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읽고 쓰고 스미기

김소월 시 엄마야 누나야

by 빗방울이네 2024. 7. 9.
반응형

김소월 시인님의 시 '엄마야 누나야'를 만나봅니다. 한없이 밝고 평화로운 곳으로 우리를 데려가주는 시입니다. 함께 읽으며 마음을 맑히는 독서목욕을 하십시다.

 

1. 김소월 시 '엄마야 누나야' 읽기

 

엄마야 누나야

 

김소월(1902~1934, 평북 정주 곽산)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빛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소월의 명시」(김소월 지음, 한림출판사, 1978년) 중에서

 

2. 20세 김소월 시인의 간절한 심정이 담긴 애틋한 시

 

김소월 시인님의 시 '엄마야 누나야'는 1922년 1월 「개벽」에 발표된 시입니다. 시인님 20세 즈음이네요.

 

시인님은 어릴 때 아버지를 여의었습니다. 아버지는 일본인들로부터 불의의 폭행을 당한 이후 정신이상증세를 보였고, 안타깝게도 결국 사망에 이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시인님은 어린 시절 광산업을 하던 할아버지 집에서 자라게 됩니다.

 

시인님은 할아버지의 주선으로 14세의 어린 나이에 결혼을 하게 되고, 오산학교 다닐 때 교제하던 여성이 사망하게 되는 불행을 겪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시인님은 1922년 4월 서울의 배재고동보통학교에 편입했는데, 그 전까지 평북 정주의 오산학교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엄마야 누나야'는 서울로 오기 직전 오산학교 재학시절에 쓴 시네요. 일제강점기라는 고통의 시간 속에 안타깝게 무너져버린 가족, 그 삶의 우여곡절 끝에 나온 시네요.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그 배경을 알고 나니 이 첫번째 행이 가슴 깊이 들어오네요.

 

이 시의 화자는 물론 시인님일 텐데요, 아이입니다. 

 

이 첫행에 아버지는 보이지 않네요. 아주 어릴 때부터 시인님의 머릿속에 아버지는 지워진 존재였을까요? 이 첫 행을 읽고, 아버지라는 존재를 모르고 자랐을 소년 김소월의 처지가 애틋하기만 하네요.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시의 화자인 아이는 어리광부리듯 조르는 듯 말하네요. 강변에 가고 싶다고요. 지금의 공간을 훌쩍 벗어나 조용한 강변에 가서 살고 싶다고요. 일제강점기의 시간, 아이에게도 지금 살고 있는 공간이 괴로운 공간입니다. 엄마랑 누나랑 잘 만나지도 못하는 외로운 시간입니다.

 

우리도 그런 아이가 되네요. '어머니'가 아니라 '엄마야'라고, '누님'이 아니라 '누나야'라고 아이 말투로 부르는 그런 천진난만한 아이가 되네요. '강변 살자'. 그렇게 반말을 하면서 양어깨를 앞뒤로 어긋 지게 흔들어대며 보채는 그런 순진무구한 아이가 되네요.

 

'강변 살자'. 이 구절은 짧지만 참 많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네요. 그 뜻은 '강변에 가서 살자'일텐데요, '강변 살자'는 그런 뜻보다 더 깊은 의미를 생각하게 합니다. 강과 함께, 강을 닮아가며, 강이 되어가는 삶이랄까요?

 

빗방울이네도 삭막한 아파트 콘크리트숲에서 어서 벗어나 그 '강변'으로 가고 싶네요. 그 강변에서 강과 함께, 강을 닮아가며, 강이 되어 살고 싶네요. 누구라도 그렇지 않겠는지요? 

 

"엄마야-누나야"-김소월-시-'엄마야-누나야'-중에서.
"엄마야 누나야" - 김소월 시 '엄마야 누나야' 중에서.

 

 

 

3. 소망은 오로지 가족과 함께 평화롭게 사는 것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빛 /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우리도 눈을 감고 시 속의 아이가 그리워하는 강변을 떠올려 봅니다. 아이가 엄마랑 누나랑 살고 싶다는 그 강변요.

