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읽고 쓰고 스미기

유안진 에세이 지란지교를 꿈꾸며 읽기

by 빗방울이네 2023. 3. 16.
반응형

유안진 시인님의 에세이 '지란지교(芝蘭之交)를 꿈꾸며'를 읽습니다. 나의 소중한 친구를 떠올리게 해주는 글입니다. 함께 읽으며 친구를 생각하며 그 우정의 우물물로 마음을 씻으며 독서목욕을 해보십시다.
 

1. 유안진 시인의 에세이 '지란지교를 꿈꾸며' 읽기

 
사람이 자기 아내나 남편, 제 형제나 제 자식하고만 사랑을 나눈다면 어찌 행복해질 수 있으랴. 영원이 없을수록 영원을 꿈꾸도록 서로 돕는 진실한 친구가 필요하리라. 그가 여성이어도 좋고 남성이어도 좋다. 나보다 나이가 많아도 좋고 동갑이거나 적어도 좋다. 다만 그의 인품이 맑은 강물처럼 조용하고 은근하며 깊고 신선하며, 예술과 인생을 소중히 여길 만큼 성숙한 사람이면 된다.

- 유안진 명작에세이 「지란지교를 꿈꾸며」(아침책상) 중에서

 
1941년 경북 안동 출생인 유안진 시인님은 서울대학교 명예교수입니다. 1965년 「현대문학」 추천에 의해 시인으로 등단, 첫 시집 「달하」을 비롯 「거짓말로 참말 하기」 등 시집 15권을 냈고, 수필집 「그리운 말 한마디」 등 다수의 저서를 냈습니다. 정지용문학상, 월탄문학상, 한국시인협회상, 공초문학상, 목월문학상 등을 수상했습니다.


2. 지란지교의 뜻

 
이 수필의 제목에 나오는 '지란지교(芝蘭之交)'는 무슨 뜻일까요? 글자대로라면, 지초(芝草)와 난초(蘭草)의 교제를 말합니다. 지초도 난초처럼 향기로운 풀인데 산과 들에서 자라는 여러해살이풀입니다.
 
네이버 국어사전을 보면, 지란지교의 뜻은 '벗 사이의 맑고도 고귀한 사귐을 이르는 말'이라고 나옵니다. 그것으로는 지란지교의 뜻이 명쾌히 이해되지 않네요.

 

이 말은 「명심보감」 '교우편'에 나옵니다. 바로 이 문장입니다.  
 
子曰 與善人居(여선인거)면 如入芝蘭之室(여입지란지실)하여 久而不聞其香(구이불문기향)이나 卽與之化矣(즉여지화의)요,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착한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은 마치 향기로운 지초와 난초가 핀 방안에 들어간 것과 같으니, 오래되면 그 향기를 맡지 못하지만 바로 향기와 더불어 동화된 탓이다.

與不善人居(여불선인거)면  如入鮑魚之肆(여입포어지사)하여 久而不聞其臭(구이불문기취)나 亦與之化矣(역여지화의)니,

착하지 못한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은 마치 생선 가게에 들어간 것과 같으니 오래되면 그 악취를 맡지 못하지만 이 또한 악취와 더불어 동화된 탓이다.

丹之所藏者(단지소장자)는  赤(적)하고 칠지소장자(漆之所藏者)는 黑(흑)이라, 是以(시이)로 君者(군자)는 必愼其所與處者焉(필신기소여처자언)이니라

붉은 단사를 품고 있는 사람은 붉어지고 검은 옻을 품고 있는 사람은 검어진다. 이런 까닭에 군자는 함께 머무는 사람도 반드시 삼가는 것이다.

▷「명심보감」(임종욱 해설, 나무아래사람, 2002년) 중에서

 

그러니까 오늘 이야기의 열쇳말은 '동화(同化)'입니다. 서로 다르던 것이 서로 같게 되는 것 말입니다. 착한 친구와 같이 있으면 자신도 모르게 그 친구의 착함에 동화된다는 말입니다. 마치 향기로운 지란이 있는 방에 들어가면 그 향에 동화되듯이요.
 
