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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고 스미기

김현승 자화상

by 빗방울이네 2023. 1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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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승 시인님의 시 '자화상'을 만납니다. 이 시는 우리에게 저마다의 자화상을 그려보며 스스로 어떤 기질인지 떠올려보게 합니다. 함께 자신의 캐리커처를 그려보며 마음을 맑히는 독서목욕을 하십시다.

 

1. 김현승 시 '자화상' 읽기

 

자화상(自畵像)

 

- 김현승(1913~1975, 평양 출생, 제주 성장)

 

내 목이 가늘어 회의(懷疑)에 기울기 좋고,

 

혈액(血液)은 철분(鐵分)이 셋에 눈물이 일곱이기

포효(咆哮)보담 술을 마시는 나이팅게일 ···

 

마흔이 넘은 그보다도

뺨이 쪼들어

연애(戀愛)엔 아조 실망(失望)이고,

 

눈이 커서 눈이 서러워

모질고 사특하진 않으나,

신앙(信仰)과 이웃들에게 자못 길들기 어려운 나 -

 

사랑이고 원수고 모라쳐 허허 웃어버리는

비만(肥滿)한 모가지일 수 없는 나 -

 

내가 죽는 날

딴테의 연옥(煉獄)에선 어느 비문(扉門)이 열리려나?

 

- 「다형김현승전집-운문편·산문편」(다형김현승시인기념사업회, 2012년) 중에서

 

2. 철분 30% 눈물 70%로 구성된 혈액이 흐르는 시인

 

가을에는 / 기도하게 하소서 /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

- 김현승 시 '가을의 기도' 중에서

 

우리 모두 사랑하는 시, 김현승 시인님의 '가을의 기도'입니다. 

 

이런 시를 쓰신 김현승 시인님은 어떤 기질을 가진 분이었을까요?

 

1947년 경향신문에 처음 발표된 시, 시인님 35세 즈음에 쓰인 시 '자화상'에 시인님의 흥미로운 캐리커처가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함께 보시지요.

 

내 목이 가늘어 회의(懷疑)에 기울기 좋고 

- 김현승 시 '자화상' 중에서

 

시인님의 목이 가늘다고 합니다. 시인님 사진을 보면 깡마르고 가냘픈 스타일이네요. 이런 스타일은 예민한 성격에 매사 마음속에 의심이 많이 생기는 기질인가 봅니다. '목이 가늘어 회의(懷疑)에 기울기' 좋다는 표현이 재미있네요.

 

혈액(血液)은 철분(鐵分)이 셋에 눈물이 일곱이기 / 포효(咆哮)보담 술을 마시는 나이팅게일 ···

- 김현승 시 '자화상' 중에서

 

시인님은 자신의 혈액이 철분 30%와 눈물 70%로 구성되어 있다고 하네요. 철분은 금속성이니 현실에 대하여 포효하는 외향적인 성격을 말하겠네요. 눈물은 이런저런 생각이 많은 내성적인 태도를 말하고요.

 

그러니 시인님의 기질은 외부세계로 적극적으로 나아가기보다 자신의 내면으로 침잠하는 스타일이네요. 

 

마흔이 넘은 그보다도 / 뺨이 쪼들어 / 연애(戀愛)엔 아조 실망(失望)이고

- 김현승 시 '자화상' 중에서

 

뺨이 홀쭉하다고 합니다. 시인님은 30대 중반인데 마흔이 넘은 사람보다 뺨이 더 쪼그라들었다고 하네요. 

 

내 몸이 지금은 이렇게 메말라 가냘퍼 보이지만

젊었을 적엔 물 찬 제비같이 날씬하여 스포츠엔 만능이었다···

문학으로 시간만 빼앗기지 않았던들 중학 때 이미 선수에 뽑힐 찬스가 여러 번 있었다

- 위 같은 책에 실린 김현승 산문 '나와 스포츠' 중에서

 

시인님의 산문에 따르면, 시인님은 젊은 시절 물 찬 제비처럼 날씬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시인님은 메말라 가냘픈 몸이 되었네요.

 

그래서 이런 외모로는 무슨 연애라도 할 수 있겠느냐고 하네요. 그러지 못해 스스로 아주 실망이라고 하고요. 그러니 시인님은 뜨거운 감정으로 연애를 하는 열정파가 아니라 몸이 마르도록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사색파네요.

 

"내목이가늘어"-김현승시자화상중에서
"내 목이 가늘어" - 김현승 시 '자화상' 중에서.