 

아이의 집 앞은 바로 강이 흐르고요, 그 강변에는 햇빛에 반짝이는 금빛 모래가 있고요, 갈댓잎들이 바람에 흔들리며 내는 소리가 서걱서걱 들려옵니다. 한 폭의 평화로운 수채화 같습니다. 무겁고 강렬한 색이 없는 가볍고 맑고 투명한 수채화요. 

 

시인님은 아이의 눈을 통해 우리에게 말합니다. 시인님이 바라는 것을요. 시인님이 바라는 것은 부(富)와 권력이 아닙니다. 시인님이 바라는 것은 일제의 압제를 벗어나 오로지 가족과 함께 평화롭게 사는 것입니다. 엄마와 누나와 강변에서 단란하게 사는 것, 그리고 금모래와 갈잎과 더불어 사는 것입니다. 

 

뺏고 빼앗기는 관계 속의 타인은 얼마나 많은 상처와 괴로움을 주는 존재인지요? 이기적이고 탐욕적인 그런 존재보다 말 없는 금모래나 갈대가 더 낫겠지요? 시인님은 그런 심정이었겠지요? 사람보다 자연의 사물들이 시인님에게 더 깊은 위로와 사랑을 주는 존재였을 거라고 생각 하니 가슴이 저려오네요.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시의 화자인 아이의 마음으로 이 구절을 다시 읽어봅니다. 늙지 않고 마음 깊은 곳에 있는 동심으로 읽어봅니다. 아이가 되어 엄마와 누나에게 조르는 마음으로요.

 

꿈 속인 것만 같이 환하고 따뜻한 강변의 풍경이 보이네요. 강변에 집이 있고요, 장독간의 엄마는 장독 속에 한쪽 팔을 넣고 있고요, 누나는 마당에 빨래를 널고 있고요, 강아지는 꼬리를 흔들며 나에게로 달려오고 있네요. 강변에는 모래가 햇빛에 반짝거리고요, 뒤뜰에는 갈잎이 서걱이고요. 아, 평화롭네요. 먹먹해지다 환해지네요. 

 

이렇게 우리 모두의 간절한 소망은 오로지 가족과 함께 평화롭게 사는 것이겠지요?

 

PS.

 

'엄마야 누나야'는 강가에 서면 저절로 흥얼거려지는 '노래'이기도 합니다. 김소월 시인님(1902~1934, 평북 정주)의 시에 안성현 작곡가님(1920~2006, 전남 나주)이 곡을 붙인 것입니다. 작곡 시기는 해방 직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안성현 작곡가님은 일본 도쿄 도호음악학교에 유학하고 전남여중, 광주사범, 조선대 등에서 음악을 가르쳤습니다. 함흥에 이주해 살던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한국전쟁 때 북으로 갔다가 인천상륙작전으로 길이 막혀 다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월북 음악가라는 이유로 오랫동안 '엄마야 누나야'의 작곡가가 누구인지 잘 알려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2009년 뒤늦게 안성현 작곡가님의 음악적 업적을 기리는 노래비 '엄마야 누나야'가, 유년시절 그가 뛰놀았던 고향 전남 나주 남평 드들강변(지석강)에 세워졌습니다. 86세의 일기로 북에서 작고하기까지 남쪽 고향의 드들강변을 얼마나 그리워했을까요? 자신이 곡을 붙인 '엄마야 누나야'를 얼마나 많이 불러보았을까요? 나직하게요.

 

글 읽고 마음 목욕하는 블로그 '독서목욕'에서 김소월 시인님의 시를 더 만나 보세요.

 

김소월 시 금잔디 읽기

김소월 시인님의 시 '금잔디'를 만납니다. 이 시 속에는 어떤 삶의 통찰이 숨겨져 있을까요? 시인님이 건네주는 다정한 위로 속에 우리의 마음을 담가 흔들어 씻으며 함께 독서목욕을 하십시다.

interestingtopicofconversation.tistory.com

반응형

'읽고 쓰고 스미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주요한 시 불놀이  (95) 2024.07.11
정태춘 박은옥 노래 봉숭아  (91) 2024.07.10
김상옥 시조 봉선화  (104) 2024.07.08
이육사 시 황혼  (89) 2024.07.04
김영랑 시 내 마음을 아실 이  (82) 2024.07.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