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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고 스미기

윤동주 시 참회록

by 빗방울이네 2023. 11.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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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시인님의 시 '참회록'을 만납니다. 이 시의 자필 원고에는 시인님의 낙서가 많습니다. 이 시를 쓸 때의 시인님 마음을 느낄 수 있는 금쪽같은 낙서입니다. 시와 낙서를 함께 읽으며 마음을 씻는 독서목욕을 하십시다.
 

1. 윤동주 시 '참회록' 읽기

 
참회록(懺悔錄)
 
- 윤동주(1917~1945, 북간도 명동촌)
 
파란 녹이 낀 구리거울속에
내 얼굴이 남어 있는 것은
어느 왕조(王朝)의 유물(遺物)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가
 
나는 나의 참회(懺悔)의 글을 한줄에 주리자
- 만(滿) 이십사(二十四) 년(年) 일(一) 개월(個月)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 왔든가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懺悔錄)을 써야한다.
- 그 때 그 젊은 나이에
  웨 그런 부끄런 고백(告白)을 했든가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어 보자.
 
그러면 어느 운석(隕石)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거울속에 나타나온다.
 

- 윤동주 유고시집 1955년 10주기 증보판 오리지널 디자인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윤동주 지음, 소와다리발행, 2022년) 중에서

 

2. 시 '참회록' 자필 원고에 남겨진 금쪽 같은 낙서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 윤동주의 삶과 문학」(고운기 지음, 산하, 2006년 1쇄, 2007년 2쇄)에 윤동주 시인님의 시 '참회록'의 자필 원고가 실려 있습니다.
 
시 '참회록'이 적힌 종이는 편지지인데, 색이 바래서 누렇게 되었네요.
 
편지지는 가로로 13개의 푸르스름한 줄이 그어져 있고요, 시인님은 그 줄을 무시하고 세로로 '참회록'을 진청색 잉크의 만년필로 또박또박 썼네요.
 
시를 자세히 보니, 4연에 고친 흔적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밤이면 밤이면'으로 했다가 뒤의 '밤이면'을 지우고 '밤마다'로 고쳤네요. 그것 말고는 고친 부분이 없습니다.
 
'懺悔錄'이라는 제목을 세로로 쓰고는 그 오른쪽에 글자와 나란히 줄을 여러 번 그었네요. 이 시가 중요하다고 시인님 스스로 강조한 느낌이 듭니다.
 
시 아래에 가로로 기다란 여백(전체 지면의 1/4 가량)에는 시인님의 낙서가 있습니다. 시를 쓴 진청색 만년필로 쓴 낙서입니다.
 
그 낙서를 자세히 살펴봅니다.
 
시인님은 옆으로 기다란 철조망 같기도, 산 같기도 한 모양의 그림을 시 아래 여백에 마구 항칠하듯 그려두었네요. 복잡하게 헝클어진 시인님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그 어지러운 이미지 아래에는 시인님이 흘려쓴 글자들이 보여요. 너무 오래되어 잘 식별할 수 없는 것도 있는데 보이는 것들만 옮겨봅니다. 오른쪽부터 왼쪽으로 이런 글자들이 비뚤비뚤 누워 있습니다.
 
落書, 詩人, 渡航, 힘, 生, 生存, 生活, 詩란? 不知道, 古鏡, 悲禁, ···
 
유독 이 시 '참회록' 자필 원고에 이렇게 시인님의 낙서가 많은 까닭은 무엇일까요?
 
이 시는 1942년 1월 24일 쓴 시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윤동주 시인님이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기 전 국내에서 쓴 마지막 시입니다. 그때 과연 어떤 일이 있었을까요?
 
시인님은 1941년 12월 연희전문(연세대 전신)을 졸업하고 일본 유학을 결심합니다. 일본에 유학하려면 배를 타고 나라 밖으로 나가는 것을 허가하는 면허인 도항(渡航) 증명서가 있어야 하고, 이 증명서를 받으려면 일본식으로 이름을 바꾸어야 합니다. 
 
시인님으로서는 억장이 무너지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유학을 포기하지도 못하는 상황입니다. 그때의 고통스러운 심경이 담긴 시가 바로 '참회록'인 것입니다.
 
「윤동주 평전」(송우혜 지음, 서정시학, 2018년)에 실린 윤동주 시인님의 연보에 따르면, 졸업증명서와 도항증명서 등 유학 수속을 위해 윤동주 시인님이 자신의 모교 연희전문에 히라누마로 창씨개명한 이름을 제출한 날짜는 1월 19일이었습니다. 그 5일 뒤인 1월 24일 시 '참회록'이 완성됐고요.
 
일본으로 유학을 가기 위해, 그동안 지켜오던 자신의 이름을 일본식으로 바꾸어야 했던 시인님의 굴욕감과 분노, 자괴감은 얼마나 컸을까요?
 
시에도, 그 시 아래에 있는 낙서에도 그런 심정이 스며있네요. 이 낙서는 그냥 지나칠만한 낙서가 아니라 그날의 시인님 생각을 품고 있는 금쪽같은 낙서네요. 시를 다 옮기고 나서 시인님은 낙서삼매에 빠졌네요.
 
이 낙서를 보고 있으니 골똘히 상념에 잠긴 채 생각이 가는대로 만년필이 가는대로 자신의 현재와 미래를 떠올리고 있는 시인님이 바로 앞에 있는 것만 같습니다.
 

"밤마다나의거울을"-윤동주시참회록중에서.
"밤마다 나의 거울을" - 윤동주 시 '참회록' 중에서.