 

 

3. 고독을 사랑한 시인이 남겨준 별 같은 시들

 

눈이 커서 눈이 서러워 / 모질고 사특하진 않으나

신앙(信仰)과 이웃들에게 자못 길들기 어려운 나 -

- 김현승 시 '자화상' 중에서

 

눈이 크다고 합니다. 그래서 성질이 모질다거나 요사스럽고 간특한 스타일이 아니라고 하네요. 그러면 무르고 어진 스타일일 텐데도 생각이 많고 말은 없는 기질일까요? 그래서 그런지 이웃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성격이라고 하네요. 

 

'신앙적 회의'가 느껴지는 구절이기도 하네요. 시인님의 아버지는 목사님이고 시인님도 독실한 신앙인입니다. 그런 신앙의 울타리 밖을 서성거리는 시인님이 보이네요. 무슨 일일까요?

 

나는 인간으로서 새로운 고독에 직면해야 하였다···

그것은 한마디로 신을 잃은 고독이다.

내가 지금까지 의지해왔던 거대한 믿음이 무너졌을 때에 허공에서 느끼는 고독이었다···

나의 고독은 구원에 이르는 고독이 아니라 구원을 잃어버리는, 구원을 포기하는 고독이다.

- 위의 같은 책에 실린 김현승 산문 '나의 고독과 나의 시' 중에서

 

'목이 가늘어 회의(懷疑)에 기울기' 좋다는 시인님. 타인은 물론 신앙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회의하고 사색하는 고독의 전사인 것만 같습니다.

 

사랑이고 원수고 모라쳐 허허 웃어버리는 / 비만(肥滿)한 모가지일 수 없는 나 -

- 김현승 시 '자화상' 중에서

 

시인님은 털털하게 사는 스타일이 아닙니다.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둥글둥글 품어주는 낙천적인 스타일이 아니네요. 삶의 골짜기들을 골똘히 들여다보고 슬퍼하거나 절망적인 감정을 느끼는 비관적인 기질이네요. 

 

내가 죽는 날 / 딴테의 연옥(煉獄)에선 어느 비문(扉門)이 열리려나?

- 김현승 시 '자화상' 중에서

 

가는 목, 철분보다 눈물이 훨씬 많다는 혈액, 쪼그라든 뺨, 커다란 눈, 이웃과 신앙에 쉬이 깃들지 못하는 성격의 시인님. 이런 기질을 가진 영혼은 어디에 깃들게 될 것인가 하고 시인님은 스스로 묻고 있네요. 

 

이때(1938년)부터 1945년 8·15 해방까지

지상에 태어난 한 식민지 청년의 형극의 길이 비롯되다.

학업은 중단되고 교사의 직에서는 관의 압력에 의하여 해고되고

꿈에서도 잊지 않던 시작(詩作)은 현실적으로 중단되고  

구직을 위하여 평안남도의 두메산골까지 방황을 하고 ···

- 위의 같은 책 김현승 시인 자술 연보 중에서

 

이 같은 방황과 좌절의 시간 동안 시인님은 시를 전혀 쓰지 못했습니다. 그런 후 해방을 맞아 시작(詩作)을 재개했는데요, 시 '자화상'이 그즈음인 1947년 쓰인 시입니다.

 

그래서 시 '자화상'은 자신과 시에 대한 성찰이 담겨있는 것 같습니다. 시인님은 이 시를 통해 자신의 모습을 짚어보면서 앞으로의 '시의 길' '삶의 길'도 짚어보고 있었겠지요?

 

이렇게 회의적 기질을 타고나 고독을 좋아한 시인님 덕분에 우리는 시인님의 별처럼 빛나는 명시들을 만나게 되었네요. 시인님의 대표적인 시 몇 구절을 읽어봅니다.

 

꿈을 아느냐 네게 물으면 / 푸라타너스 / 너의 머리는 어느덧 파아란 하늘에 젖어 있다

- 김현승 시 '푸라타너스' 중에서

 

더러는 옥토에 떨어지는 작은 생명이고저 ··· / 흠도 티도 / 금가지 않은 나의 전체는 오직 이뿐!

더욱 값진 것으로 들이라 하올제 / 나의 가장 나아종 지니인 것도 오직 이뿐!

- 김현승 시 '눈물' 중에서

 

슬픔은 나를 / 어리게 한다 // 슬픔은 죄를 모른다 / 사랑하는 시간보다 오히려

- 김현승 시 '슬픔' 중에서

 

글 읽고 마음 목욕하는 블로그 '독서목욕'에서 김현승 시인님의 시 '가을의 기도'를 만나 보세요.

 

김현승 시 가을의 기도 읽기

김현승 시인님의 시 ‘가을의 기도’를 만납니다. 이 시는 저 높은 ‘마른 나뭇가지’ 위로 우리를 데려갑니다. 거기에 무엇이 있을까요? 함께 읽으며 마음을 씻으며 독서목욕을 해보십시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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