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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고 스미기

백석 시 멧새소리에 멧새가 없는 이유

by 빗방울이네 2023. 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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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우리가 사랑하는 백석 시인 님의 시 한 편을 오랜만에 읽으며 마음목욕을 하려 합니다. 삶의 고통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어떤 비명 같은 울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1. 멧새 깃털도 안 나오는데


멧새소리

- 백석(1912~1995)

처마 끝에 明太를 말린다
明太는 꽁꽁 얼었다
明太는 길다랗고 파리한 물고긴데
꼬리에 길다란 고드름이 달렸다
해는 저물고 날은 다 가고 볕은 서러웁게 차갑다
나도 길다랗고 파리한 明太다
門턱에 꽁꽁 얼어서
가슴에 길다란 고드름이 달렸다

- 「백석시전집」(이동순 편, 창비) 중에서(※백석 시인님의 시어 그대로 표기한 것입니다.)


이 시를 다 읽고 나서 우리는 곤란한 상황에 직면합니다. 제목이 '멧새소리'인데 왜 멧새가 등장하지 않을까? 하고요.

그래서 많은 독자들이 이 시로 들어가기 힘들어하고, 시인이나 평론가들은 저마다의 언어로 이 시를 해설하면서 시로 가는 길은 더 늘어만 가고 있습니다. 정말 무슨 의미를 담고 있을까요?


2. 실연의 고통이 스며있는 시


시로 들어가 봅시다. 이 시가 배태된 곳은 백석 시인님이 영어교사로 있었던 함흥이었습니다. 명태는 함흥의 특산물입니다. 겨울에는 집집마다 처마 끝에 명태를 말렸을 것입니다.

명태는 꽁꽁 얼면서 꼬리에 기다란 고드름이 달리면서 말라간다고 시인은 말합니다. 그런 풍경을 보여준 뒤 시인은 '해는 저물고 날은 다 가고 볕은 서러웁게 차갑다'고 하고 자신도 명태처럼 그렇게 '꽁꽁 얼어서 가슴에 길다란 고드름이 달렸다'고 합니다.

8행의 짧은 공간에 외롭고 고통스러운 분위기가 꽉 차 있습니다. 이 때 과연 시인에게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1937년 4월, 백석 시인님은 자신이 그토록 흠모했던 통영의 박경련과 그의 절친 신현중이 결혼했다는 소식을 함흥에서 듣게 됩니다. 여친과 절친을 동시에 잃었던 것입니다. 26세 청년 백석의 심정은 어땠을까요?

시 '멧새소리'는 실연 후인 1938년 10월에 발표됐습니다. 실연의 고통이 쉬이 가라앉을 리 없습니다. 앞서 소개해 드린 대로 '멧새소리'의 본문은 이런 실연의 고통을 여과 없이 보여주고 있군요.

그런 백석 시인님은 왜 이의 시 제목을 '멧새소리'라고 붙였을까요? 어떤 의도가 깔린 것이 분명합니다.

 

"찟-찌르르-찟-찌르르-찟-찌리리"-멧새소리
"찟 찌르르 찟 찌르르 찟 찌리리 찟찟 찌르르 찌잇" - 멧새소리.

 


3. 멧새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멧새는 참새와 닮은 작고 앙증맞은 새입니다. 유튜브의 영상을 통해 멧새소리를 들어보니, '찟 찌르르'라는 소리가 다양하게 변주되면서 반복됩니다. 눈 부위가 자르르할 정도의 고음이고 소리의 간격도 좁아서 매우 다급한 느낌을 줍니다.

'찟 찌르르~ 찟 찌리리리~ 찌지리~ 찌지리~'.

시 '멧새소리'는 액면 그대로 '이 시는 멧새소리다'라고 보면 됩니다. 이 시 자체가 바로 멧새소리라는 것입니다. 시에서 멧새소리가 난다는 것입니다. 높고 다급한 소리, 시에서 그 멧새소리를 들으셨습니까?

백석 시인님은 '멧새소리'와 같은 때(1938.10)에 발표한 '꼴뚜기'라는 시에서 '시방 꼴뚜기는 배창에 너불어져 새 새끼같은 울음을'이라고 했습니다. 바다에서 막 잡혀 배 갑판에 올려진 꼴뚜기가 살려고 안간힘을 쓰면서 소리를 내는데, 그 절명의 소리를 백석 님은 '새 새끼 같은 울음'이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던 연인을 잃고 외로움과 고통을 토로한 시인은 명태처럼 말라가면서 비명 같은 울음을 울고 있습니다. 명태는, 아니 시인은 절명의 고통 속에서 새 새끼 울음 같은, 멧새소리 같은 울음을 냈을 것입니다.

그대가 삶에서 파도처럼 덮쳐오는 어떤 고통으로 인해 정신에 앞서 몸 깊은 데서 터져 나오는 비명 같은 울음을 경험한 적이 있다면 이 시는 금방 마음으로 들어왔을 것입니다.

시인은 그렇게 죽음과도 같았을 실연의 상처와 그 고통을 이 짧은 시에 새겨두었네요. 그래서 울음소리가 나는 시가 되었에요. 이 시를 반복해 천천히 읽으면, 잃어버린 짝을 애타게 부르는 멧새 같은, 높고 다급한 백석 시인님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습니다.

글 읽고 마음목욕하는 블로그 <독서목욕>에서 백석 님의 시를 더 읽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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