그런데 지란의 방에 들어가 좀 오래 있으면 이상한 일이 일어납니다. 지란의 향에 동화되어 그 향을 맡을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그 착한 친구의 착함에 동화되어 나는 그 착함을 인식할 수 없게 되겠네요. 자신도 착해졌을 테니까요. 반대로 나쁜 친구와 같이 있으면 나쁜 점에 동화되어 그 나쁨을 인식할 수 없겠네요. 자신도 나빠졌을 테니까요. 그래서 나의 친구가 어떤 친구인가가 중요하다는 말이네요.
 

유안진에세이지란지교를꿈꾸며중에서
유안진 시인 에세이 '지란지교를 꿈꾸며' 중에서

 

 

 

 


3. 죽을 때까지 아름답고 향기로운 친구


그런 친구(善人)가 많이 필요하지는 않다고, 이 수필에서 유안진 시인님은 말합니다. 

나는 많은 사람을 사랑하고 싶진 않다. 많은 사람과 사귀기도 원치 않는다. 나의 일생에 한두 사람과 끊어지지 않는 아름답고 향기로운 인연으로 죽기까지 지속되길 바란다. 나는 여러 나라 여러 곳을 여행하면서, 끼니와 잠을 아껴 될수록 많은 것을 구경하였다. 그럼에도 지금은 그 많은 구경 중에 기막힌 감회로 남은 것은 거의 없다. 만약 내가 한두 곳 한두 가지만 제대로 감상했더라면, 두고두고 되새겨질 자산이 되었을 걸.

- 유안진 수필 '지란지교를 꿈꾸며' 중에서


그대는 그런 친구가 있나요? 일생에 한두 사람, 끊어지지 않는 아름답고 향기로운 인연으로 죽기까지 지속되기를 바라는 친구가 있나요? 

부처님 경전을 보면 교우관계에 대한 문장이 많습니다. 어제 이 문장을 읽었습니다.

총명한 사람은 악한 사람을 친구로 삼지 말아야 하며, 화 잘 내는 사람, 시기심 많은 사람을 친구로 삼지 말아야 하며, 다른 사람이 못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을 친구로 삼지 말아야 한다. 이런 나쁜 사람과 사귀는 것은 불행하다.
총명한 사람은 믿음이 있는 사람을 친구로 삼아야 하며, 유쾌한 사람, 지혜로운 사람, 두루 많이 배운 사람을 친구로 삼아야한다. 이런 훌륭한 사람과 사귀는 것은 행운이다. 

- 「빠알리 경전」(일아 편역, 민족사) 중에서


부처님이 추천하는 친구는 자기보다 현명한 사람입니다. '지란지교'의 관점에서 보면, 친구의 현명함에 동화되어 자신도 현명해진다는 뜻이겠네요.

이 같은 부처님의 말씀은 경전 곳곳에 등장합니다. 이 문장을 마주칠 때마다 어깨가 움츠러듭니다. 과연 나는 나의 친구에게 현명한 친구인가 하고요. 지란의 방에 들어간 것처럼 우리는 서로의 향에 동화되어 이제는 향을 맡을 수 없을 텐데, 과연 나의 향이 친구에게 좋은 향인지 나쁜 향인지도 궁금해지는 밤입니다. 

글 읽고 마음 목욕하는 블로그 <독서목욕>에서 친구 연관 글을 더 읽어 보세요.

 

안병욱 교수 - 인생사전

오늘은 안병욱 교수님의 「인생사전」에 나오는 문장 하나를 만나봅니다. 우리 함께 ‘친구’라는 단어를 가슴에 지니고, '한국의 대표적인 지성'으로 꼽히는 안병욱 교수님의 문장으로 마음을

interestingtopicofconversation.tistory.com

반응형

'읽고 쓰고 스미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정지용 시 구성동 읽기  (18) 2023.03.18
박완서 산문집 호미 읽기  (28) 2023.03.17
문인수 시 쉬 읽기  (28) 2023.03.15
문태준 시 맨발 읽기  (18) 2023.03.14
기형도 시 빈집 읽기  (18) 2023.03.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