 

 

3.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파란 녹이 낀 구리거울속에 / 내 얼굴이 남어 있는 것은 / 어느 왕조(王朝)의 유물(遺物)이기에 / 이다지도 욕될가

- 윤동주 시 '참회록' 중에서

 
다시 이 시 아래에 있는 낙서를 봅니다. '詩人'이라는 글자가 있고요, 그 옆에 흐릿하지만 '生涯'로 짐작되는 글자가 있네요. 일제강점기의 비참한 시간 속을 살아가는 '시인의 생애'란 어떠해야할 지에 대해 생각했을까요? 
 
시 구절에서는 암울한 현실('파란 녹이 낀 구리거울')을 타개하지 못하고, 올곧은 뜻도 제대로 펼치지 못하고 무력하게 살아가고 있는 시인('내 얼굴')의 절망과 치욕이, 나라를 잃은 국민의 서러움과 한이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나는 나의 참회(懺悔)의 글을 한줄에 주리자 / - 만 이십사(二十四) 년(年) 일(一) 개월(個月)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왔든가

- 윤동주 시 '참회록' 중에서

 
낙서 중에 '渡航'이라는 글자가 있습니다. 일본에 유학을 가려면 받아야 하는 도항증명서 이야기입니다. 조만간 이 증명서를 받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5일 전 자신의 이름을 일본식으로 바꾸는 창씨개명까지 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마음이 착찹하고 원통했을까요? 시인님이 꾹꾹 눌러쓴 '渡航'이라는 낙서에 그런 시인님 마음이 느껴집니다. 무슨 영광을 보려고 이 같은 치욕을 감내하려 하는가! 좌절감과 괴로움, 그에 따른 분노, 깊은 부끄러움이 느껴지네요.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 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懺悔錄)을 써야한다 
- 그 때 그 젊은 나이에 웨 그런 부끄런 고백(告白)을 했든가

- 윤동주 시 '참회록' 중에서

 
'그 때 그 젊은 나이에 웨 그런 부끄런 고백을 했든가'. 이 구절은 참으로 의미심장합니다.
 
이때 시인님은 모종의 결심을 한 듯합니다. '그 어느 즐거운 날'을 실현시키는 일에 스스로를 던지리라는 각오 말입니다. 그래서 앞에서 했던 고백, 즉 '만 이십사년 일개월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왔든가' 하고 젊은 날 했던 고백이 부끄러운 일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시인님의 낙서 가운데 '힘' '生' '生存' '詩人의 生涯'이라는 글자들은 시인님의 이런 확고한 결심을 뒷받침하는 것만 같습니다. 시인님은 시 '참회록'의 이 구절 속에 일본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 나라의 독립을 위해 펼쳐야할 일이 있음을 암시해 둔 듯합니다.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어 보자

- 윤동주 시 '참회록' 중에서

 
낙서 중에 '詩란? 不知道'라고 써두고는 이 글자들을 동그랗게 선으로 둘러싸 두었네요. 
'人不學 不知道'(「예기」)라는 문장에 들어있는 '不知道'일까요? '사람이 배우지 않으면 도리를 알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이 낙서에서 현실을 뛰어넘으려는 굳센 결심이 느껴집니다. 그래서 시인님은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 발바닥으로 닦어 보자'라고 했네요. 어두운 현실에 대한 체념이나 자포자기는 소용이 없다는 자각을 했겠지요? 시 구절과 낙서에서 느껴지듯, 새로운 학문의 길에서 끝없는 절차탁마를 통해 힘을 기르고 그 힘을 바탕으로 나라를 위한 의미있는 일을 하리라는 다짐을 했겠지요?
 
그러면 어느 운석(隕石)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 거울속에 나타나온다

- 윤동주 시 '참회록' 중에서

 
낙서 영역의 맨 왼쪽에 '古鏡'과 '悲禁'이라는 글자들이 흐릿하게 보이네요. 이 중에서 '悲禁'을 곰곰이 들여다봅니다. 슬플 '비(悲)', 금할 '금(禁)'입니다. '슬픔 금지', 슬퍼하지 말자는 말입니다. 창씨개명까지 하는 치욕을 견디며 그 나라로 유학을 떠나야 하는 현실이지만 너무 슬퍼하지 말자는 다짐입니다.
 
시인님은 슬픔에 빠져서는 아무 일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겠지요? 슬퍼하는 대신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닦아야 한다고 합니다.
 
'어느 운석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참으로 외로운 시인님의 모습입니다. 자신의 운명을 예감한 것일까요? '그 어느 즐거운 날'을 위해 어떤 일을 해야 할지 마음을 다져보는 비장한 시간입니다. 그런 낯선 황야의 모래폭풍 같은 시간 속으로 뛰어들기 전 시인님은 '悲禁'이라고, '슬픔 금지'라고 낙서해 두었네요. 이 얼마나 슬픈 일인지요?
 
그 후 ···.
 
일본 도시샤대학 영문과에 재학 중이던 시인님은 1943년 7월 14일 '독립 운동' 사상범으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모진 고문에 시달리다 1945년 2월 16일 큐슈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옥사했습니다. ‘어느 운석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시인님이 돌아가신 때는 시인님이 그토록 바라던 광복 6개월 전이었습니다.
 
글 읽고 마음 목욕하는 블로그 '독서목욕'에서 윤동주 시인님의 시 '소년'을 만나 보세요.

 

윤동주 소년

윤동주 시인님의 시 '소년'을 만납니다. 이 시는 순수한 소년의 마음으로 우리를 데려가 줍니다. 그리하여 우리도 순수한 소년이 되게 합니다. 함께 읽으며 마음을 맑히는 독서목욕을 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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