네요.
 
'다정(多情)도 병(病)인 양하여 잠 못 들어하노라' 
 
'다정(多情)'은 글자 그대로 정(情)이 많고 정분(情分)이 두터운 것을 말합니다.
 
'다정(多情)도 병(病)'. 정이 많고 정분이 두터운 것도 병이라는 하네요.
 
이 말, 참으로 공감이 가는 말입니다.
 
우리는 '이 놈의 정(情)' 때문에 얼마나 속을 끓이게 되는지요.
 
좀 무심(無心)하면 좋으련만요.
 
좀 한 발작 건너 넌지시 지켜보면 얼마나 좋으련만요.
 
나는 어쩌자고 다정(多情)하여 혼자 속을 끓이고 또 끓이는지요.
 
'님'은 이 밤 까맣게 나를 잊고 두발 길게 뻗고 잘 자고 있을 텐데요.
 
나는 어쩌자고 이리 혼자 애를 태우며 이 봄밤 고독하게 뜰을 서성이고 있는지요.
 
'다정(多情)도 병(病)인 양하여 잠 못 들어하노라' 
 
'병(病)인 양하여'는 '병(病)인 듯하여'로 새깁니다.
 
다정(多情)도 병(病)인 듯하여 잠을 못 이룬다고 하네요.
 
이 말은 자신의 정(情) 많은 여린 성격이 늘 문제라고 스스로 한탄하는 뉘앙스로 다가옵니다.
 
언제나 무르고 다정(多情)한 그대도 이 봄밤 잠 못 들어하겠지요?
 
글 읽고 마음 목욕하는 블로그 '독서목욕'에서 봄밤의 또다른 정취를 만나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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