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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고 스미기

박완서 산문집 호미 읽기

by 빗방울이네 2023. 3.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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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 소설가님의 산문집 「호미」를 폅니다. 우리 현대문학의 거목으로 꼽히는 박완서 소설가님은 삶의 황혼기에 어떤 사유를 하셨을까요? 그가 데워놓은 따뜻한 사유의 욕조에 마음을 담그고 독서목욕을 해보십시다.
 

1. 박완서 산문집 「호미」 읽기

 
나는 꽃이나 흙에게 말을 시키는 버릇이 생겼다. 일년초 씨를 뿌릴 때도 흙을 정성스럽게 토닥거려 주면서 말을 건다. 한숨 자면서 땅기운 듬뿍 받고 깨어날 때 다시 만나자고, 싹트면 반갑다고, 꽃 피면 어머머, 예쁘다고 소리 내어 인사한다. 꽃이 한창 많이 필 때는 이 꽃 저 꽃 어느 꽃도 섭섭지 않게 말을 거느라, 또 손님이 오면 요 예쁜 짓 좀 보라고 자랑시키느라 말 없는 식물 앞에서 나는 수다쟁이가 된다.

- 박완서 산문집 「호미」 (열림원) ‘꽃과 나무에게 말 걸기’ 중에서

 
박완서 소설가님(1931~2011)은 경기도 개풍군 출신으로 1970년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전에 「나목」이 당선되어 등단했습니다. 장편소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등이, 소설집으로 「엄마의 말뚝」 등이, 산문집으로는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 등이 있습니다. 한국문학작가상, 이상문학상, 대한민국문학상, 이산문학상, 현대문학상, 동인문학상 등을 수상했습니다. 
 

2. 식물과 대화를 하시나요?

 
산문집 「호미」는 박완서 소설가님의 작고 4년 전인 2007년 발간됐습니다. 그러니까 박 소설가님이 70대 후반에 쓴 글입니다. 박완서 작가님이 인생의 황혼기에 어떤 생각으로 사셨는지 알 수 있는 책입니다.
 
그대는 박완서 소설가님처럼 꽃이나 흙과 대화를 하나요? 박완서 작가님은 마치 사람에게 하듯, 지극정성으로 자식 돌보듯이 대화를 하시네요. 그대는 어떤가요? 
 
빗방울이네도 식물과 대화를 나눕니다. 사무실에 가장 먼저 출근하면 화초들과 인사부터 합니다. 밤새 어두운 사무실에서 잘 있었느냐고요. 물을 주면서 행운목에게, 풍란에게, 뱅갈고무나무에게 각각 다른 말로 인사합니다. 그렇게 오래 인사를 하다 보면 화초들과 친해집니다. 힘든 일이 생기면 하소연도 하고, 기쁜 일이 생기면 너희 덕분이라고 말해줍니다.
 
이런 일은 그전에는 생각지도 못 할 일이었습니다. '식물은 식물이고 나는 나다' 주의였지요. 그런 때는 식물과 내가 같은 생명체라는 생각도, 서로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다는 생각도 하지 못했습니다. 이파리를 심심풀이 삼아 따기도 했고, 가지를 일없이 꺾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생각지도 못할 일이지만요. 
 

박완서산문집호미중에서
박완서 산문집 '호미' 중에서

 


 

3. 자연의 질서를 긍정하고 순응하면 불안감이 없다

 
식물과 친해지면 내가 자연의 일부라는 사실을 은연중 체감하게 되는 걸까요? '자연은 자연이고 나는 나다' 주의에서 '나도 자연'이라는 생각 말입니다. 그렇게 식물과 친해지면 거실의 난초 앞에서 속옷을 갈아입지 않게 됩니다. 그렇게 겸허히 버리고 낮추며 자연에 스미는 것일까요?
 
그렇게 자연이 되고, 그리하여 자연의 질서를 따르면 어떤 점이 좋을까요? 박완서 소설가님은 '삶에서 맛보았던 행복한 순간들의 공통점은 아름다운 유리그릇처럼 언제 깨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섞여 있었다는 점'이라면서 우리에게 이렇게 전합니다.
 
자연의 질서를 긍정하고, 거기 순응하는 행복감에는 그런 불안감이 없다. 아무리 4월에 눈보라가 쳐도 봄이 안 올 거라고 불안해할 필요는 없다. 변덕도 자연 질서의 일부일 뿐 원칙을 깨는 법은 없다. 우리가 죽는 날까지 배우는 마음을 놓지 말아야 할 것은, 사물과 인간의 일을 자연 질서대로 지킬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가 아닐까. 

- 박완서 산문집 「호미」 (열림원) '돌이켜보니 자연이 한 일은 다 옳았다' 중에서

 
이 문장은 내가 자연의 일부라는 인식, 그래서 자연의 질서를 따르는 일이야말로 불안감이 없는 행복으로 가는 길이라는 뜻으로 연결되겠네요. 그래서 그는 이렇게 소원합니다. 
 
익은 과일이 떨어지듯이 혹은 누군가가 거두듯이 그렇게 자연스럽게 죽고 싶다.

- 박완서 산문집 「호미」 (열림원) '돌이켜보니 자연이 한 일은 다 옳았다' 중에서
 

빗방울이네는 이런 죽음을 원하는 이를 지금껏 만난 적이 없습니다. 익은 과일이 떨어지듯이! 그렇게 자연스럽게 자연으로 돌아가기를 간곡히 원하던 박완서 소설가님은 안타깝게 80세에 병으로 돌아가셨습니다. 그런데 그것마저도 자연의 질서였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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